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9.11의 기억,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남긴 작은 기적

[리뷰] SBS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

23.11.24 17:56최종업데이트23.11.24 17:56
원고료로 응원
'9·11 테러(September 11 attacks)'는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알카에다가 민간 비행기를 납치해 행한 자살테러로 미국 주요시설을 공격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를 유발한 테러 공격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21세기 미국을 비롯한 세계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날 비극의 무대가 된 뉴욕 세계무역센터(쌍둥이빌딩) 현장에는 한국인들도 있었다.
 
11월 2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그라운드 제로 - 9.11 테러의 그날'이라는 부제로, 테러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비극의 그날을 조명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거주하던 육성아씨(당시 104층 근무)와 김재훈씨(97층), 이동훈씨(84층) 등은 모두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에서 같은 북쪽타워 건물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에 출근하여 업무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잠시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전 7시 59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는 승무원과 승객 92명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AA11편이 LA를 향해 이륙했다. 그런데 얼마 후 관제탑으로 수상한 교신 하나가 전해진다. 놀랍게도 테러범이 승객들을 협박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비행기를 하이재킹한 테러범들이 승객들에게 기내 방송을 하려던 것이 실수로 관제탑과 교신이 된 것.

하지만 테러범들의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황. 오전 8시 45분에 항공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한 승무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테러범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승무원은 누군가 칼에 찔렸다는 소식과 함께 내부의 상황을 전하며 "비행기가 엄청 엄청 낮게 날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1분 후인 오전 8시 46분, AA11편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 북쪽 타워에 그대로 충돌했다. 전세계인에게 악몽의 그날이 된 '9·11 테러'의 시작이었다.
 
이동훈씨는 9·11 테러의 한국인 생존자였다. 동훈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회의 중 굉음이 들리면서 사무실 지붕이 회의실 3분의 1정도 주저앉았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고 지진인가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TV를 켠 동훈씨는 뉴스에서 자신이 있는 건물이 뻥 뚫린채 불에 타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광경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졌다.
 
비행기는 쌍둥이 빌딩 북쪽 타워의 93층에서 99층 사이에 충돌했다. 다행히 사무실이 충돌 지점보다 저층인 84층에 있었기에 동훈씨는 화를 피했다. 하지만 사무실 문을 열자 시커먼 열기와 연기가 밀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동훈씨는 소방관들이 올때까지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고 동료들에게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내려가자"고 주장했고, 그의 판단은 옳았다.
 
동훈씨 일행은 비상계단을 통하여 천천히 내려가며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78층 계단에서 문이 막혀 있었고 사람들은 꼼짝없이 갇힌 상황이 되었다. 그때 79층에서 한 남자가 소리치며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했다. 남자는 소방호스를 꺼내 직접 복도의 불을 진압해가며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안전한 다른 비상계단으로 이끌었다.
 
동훈씨는 어려운 순간에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서서 길을 개척해준 의인에 대하여 "영웅 같았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의인의 신상과 생사 여부는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무역센터에 닥친 엄청난 재앙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목적지 LA가 아닌 뉴욕으로 온 항공기는 막대한 양의 항공유를 거의 그대로 실은 채 쌍둥이 빌딩을 덮치면서 사실상 대형 폭탄이 되어버렸다. 항공유로 인하여 발생한 불길은 쉽게 꺼지지도 않았다.
 
97층의 성아씨와 104층의 재훈씨를 비롯하여 충돌 구간 상층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앞다투어 911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당시 녹취록에는 간절하게 구원을 호소하는 이들의 긴박한 호소와 비명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어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처연하게 한다.
 
