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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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현도 결국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선비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피난을 가던 장현은 능군리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해된 모습을 보고 "내 이 놈들을 잡아야겠다"며 오랑캐 무리들을 추적한다. 여기엔 연모하는 길채(안은진)를 지키겠다는 마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처럼 장현은 대의보다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이후 장현은 전쟁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적진에 위장해 들어가고, 청나라까지 가서 세자를 보필하는데 이는 모두 길채의 마음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의도에서 시작된다. 이런 그의 사적인 마음은 의병과 길채 일행을 구하고, 병자호란을 끝내는데 큰 공을 세운다. 반면, 대의를 품은 연준 일행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다.
장현의 이런 모습들은 한 사람의 사사로운 마음과 욕망들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돌아보면, 연준 역시 완전히 대의만을 위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8회 은애(이다인)와 다시 만난 연준이 "부모 잃은 나를 키워준 능군리 어른들께 내가 임금을 성군으로 만드는 훌륭한 사람이 되면 뿌듯해 할 것 아니냐"고 고백한다. 이는 그 역시 '대의'보다는 '인정'받고 싶은 사사로운 마음이 컸음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세상은 개인의 마음을 바꾼다
반면, 사회 역시 한 개인의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길채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전쟁이 나기 전 길채는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며 무엇보다 연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활달하지만 새침한 양가집 규수였다. 그네에서 떨어지는 쇼를 벌여서라도 자신의 인기를 확인하고, 연준의 관심을 끌려 하는 그녀의 모습은 철없기만 했다.
하지만, 전쟁이 나고,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했을 때 길채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길채는 피난 중 만난 적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한다.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함께 피난 길에 오른 이들도 돌본다. 방두네(권소현)의 출산을 용기 내어 돕고, 아기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굴 밖으로 나간다. 은애가 겁탈당할 뻔 했을 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며 현실적인 판단으로 위로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에도 길채는 용기와 현실감각을 발휘한다. 대장간을 운영하며 가족을 궁핍에서 구해낸 그녀는 더이상 철없는 규수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 주체적인 한 사람이 된다. 나아가 이렇게 새롭게 발견하고 획득한 자신의 모습을 존중하며 더 이상 남자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다. 10회 원무(지승현)의 청혼에 길채는 당당히 이렇게 말한다.
"사내들은 제가 웃으면 상냥한 아내가 될 거라 여기고 제가 다정하면 조신한 며느리가 될 거라 짐작하죠. 지금은 잠시 앙큼해도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전 달라지지 않아요. 제 웃는 얼굴을 좋아하는 사내는 많아도 제 고약한 모습까지 좋아하는 사내는 없죠. 하지만, 나리. 전 제가 가진 것 중 이것은 가져가고 저것은 남겨둘 수 없답니다. "
이는 길채가 남자들에게 의존하려던 모습에서 벗어나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수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대사였다. 사회의 변화는 때로는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