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붉은 장미의 추억> 관련 이미지.
백재호
하지만 애초 영상 녹화 정도로 생각했던 기획이었기에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백재호 감독 등 제작진이 낸 아이디어는 낭독극으로 무대에 올리려던 작품을 조금 비틀어 영화적 요소를 가미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중랑구 용마폭포공원 내의 야외 무대에 배우들을 세워놓고 배우들의 낭독 연기를 카메라 세 대로 찍었다.
단순히 낭독 내용만 담은 게 아니다. 각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이 마이크 앞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 마치 라디오 드라마처럼 연기 도중 흘러나오는 효과음을 배우들이 직접 도구를 만지며 만들어내는 모습까지도 가감 없이 담았다. <붉은 장미의 추억>이라는 작품의 재현을 넘어서 낭독극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여실히 묘사한 셈이다. 낭독극 그 자체를 위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배우들을 위한 감독의 헌사기도 하다. 출연배우들은 극단 경력으로 치면 나름 중견이지만 영화 촬영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던 배우들이 하나의 캐릭터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흑백 화면에서 가늠된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 눈빛과 표정의 묘한 차이를 카메라가 고스란히 잡아내 마치 연극 형식인데 생동감 넘치는 영화를 보는 듯한 복합 심상을 자아낸다. 이런 배우들을 카메라 밖에서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정체불명의 감독(김영민)도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한다. 마치 노필 감독의 영혼으로 현실에 등장한 것같은 환상의 느낌을 준다.
<붉은 장미의 추억>은 촬영과 조명 등 현장 스태프들을 관록의 경력자들로 구성했다. 회차는 1회차로 단 하루만에 찍은 결과물. 백재호 감독은 "선택과 집중으로 단 한 번의 회차였지만 최고의 스태프를 꾸리고 싶었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더해 극장 배급 방식도 기성 배급사가 아닌 감독이 직접 일대일로 접촉해 순차적으로 개봉하는 방식을 택했다. 통상 독립예술영화가 배급사를 통해 극장에 배급하기 위해선 적어도 수천만원이 든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대안 배급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의 공식 개봉일은 11월 2일이지만, 극장에서 동시 공개하진 않는다. 아트나인, 인디스페이스, 더숲아트시네마 등 독립예술영화 전용 극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영화를 공개하는 식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도 12월, 내년 1월 순으로 <붉은 장미의 추억>을 산발적으로 상영한다.
이에 백재호 감독은 "굳이 동시 개봉을 고집하지 않고, 극장 여건과 상황에 맞게 영화를 걸어달라고 말씀드리고 있다"며 "가장 공을 들인 포스터 제작 외엔 나머지 배급 비용은 크게 들지 않는 상황이다. 독립영화인들이 영화 제작이 어렵다, 배급이 어렵다고들 하시는데 이런 방법도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기자에게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