북쪽 타워가 공격받은 지 17분 뒤인 오전 9시 3분, 이번에는 두 번째 비행기가 남쪽 타워의 77층에서 85층 지점 사이를 강타했다. 그때야 전 세계는 비로소 이 사건이 사고가 아닌 테러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차 테러 직전 "남쪽 타워는 안전하다"는 방송을 듣고 건물에 그대로 머물렀거나 심지어 대피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남쪽타워의 생존자 브라이언 클라크씨는 탈출을 위하여 비상계단을 따라가다가 연기와 불길에 막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일행들이 올라가야할지 내려가야할지 결정하지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브라이언씨는 81층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브라이언씨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발휘하여 낯선 남자를 구해내어 부축하고 비상계단으로 돌아왔다.
 
이어 브라이언씨는 자신이 구해낸 스탠리씨와 함께 과감히 아래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렸다. "아래에 뭐가 있는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몇발자국, 운명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돌이켜보면 좋은 결정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출구는 연기가 심하지 않았고, 브라이언씨의 용기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두 사람은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와 극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스탠리씨는 건물을 탈출한 후 우연히 마주친 한 교회앞에서 무릎을 끓으며 "하나님, 이분이 저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입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브라이언씨는 "내가 당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라면 당신도 나를 81층으로 불러준 덕분에 내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 화답했다. 브라이언의 용기와 선행이 두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그들은 지금까지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위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던 브라이언씨의 동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희생을 당했다. 그곳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은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한편 북쪽타워에서는 비상계단에 대피하려는 사람들이 대거 운집하며 길이 막히는 상황이 벌어졌다.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세 명 정도가 지날 수 있는 좁은 통로에서 두줄을 서고 나머지 공간을 비워둔채 부상자와 노약자들을 먼저 내려보냈다고 한다.
 
이런 속도라면 한층을 걸어서 내려가는데 1분, 110층을 기준으로 하면 건물을 다 내려가는데 두 시간이나 걸리는 상황이었다. 외부와 단절되어 테러가 벌어진지도 알지못했고 건물이 언제 붕괴되거나 불길에 휩싸일지도 알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가능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때 비상계단을 통하여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진입한 소방관들이었다. 그들은 45kg에 이르는 무거운 소방장비를 메고 1층부터 걸어서 올라왔다. 사람들은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거침없이 위험을 무릅쓴 소방관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응원했다.
 
당시 건물안의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헬기도 투입됐다.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옥상으로 나왔다면 헬기로 밧줄을 내려서 구조가 가능했다. 하지만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옥상 문은 잠겨있었고 비행기 충돌로 원격제어 시스템이 망가지면서 개방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행기 충돌로 내부 온도가 1000도까지 상승한 건물 안에 갇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열기와 연기를 견디지 못해 창문에 매달렸다가 추락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테이블보를 낙하산처럼 뒤집어쓰고 뛰어내리거나 손을 맞잡고 함께 투신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추락한 사람들만 200여 명에 달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한 사람들도 많았다.
 
같은 시간, 동훈씨 일행은 북쪽 타워 1층에 도착하여 소방관들의 안내를 받아 지하를 통하여 다른 건물로 대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건물의 입구가 눈앞에 보이던 그 순간 또 한 번 엄청난 굉음이 들리면서 지하몰은 초토화됐다. 오전 9시 58분 59초, 남쪽 타워가 끝내 붕괴된 것이다.
 
잠시 의식을 잃었던 동훈씨는 소방관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훈 씨는 다친 동료를 부축하며 다시 대피를 시작했고 마침내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동훈씨 일행을 무사히 구출한 소방관들은 숨돌릴 틈도 없이 다시 남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북쪽타워 건물로 되돌아갔다. 동훈씨는 목숨을 구해준 소방관들에게 고맙다고 감사를 표했지만, 아무도 그들이 사지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차마 말리지는 못했다. 그 안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북쪽 빌딩까지 붕괴되며 쌍둥이 빌딩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얼마전까지 그안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하러 들어간 소방관들의 존재도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

