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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으로 사세요" 우울증 치료한 의사의 주문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92]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인물들이 전하는 위로

23.11.26 10:47최종업데이트23.11.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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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괜찮아. 살아있으니까 괜찮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정주행 한 후, 나는 오랜만에 눈가가 촉촉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9회 정신병동에 입원한 다은(박보영)에게 그녀의 엄마(황영희)가 한 이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동시에 1회부터 12회까지 등장했던 인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돌아보면, 마음이 아파 입원까지 하게 된 이들의 사연 하나하나는 그 개인의 잘못인 경우는 없었다. 이들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혹은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는 사회 구조와 시선에 맞춰 살기 위해 아파하곤 했다. 그리고 이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통해 '네 잘못이 아니'라는 따뜻한 위로,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돌봄'과 '연대'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말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등장 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살펴본다.
 
 정신병동에 입원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마음과 사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진 드라마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
정신병동에 입원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마음과 사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진 드라마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 다은과 워킹맘들
 
간호사 다은은 진심을 다해 일한다.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느라 업무처리가 느리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다은의 정성 어린 손길은 늘 주변을 밝게 한다. 그런 그녀 곁엔 잔소리가 많지만 든든한 엄마가 있고, 언제나 그녀의 편인 절친 유찬(장동윤)과 편견 없는 동료들이 함께 한다. 밝은 성품에 사회적 지지망도 튼실한 다은은 정신적으로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자살을 하자, 다은은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차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 다은은 처음엔 치료를 거부하지만, 점차 자신의 상태를 수용해가면서 평생을 엄마와 친구들 및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 우선시 해왔음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다은의 우울은 '이제 나 자신도 좀 돌봐달라'는 내면의 외침이었을 것이다. 다은은 "이기적으로 살아보라"는 처방을 받아들이고 '칭찬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돌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유찬에게 "나는 후라이드 치킨보다 양념치킨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10회).
 
5회에 등장했던 워킹맘들도 마찬가지였다. 육아와 일 모두에 최선을 다하는 주영(김여진)은 뇌의 생물학적 변화가 없는데도 중요한 일조차 자꾸 잊는 '가성치매' 진단을 받고 입원한다. 입원해서도 아이 걱정, 일 걱정만 하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며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주영을 돌보는 워킹맘 간호사 수연(이상희) 역시 일과 육아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한다. 이 둘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그리고 "니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라고 서로에게 말해주며 회복해 간다.
 
타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이들의 사연은 결코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나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남을 배려하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라온 우리들 대부분은 아마도 자신을 위하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마음을 조금씩은 품고 있을 것이다. 특히, 엄마라면 아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오래된 메시지는 지금도 여성들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다은, 주영, 수영은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했다. 그러니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들을 회복시킨 것이 바로 '이기적으로 살아보라' 그리고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처방이었음을 말이다.
 
 다은은 어릴 적부터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돌보는 데 더 익숙하다.
다은은 어릴 적부터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돌보는 데 더 익숙하다. 넷플리스
   
사랑하기 때문에 : 리나와 자살 유가족들


다은과 워킹맘들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애쓰다 아파하게 됐다면, 1회 등장했던 리나(정운선)와 7회 등장한 자살 유가족들의 사연은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1회 주인공이었던 리나는 양극성 장애를 앓는다. 엄마(차미경)의 극진한 보실핌을 받지만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다. 리나와 엄마는 종종 서로에 대해 다른 진술들을 하는데 이를 통해 의료진들은 깨닫는다.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 리나를 숨막히게 했음을 말이다. 그런데 이 엄마의 사랑의 기준은 바로 사회적 시선이었다. 공부 잘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딸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온 엄마의 사랑이 리나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결국 리나는 이 답답함을 양극성 장애로 호소한다.
 
7회 등장한 자살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자신의 삶마저 잃어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극심한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기가 돌연사한 후 아내마저 자살한 한 남성은 괴로움 속에 신체적 망상을 경험하고,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자체를 기억에서 밀어내 버리는 '해리' 증상을 겪기도 한다. 7회 집단치료 장면에서 잘 드러나듯, '만일 내가~했더라면'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이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사랑했기 때문에' 겪는 고통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랑 때문에' 아프다. 누군가의 극진한 사랑에 숨막히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심리적 고통은 무언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법이다.
 
사회의 구조와 시선 때문에 : 서완과 성식 그리고 유찬과 다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망상장애 환자 서완(노재원), 그리고 직장에서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성식(조달환)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능력주의와 위계적인 갑질 문화가 개인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 인물들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대학을 졸업한 서완은 자신의 '알바 스펙'으로는 일반 기업 입사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7번이나 시험에 떨어지게 되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는 현실에서 벗어나 게임에 빠져들고 망상 속에서 행복해한다. 치료가 성공을 거두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긴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현실은 그를 더 절망스럽게 할 뿐이다. 결국 서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한편, 성식은 직장에서 상사의 갑질에 고통을 받는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이 둘의 사연은 오직 노력과 스펙으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능력주의'와 우리 사회에 깊게 박힌 위계질서들을 돌아보게 했다. 다른 환자들은 대부분 회복해 정신병동을 떠나지만, 서완과 성식은 그러지 못한다. 아마도 이는 이런 사회구조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함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희망도 보여준다. 역시 상명하복의 직장생활을 하다 공황장애를 앓게 된 유찬은 약을 먹고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돌보면서 용기를 낸다. 부당하게 주어진 업무와 선을 긋고 정시 퇴근을 하며 "제가 지금 퇴근해서 저를 돌봐야 할 것 같아서요"라고 말한다(12회). 다행히 유찬의 새 직장 동료들은 이를 수용하고, 정시 퇴근하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 정신병동에서 퇴원 후 복귀한 다은 역시 '아픈 사람이 어떻게 간호를 하냐'는 주변의 편견에 당당히 맞선다. 다은은 "네 잘못 아니야. 쫄지마"라고 말해주는 동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헤쳐 나간다. 함께 맞서는 동료들의 연대는 병원 전체의 분위기로 이어지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공황장애를 앓는 유찬은 "중요한 건 제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용기를 낸다.
공황장애를 앓는 유찬은 "중요한 건 제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용기를 낸다. 넷플릭스
 
결국은 '돌봄'과 '연대'가 아닐까.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정신 건강을 잃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잘못'이 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하찮게 여기고, 부와 권력을 추구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개인이 노력해 이뤄내야 한다고 세뇌시킨다.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으며, 사회의 편견과 시선에 맞추어 살다 고통을 겪는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인물들은 이런 이유들로 아팠다. 또한,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돌봄을 회복하고 부당한 사회의 구조와 편견에 맞서 연대해야 함을 잘 보여주었다.
 
이들이 전해준 '돌봄'과 '연대'의 메시지가 돈과 성취, 능력을 우선시하는 사회의 편견들에 더 당당히 맞서주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말하며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아. 살아 있으니까 괜찮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정신병동에도아침이와요 박보영 장동윤 정신건강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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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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