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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왕-우승 모두 얻은 주민규, 태극마크 없어도 레전드

[K리그1] 울산 현대 주민규, 2023 시즌 36경기 17골... 두 번째 득점왕

23.12.04 11:06최종업데이트23.12.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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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울산 현대)가 토종 스트라이커로 다시 한번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섰다.
 
주민규는 지난 3일 최종전을 끝으로 마감한 '하나원큐 K리그1 2023'시즌에서 총 36경기 17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대전의 외국인 선수 티아고가 득점과 출전 경기수가 같았지만 주민규의 출전 시간(2563분, 티아고 2833분)보다 적었던 탓에 타이틀의 수상자가 됐다.

주민규의 득점왕 수상은 2021시즌(22골) 제주 시절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2022시즌(17골)에는 올해와 정반대로 조규성(17골, 당시 전북)과 동률을 기록하고도 경기출전 수가 더 많다는 이유 때문에 득점왕을 놓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3년 연속 리그 최다 득점자였다.

K리그에서 득점왕 트로피를 두 차례 이상 들어 올린 선수는 데얀(3회), 이기근, 윤상철, 김도훈(이상 2회)에 이어 주민규가 역대 다섯 번째다. 외국인 공격수들이 강세를 보이는 K리그에서 토종 스트라이커로는 2003년 김도훈 이후 무려 20년 만에 등장한 '멀티 득점왕'이라는 데 주민규의 희소성이 더 돋보인다.

더구나 소속팀 울산 현대가 올시즌 2연패를 차지하며 주민규는 득점왕과 더불어 생애 첫 1부리그 우승이라는 겹경사를 누리게 됐다. 한 팀에서 득점왕과 우승을 모두 이룬 것은 2012년 데얀(당시 서울) 이후 11년 만이다. 주민규는 제주 시절인 2020년 K리그2 우승에 이어 지며 1, 2부리그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는 진기록도 세웠다.
 
주민규의 축구 인생은 그야말로 '대기만성'의 살아있는 교본과 같다. 대신고와 한양대를 거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주민규는, 2013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기적적으로 번외지명을 받아 당시 2부리그의 고양 Hi FC(현재는 해체)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선수였던 주민규는 2015년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여 공격수로 포지션을 전향하며 뒤늦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부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에 접어든 상주 상무(현 김천) 시절인 2017시즌부터였다.
 
주민규는 이랜드-상무(군복무)-울산 현대 1기-제주 유나이티드까지 여러 팀을 거치며 꾸준히 기량을 키워나갔고, 30대가 넘어선 2020년대 들어서 비로소 K리그1에서도 손꼽히는 특급 스트라이커로 그 재능을 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때 주전경쟁에서 밀렸던 울산에 4년 만에 금의환향하여 주전으로 득점왕과 1부리그 우승까지 이뤄내는 인생역전을 완성했다. 주민규의 성공신화는 그야말로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모든 무명 선수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주민규의 축구 인생에 유일하게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국가대표 경력 뿐이다. 주민규는 화려한 클럽 경력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A팀을 비롯한 각급 대표팀 경력이 전무하다.
 
주민규는 2010년대 중반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동아시안컵 예비 엔트리에만 두 차례 포함되었으나 모두 최종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실패하며 끝내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신태용-파울루 벤투 감독에 이어 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역시 주민규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물론 K리그 득점왕들이 대표팀에서 외면 받았던 것은 주민규만의 사례는 아니다. 역대 K리그 득점왕 경력의 이기근-윤상철-김현석-신태용-유병수 등 하나같이 대표팀에서는 거의 중용되지 못했고 월드컵 본선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로 유럽파 선수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K리그에서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이는 국내파 공격수들이라도 저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하지만 주민규처럼 아예 대표팀에서 테스트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며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K리그 득점왕도 전무하다.
 
주민규는 최근 황선홍 감독이 이끌었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24세 이하 대표팀에 승선할 뻔한 기회가 있었다. 연령대별 대표팀이지만 성사되었다면 첫 태극마크이자 금메달을 목에 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소속팀과의 차출 협상이 불발되며 끝내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를 감안할 때 주민규의 태극마크 도전은 이대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변수가 발생했다. A대표팀에서 그동안 부동의 공격수로 중용되던 황의조가 사생활과 불법 촬영을 둘러싼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국가대표 자격을 잠정 박탈 당했다. 이로서 대표팀은 내년 1월로 다가온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최전방 공격진 보강의 필요성이 생겼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올해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후 스트라이커에는 조규성, 오현규, 황의조까지 유럽파 3인방 만을 변동 없이 기용해왔다. 그런데 황의조가 갑자기 이탈하면서 공격진의 뎁스가 얇아졌다. 오현규는 현재 소속팀 셀틱에서 주전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대표팀에서는 아직까지 무득점에 그치고 있다. 현재 주전인 조규성이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지만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
 
K리그에서 황의조의 대안이 될만한 공격수를 찾는다면 1순위는 역시 주민규다. 최근 3년간 K리그1에서 56골을 넣은 주민규보다 많은 골을 기록한 공격수는 없다. 주민규의 나이를 고려할 때 3년 뒤인 북중미월드컵까지 기량을 유지할지는 장담할 수 없기에 내년 아시안컵은 주민규가 태극마크에 도전할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가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황의조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민규를 발탁할지는 미지수다. 내년 1월 아시안컵 본선까지는 더 이상 예정된 A매치 평가전도 없기에 주민규나 새로운 공격수를 실전에서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땅치 않다. 손흥민이나 황희찬, 나상호 등 2선 공격수이지만 유사시 최전방까지 소화 할수 있는 자원들의 존재도, 주민규의 발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주민규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홀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주민규 이전에 K리그를 호령하던 득점왕들도 대표팀에서는 외면받았던 이유와 일치한다. 스피드가 떨어지고 활동 반경이 좁은 고전적인 정통 스트라이커인 주민규가, 클린스만 감독이 원하는 성향이나 국제무대 기준에 부합하는 공격수인지도 평가가 엇갈린다. 연령대별 대표팀인 황선홍호에서는 아시아 무대에서 압도적인 수준차를 자랑하는 2선을 활용해 주민규의 득점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겠지만, A대표팀은 상황이 또 다르다.
 
주민규는 시즌 최종전 이후 국가대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모든 선수가 국가대표를 꿈꾸며 축구한다. 언젠가 노력하고 겸손하게 하면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열망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태극마크에 지나치게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이제 와서 주민규가 굳이 태극마크를 다는 데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동국이나 유병수처럼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도 대표팀에서는 과도한 저평가를 당하며 상처만 받았던 안타까운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 특성상 소속팀보다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규가 K리그의 레전드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이제 주민규가 선수 경력의 마지막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태극마크까지 잡을 수 있을지, 그 '라스트 찬스'는 이제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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