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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구 보러 한국까지 왔다는 58세 싱가포르 아줌마

[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아줌마>

23.12.02 20:40최종업데이트23.12.0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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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줌마> 리뷰 ⓒ 싸이더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줌마>를 봤다. 원했던 영화 예매에 실패한 후 제목이 독특해서 선택한 차선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접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며칠 동안 타지에서 고생하는 상황이 싱가포르 아줌마와 동병상련처럼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재작년 부산에서 본 <#아이엠히어> 때와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다. 프랑스의 요리사가 SNS를 통해 한국 여성과 소통하다 진짜 한국에 오게 된 사연을 그렸는데,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머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되돌아가고 싶은 아이러니.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이 꼭 맞았다. 잠자리가 바뀐 상황에서 겪을 수 있는 그때만의 묘미라고나 할까?
 
급기야 폭풍눈물을 흘리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야 말았다. 최근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때도, 엄마가 생각는 것도, 해외 패키지여행을 갔을 몇 년 전도 떠올라 공감이 되었다. 고작 4박 5일 동안이었지만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었던 그해 영화제 중 최고의 영화 중 하나였다.
 
영화 감상은 상대적인 거다. 남들이 다 좋다는 영화를 봤을 때 별로인 경우 '내가 이상한가' 생각 들겠지만 걱정 마라.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영화는 철저한 취향 차이라 각자 달리 보인다. 펑펑 눈물을 흘리는 옆 사람을 보며 메마른 감수성을 탓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공감하는 유기적인 매체다. 내 삶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생겼을 때 인생 영화가 될 가능성은 커진다.
 
한국에 낙오된 싱가포르 아줌마의 모험
  

영화 <아줌마> 스틸컷 ⓒ 싸이더스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 샘과 살고 있는 평범한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는 한국 드라마 덕후다. 하루 종일 한국 문화에 빠져 있다. 한국 드라마 보기, 한국 음악에 맞춰 라인댄스 추기, 한국말 배우고 문화 익히기에 열심이다.
 
한국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게 있어 샘과 한국으로 여행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기로 했던 아들은 해외 이직 면접을 핑계로 갑자기 펑크 내고야 만다.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게 맞다. 실망한 것도 모자라 환불도 안 된단다. 어떡하냐고? 내친김에 여진구의 나라로 모험을 떠나 보기로 했다.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패키지여행이라 가이드(강형석) 말만 잘 듣고 따라가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엉뚱한 곳에 하차한 관광버스 탓에 홀로 낙오되어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를 만난다.
 

영화 <아줌마> 스틸컷 ⓒ 싸이더스

 
그는 한밤중 홀로 남겨진 싱가포르 아줌마를 아는 사람처럼 살뜰히 챙겨준다. 그야말로 물심양면. 어떻게든 싱가포르에 보내주려 노력한다.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특유의 감정, 한국의 정(情)을 나눈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황당하고 무서웠는데 경계심은 눈 녹듯 녹아버렸다. 림메이화는 정수와 며칠을 보내며 나를 찾는 여행을 비로소 시작한다.
 
중년 이후에도 성장하는 서사
 
<아줌마>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첫 합작 영화다. 뜻하지 않게 타국에서 자아 찾기에 성공하는 중년 여성의 유쾌한 로드무비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라멘'과 '바쿠테'로 접목한 일본과 합작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이 떠오른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외교관계 수립 50년 기획 영화답게 양국 간의 화해와 미래를 '음식'에서 찾아 의미 있었다. 앞으로 한국콘텐츠와 여행을 통한 즐겁고 경쾌한 시도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중년 여성의 명사 '아줌마'는 중년 여성이나 자녀가 있는 여성을 말한다. 한국에서 아줌마란 소리는 그리 반갑지 않은데 나이와 외모를 의식하는 정서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말로 쓰이기 까닭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아줌마란 세월을 겪어내고 연륜이 쌓인 사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성장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것 앞에서 당당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엄마, 아줌마라 불리기 전, 한 여성이었음을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자아 찾기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 <아줌마> 스틸컷 ⓒ 싸이더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말이 있지 않나? 흔히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중년 이후 위축되는 몸과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100을 끝에 두고 계산해 보면 답이 나온다. 중년은 뭘 시작하기에 적당한 때이지 늦은 때가 아니다.

철없던 10대,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도 패기 넘치던 20대, 시행착오를 겪으며 활발히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30대, 한 분야에 (준) 프로급의 경력, 세상을 겪으며 연륜을 어느 정도 쌓은 40대,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50대. 100세를 기준으로 봤을 때 반 백 살, 중간 이자 제2의 인생을 살기 안성맞춤인 나이가 중년인 셈이다.
 
중년은 인생이란 시계에서 오후에 해당한다. 계절로 치면 수확의 가을쯤이다. 림메이화는 평생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았었다. 이제야말로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내 인생을 살아가기 좋은 때가 된 거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겠지만 조금 떨어져서 자신을 자세히 볼 때가 중년이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이기 보다 여성, 아줌마로서 행복이 시작되는 거다.
 
특히 영화 속 림메이화의 상황과 잘 어울리는 OST '여성시대'는 앞으로도 당차게 걸어갈 수많은 여성들을 응원하는 노래도 안성맞춤이다. 그밖에 강형석의 유창한 중국어 대사, 낙오된 아줌마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 정동환의 푸근한 모습을 만나는 재미도 배가 된다. <서울의 봄>에서 무기력한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온화한 아저씨로 분했다.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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