북쪽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동훈씨는 "패닉이 됐다. 즐거움도 기쁨도 슬픔도 없는, 바보가 된 것 같은 멍한 기분이었다"고 먹먹하게 회상했다. 이 모든 것이 첫 번째 비행기의 충돌 이후 불과 102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이후 '그라운드 제로(사고 지점)'을 찾아 간절히 기도를 하며 혹시나 가족들이 살아있지 않을까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전단지를 만들고 근처의 병원을 다 돌며 가족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가족들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한국인 성아씨와 재훈씨 역시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테러 발생 후 1년쯤 지나 뒤늦게 성아씨의 부모님은 겨우 딸의 시신 일부를 찾을 수 있었다. 성아씨의 부모님은 유해를 확인하고"우리 딸이 갓 낳았을 때 크기만큼 되어 돌아왔네"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성아 씨의 부모님은 우린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했다. 유해 일부라도 찾지 못한 가족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재훈씨의 부친은 사망진단서로만 아들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다"며 침통해했다.

911 테러가 남긴 희생자는 총 2977명에 이른다. 그중 400여 명은 경찰관과 소방관이었다. 재훈씨처럼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한 희생자도 천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911 테러의 범인은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으로 드러났다.이슬람 극단주의자이자 극렬한 반미주의자였던 빈 라덴은 민간 항공기를 공중 납치해서 자살 테러를 지시했다. 두 대의 비행기는 미국 경제의 상징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고, 세 번째 비행기는 미군의 상징 국방부 펜타곤을 노려서 18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사실 테러범들의 하이재킹을 당한 네 번째 비행기도 존재했다. UA93편은 펜실베이니아의 허허벌판에 추락한 상태로 발견됐다. 사고 후 수거된 블랙박스와 희생자들의 통화 내용을통하여 진실이 밝혀졌다. 테러범들이 UA93편을 장악했지만, 당시 승객 몇명이 지인과 통화를 통하여 쌍둥이 빌딩 붕괴와 비행기 자살테러 소식을 알게 됐다.
 
UA 93편 승객들은 자신들이 탄 비행기도 자살테러 대상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용감하게 테러범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승객들은 서로에게 무언의 응원을 나눈뒤 힘을 합쳐 일제히 테러범들에게 돌진했다. 테러범은 승객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게 되자 기수를 내려서 그대로 추락했다.
 
비행기가 떨어진 지역은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불과 20분 거리로, 테러범들은 미국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안타깝게 전원 사망했다. 하지만 그들의 숭고한 용기와 희생으로 어쩌면 워싱턴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더 큰 참사를 막아냈다.
 
911 테러가 남긴 후유증은 이후에도 전세계에서 큰 영향을 남겼다. 미국은 보복을 결의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잇달아 전쟁을 일으켰다. 2011년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911 테러 10년 만에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테러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불안한 세상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희생당하는 이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않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를 도우려는 많은 사람들의 선한 의지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테러범의 존재를 알리려했던 승무원, 테러범에 용감하게 맞서싸운 승객들, 탈출하는 중에도 또다른 사람을 구조해낸 사람, 계단 한쪽을 비워두고 질서정연하게 탈출하는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사지로 뛰어든 경찰관과 소방관 등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모여서 암울한 비극속에서도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생존자 동훈씨는 지금도 그때 비상계단에서 잠시 눈이 마주쳤던 한 앳된 얼굴을 한 젊은 소방관의 기진맥진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911 메모리얼 파크'라는 이름의 추모공원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911 테러의 모든 희생자들 이름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폭포는 희생자와 가족들의 '채워지지 않는 곳으로 흐르는 눈물'을 상징한다.

또한 메모리얼 파크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 곳곳에는 희생자들이 다니던 길, 벤치, 운동장 등 일상의 곳곳에 희생자들의 존재을 잊지않기 위해 이름을 새겨놓았다. 아픈 상처라도 기억하고 간직해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날이 지나도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당신을 지울 수 없습니다.'

메모리얼파크에 새겨진 메시지다. 한국인 희생자의 유족들은 "우리 아들과 딸은 우리만 기억해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꼭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면서 깊은 울림을 남겼다.
꼬꼬무 911테러 세계무역센터 오사마빈라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