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당시의 무거운 공기마저도 카메라에 담겼다. 중요 역할과 대사가 있는 남성 배우만 68명에 이른다. 연기 배틀의 장(場)이 된 스크린은 혈흔과 불꽃이 튀지 않을 뿐, 서로 엉키고 풀어지면서 시너지를 발산한다. 누구 하나 버릴 것 없는 독립적 캐릭터의 향연이자 앙상블이 빛난다. 대머리 분장(분장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을 한 황정민은 간사하고 교묘한 뱀의 인간화로 그려진다. 대척점에서 버티는 정우성을 보면 우직한 황소가 떠오른다.
김성수 감독은 19살 한남동에 살며 어렴풋이 총성을 들었던, 역사 현장의 목격자다. 44년 만에 어릴 적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해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때 그 사람들을 조립해 보기로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다가간 결과다.
하지만 계급, 출신을 방패 삼아 세력을 키우는 대한민국의 조직 문화는 여전해 씁쓸함을 남긴다. 실존 인물이 떠오르는 외모와 이름 탓에 이와 같은 전율은 배가 된다. 극장을 나서며 역사를 곱씹어 보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따뜻한 분위기의 영화보다 진지하고 묵직한 드라마를 원한다면 <서울의 봄>을 택할 것 같다. 감독 개인에게는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치유의 시간이자 관객에게는 아픈 역사를 재확립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 고증, 배우 연기, 실화의 힘, 긴장감과 통쾌함 등 흥행 요인을 두루 갖추고 있다. 주제와 의미, 재미까지 갖춘 웰메이드가 오랜만에 등장해 극장가 훈풍이 예고된다. '극장의 봄'이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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