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희미해진 순수함을 다시 선명하게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연출가로 돌아온 신성우의 <삼총사>

23.10.05 10:23최종업데이트23.10.05 10:23
원고료로 응원

▲ 뮤지컬 <삼총사> 포스터 박장현, 후이, 렌, 이건명, 최대철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삼총사>는 11월 19일까지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서울 공연 이후에는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부산 소향씨어터 신한카드홀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 글로벌컨텐츠

 
2009년 초연 이후 유준상, 신성우, 엄기준, 민영기, 규현 등 인기 배우들이 거쳐간 뮤지컬 <삼총사>가 어느덧 아홉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알렉상드르 드 뒤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삼총사>는 총사를 꿈꾸는 시골 청년 '달타냥'과 전설적인 삼총사('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전 시즌까지 아토스를 연기한 배우 신성우가 이번 시즌 연출을 맡은 것도 눈에 띈다. 신성우가 빠진 아토스 역에 이건명, 최대철, 김형균이 캐스팅됐고, 박장현(브로맨스)과 후이(펜타곤), 렌(뉴이스트), 유태양(SF9), 민규(DKZ)가 총사를 꿈꾸는 달타냥에 분한다. 외에도 김현수, 장대웅, 안유진, 이윤하, 서범석, 김상현 등이 출연하는 <삼총사>는 11월 19일까지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순수함이 희미해져갈 때

누구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삼총사>의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파리 여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누리는 '아라미스'는 과거 '이사벨'이라는 여인을 향한 사랑을 회상한다. 목숨과 사랑의 갈림길에서도 사랑을 택할 만큼 '아라미스'는 순수함을 간절하게 간직했다(넘버 '목숨인가 사랑인가'). '아토스'도 한때 '밀라디'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고(넘버 '당신은 나의 기사'), '포르토스' 역시 해적왕으로서 바다를 지배한 과거의 영광을 노래한다(넘버 '해적왕 포르토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순수함에는 점점 때가 묻고, 그렇게 희미해져간다. 삼총사 역시 이를 피할 길이 없었다. 추기경의 음모로 '콘스탄스'와 정체 모를 남자(훗날 국왕임이 밝혀진다)가 납치된 것을 보고도 삼총사는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 사랑 앞에 목숨을 내놓던 용기도, 바다를 평정하던 낭만도 사라졌다. 이때 삼총사를 깨운 건 '달타냥'이었다.

"두려운 거죠? 겁나는 거죠?"

'정의는 살아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굳게 믿고 총사를 꿈꾸며 파리로 상경한 '달타냥'.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소리를 듣지만, 그런 그의 순수함은 삼총사를 깨운다. 더 정확히는 삼총사의 희미해진 순수함을 다시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세상 앞에 선 삼총사는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넘버 '우리는 하나').

"언제 우리가 두려워한 적 있나."

그렇게 추기경 '리슐리외'가 꾸민 음모를 밝혀내기 위한 '달타냥'과 삼총사의 여정이 시작된다. 희미해져가는 순수함을 깨우는 건 결국 또 다른, 새로운 순수함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는 '달타냥'의 외침에 뮤지컬 <삼총사>는 추기경의 음모를 밝혀내는 것으로 화답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권선징악, 나아가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해피 엔딩이다.

다행히도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의는 실현되었지만, '불의'처럼 보이는 인물들의 행위 이면에 그들 각자가 믿는 정의가 숨어있는 듯했다. 추기경 '리슐리외'는 사실 국왕의 쌍둥이로, 권력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리슐리외'는 빼앗긴 왕좌를 되찾겠다며 왕을 납치하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리슐리외'에게 정의는 무엇이었던가? 해당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 서범석은 "객관적인 정의를 공부하지만 주관적인 정의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싸운다"라는 말로 <삼총사>를 설명한 바 있다.

'리슐리외'의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밀라디'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아버지를 데리고 도망가던 '밀라디'는 총사인 연인 '아토스'에게 가로막히고, 끝내 아버지를 잃고 만다. 그리고 낙인이 찍힌 '밀라디'는 자신을 찾아온 '리슐리외'에게 복종하기로 맹세함과 동시에 복수를 다짐한다.

추기경의 근위대장인 '쥬샤크'도 추기경의 음모를 돕는 악인으로 묘사되지만, 그는 그저 자신이 모시는 '리슐리외'에게 복종하고 그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소개된 '악의 평범성'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밀라디'와 '쥬샤크'에게 정의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의'라고 믿지 않았을까?

<삼총사>가 던져주는 또 하나의 질문이리라.
공연 뮤지컬 삼총사 글로벌컨텐츠 한전아트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학에서 행정학과 정치외교학, 사회학을 수학했다. 현재까지 뮤지컬, 야구, 농구, 그리고 여행을 취미로 삼는 데 성공했다. 에세이 『여행자로 살고 싶습니다』를 썼다. │ anjihoon_510@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