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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과 꾸준함으로 버틴 김창수의 프로 생활 20년, 그가 남긴 발자취

2004년 울산 현대에서 데뷔, K리그 통산 314경기 8득점 20도움 기록

23.12.06 17:11최종업데이트23.12.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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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초반과 중반, K리그를 흔들었던 전설들이 2023시즌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지난 6월 6일, 17라운드 수원 FC와 울산 현대와의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박주호를 시작으로 시즌 종료 직전에는 이근호(대구)가 차례로 축구화를 벗었으며 시즌 종료와 함께 은퇴가 예정됐던 염기훈(수원) 역시 현역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박주호-염기훈-이근호로 이어지는 스타 선수들의 은퇴 소식과 함께 이 선수 역시 2023시즌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바로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 김창수 선수다.
 
길었던 무명 그리고 운명을 바꾼 런던 올림픽
 

선수 생활 은퇴 선언한 김창수 ⓒ 한국프로축구연맹


2004년 김형범(은퇴), 하대성(은퇴)과 함께 K리그 최강 클럽 울산 현대에 입단하며 첫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김창수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당시 강력했던 울산의 주전 경쟁에 밀려 이듬해 대전 시티즌(현 대전 하나)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공식 경기 0경기 출전에 그쳤으며 2006년이 돼서야 공식 데뷔전을 가져야만 했던 김창수였다. 2006년 리그 7경기에 나서며 예열을 시작한 김창수는 2007년 리그 17경기 출전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전에서의 활약 이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한 김창수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박성화 감독이 지휘하던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팀 최종 명단에 승선하는 기쁨을 누렸으나 본선에서 단 1경기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올림픽 출전 이후 꾸준하게 부산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간 김창수는 2009년 2월, 시리아와의 경기를 통해 국가대표팀 데뷔까지 이루게 됐으나 차두리-오범석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에 밀리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차출은 좌절됐다.
 
올림픽-월드컵 출전이 좌절됐으나 김창수는 소속팀 부산에서 화끈한 실력을 뽐내며 서서히 프로 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2008년 리그 23경기 출전 1골 2도움을 기록한 김창수는 이듬해 리그 20경기에 나와 1골 1도움을 기록했으며 2010년에는 프로 통산 리그 최다 출전인 27경기에 출전해 2골 2도움을 올리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이후 2011시즌과 2012시즌에는 오범석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우측 수비수로 자리를 잡은 김창수는 자신의 운명을 바꾼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홍명보 감독(울산)으로부터 정성룡(가와사키)-박주영(울산)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대표팀에 합류한 김창수는 올림픽 본선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대표팀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8강 영국전에서 전반 시작과 동시에 부상으로 대회를 마감했으나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김창수의 수비 실력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올림픽 이후 소속팀에서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선보인 김창수는 리그 28경기 출전 2골을 기록하며 리그 베스트 11 수상에 성공하며 선수 생활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프로 첫 우승과 은퇴까지, 김창수의 꾸준함과 성실함
 

울산 현대 2기 시절 김창수, 3년 간 활약하며 울산에 FA 컵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2012시즌 이후 부산을 떠나 일본 무대에 도전장을 접수한 김창수는 J리그 전통 명문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하며 활약했고 주전 측면 수비수로 무난하게 활약했다. 입단 첫해 24경기 출전하며 일본 무대에 적응한 김창수는 이듬해 팀의 4위 수성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축구 대표팀을 지휘하던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승선하며 첫 월드컵 경험이라는 값진 경험도 했다.
 
2015시즌까지 가시와 레이솔 주전 측면 수비수로 활약한 김창수는 2016시즌 최강희 감독(산둥 타이산)의 부름을 받아 전북 현대로 입단하며 국내 무대에 복귀했다. 전북 입단 직후 부상으로 인해 리그 7경기 출전에 그치며 아쉬움을 샀으나 회복 이후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라운드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전북의 아시아 정상 등극에 공을 세우며 프로 통산 첫 우승이라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이듬해 최규백-이종호(성남)와 함께 트레이드 형식으로 전북을 떠나 울산에 다시 입단한 김창수는 13년 만에 돌아온 친정 팀에 FA 컵 우승을 선물하며 2년 연속 우승 획득에 성공하며 기쁨을 누렸다. 이후 2019시즌까지 김창수는 울산 소속으로 리그 64경기 2도움을 기록, 베테랑으로서 면모를 톡톡히 뽐낸 그는 2020시즌을 앞두고 광주로 이적을 택하며 도전을 이어갔다. 광주에서도 녹슬지 않은 면모를 뽐낸 그는 당당히 주전 수비 자리를 차지하며 리그 24경기 1도움을 기록하며 광주의 구단 역사상 첫 파이널 A 진출 달성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시즌 종료 이후 광주와의 재계약 불발로 2021시즌 개막 이후 6개월간 무소속으로 지내며 은퇴 길목에 놓이는 듯싶었으나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조성환 감독의 인천 유나이티드로 입단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입단 직후 리그 9경기 출전을 기록한 김창수는 2022시즌 리그 12경기에 나서며 K리그 통산 3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인천과의 계약 종료 이후 프로 신생팀인 천안 시티 FC에 플레잉 코치로 합류한 김창수는 리그에서 13경기 출장하며 코치와 선수로서 역할을 다했다.
 
지난 11월 26일 FC 안양과의 리그 39라운드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은퇴 경기를 치른 김창수는 전반 45분간 성실한 플레이로 마지막까지 귀감이 되는 플레이를 선보였고 이 경기를 끝으로 20년간 신었던 축구화를 벗게 됐다.
 
언성 히어로 김창수, 그를 기억하며
 

지난 11월 12일, 천안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김창수 ⓒ 한국프로축구연맹


1985년생으로 어느덧 만 38살의 나이로 접어든 김창수의 축구 인생은 그야말로 꾸준함과 성실함이었다. 프로 데뷔 이후 2년간 공식 경기 출전이 불발됐으나 좌절하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하며 성장했으며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도 부상을 제외하면 매 시즌 15~20경기 이상씩 소화하며 팀의 보탬이 됐다. 또한 경기장 안에서도 활발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공격력을 선보였던 김창수는 보이지 않는 언성 히어로로서 자신의 몫을 다했던 선수였다.
 
K리그 통산 316경기 출전 8골 20도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A매치 25경기 출전, U-23 대표팀 소속으로 23경기 1골을 기록했다. 오랜 프로 생활을 거치며 깔끔한 실력과 함께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큰 구설수 없이 축구계에서는 물론이며 팬들로부터도 박수를 받은 김창수는 K리그 전설을 넘어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에도 충분한 실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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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 K리그2 김창수 홍명보 천안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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