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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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 국가 경제가 악화되던 상황에서 무가베는 타국의 전쟁인 2차 콩고내전(1998-2003)에 참전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무가베의 의도는 콩고 정부군을 지원하는 대가로 광물자원을 받아 수익을 내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전쟁의 수익은 대부분 무가베와 측근들에게만 돌아갔고,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의 부담은 고스란히 짐바브웨 국민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무가베는 핵심 지지기반이던 퇴역군인들의 반발과 민심 악화로 장기집권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이번에는 토지 재분배 정책을 내세워 2001년 11월, 백인들이 소유한 토지의 무상몰수를 허용하는 대통령령을 발표한다. 그 선봉에 선 퇴역군인들과 제5여단은 백인들의 농장에 침입하여 농장주들을 강제로 내쫓고 방화-폭력 등을 일삼았다. 공격의 표적이 된 수많은 백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삶의 터전을 잃고 해외로 도피해야 했다.
하지만 독립 이후 짐바브웨 경제의 핵심축이던 백인들의 농장을 일방적으로 몰수한 것은 더 큰 후폭풍을 불러왔다. 각종 농산물과 생계형 작물들의 생산이 급감하면서 짐바브웨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졸지에 식량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백인 농장에 일하던 약 40만 명의 흑인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그 가족까지 포함하여 국가 실업률이 50%까지 폭증했다. 백인 토지 몰수정책에 반발한 서구권의 경제적 지원도 끊기고 말았다.
여기에 짐바브웨의 파멸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화폐 개혁'이었다. 경제학위를 수료했다는 전력이 의심스럽게도 무가베는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화폐 표기단위에서 0를 모두 삭제하고 새 지폐를 마구잡이로 발행한다는 어이없는 정책을 내놓았다. 당연하게도 화폐 가치는 더욱 폭락했고, 100조 달러 단위의 지폐도 등장했다. 초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이른 2008년에 이르면 짐바브웨의 경제는 10의 22제곱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상승을 기록할 만큼 완전히 무너졌다.
궁지에 몰린 짐바브웨 정부는 2009년 결국 외국 화폐 사용을 공식 허가한다. 당시 짐바브웨에서는 이미 미국 달러 사용이 선호되고 있었고, 2015년에 이르면 결국 정부가 짐바브웨 달러 폐기를 선언한다. 화폐 폐기 당시 짐바브웨 달러로 17경 5000조 달러의 가치는 미국 화폐로 단돈 5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무가베 정권 하에서 국가 경제와 사회 시스템이 철저히 무너지면서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1990년대 60대였던 짐바브웨인의 기대수명은 2006년 기준 30대로 추락했다. 유엔(UN)은 "짐바브웨 인구의 절반이 기아에 직면해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무가베는 2009년 3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수단을 30년간 지배한 오마르 알 바시르나 북한 김정일 등을 제치고 '세계 최악의 독재자 1위'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무가베의 여러 가지 실정 중에서도 1위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나라 경제를 파탄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최악의 평판 속에서도 무가베가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철권통치였다. 무가베는 합동작전사령부(JOC)와 국립청소년서비스(NYS)라는 이름의 친위조직들을 만들어 국가안보를 핑계로 정권유지를 위한 선거조작 및 민간인 테러-폭력 행위 등을 자행했고, 어린 청소년들까지도 자신의 수족으로 이용했다. 또한 무가베는 2008년 대선에서는 유력한 야당 후보였던 모건 창기라이와 그 지지세력을 탄압하여 결선투표를 포기하게 만들고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84세의 나이에 재집권에 성공한다.
무가베는 현모양처였던 첫 번째 아내 샐리가 사망한 이후, 1996년 비서였던 41세 연하의 그레이스와 재혼에 성공했다. 국가가 파탄난 상황에서도 무가베 일가의 '사치'는 극심했는데, 여러 채의 초호화주택을 지어 자신의 별장들로 애용했고, 생일 때마다 자신의 나이와 똑같은 무게의 케이크를 특별주문하는가하면 생일파티 한 번을 위하여 17억이 넘는 돈을 들였다고 한다. 지난 2014년, 무가베가 자신의 90세 호화 생일파티를 기념한 소감에서 "9살 소년같은 젊음을 느낀다. 나는 90살에서 0을 떼버렸다"고 즐거워하던 모습을 통하여, 국민들이나 국제사회와 철저히 괴리된 그의 현실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정권의 실질적 2인자였던 아내 그레이스는, 항상 값비싼 명품을 즐겼고 런던에서 한 고급 백화점의 셔터를 내리고 혼자만의 쇼핑을 즐기는가 하면, 파리에서는 1시간 쇼핑에 1억 원 이상의 돈을 썼다는 일화도 전한다. 또한 그레이스는 사치뿐만 아니라 안하무인에 폭력적인 성격으로도 악명이 높아 여러번 폭행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무가베 일가의 권력도 최후의 순간은 찾아왔다. 무가베는 아내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위하여 자신의 측근이자 독립투쟁을 한 전우였던 에미슨 음낭가과의 축출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2017년 11월, 음낭가과를 지지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여 무가베 일가가 축출되면서 무려 37년간의 기나긴 철권통치도 막을 내렸다. 무가베의 사임소식에 짐바브웨 국민들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나와 환호했다.
다만 무가베의 퇴진이 곧 인과응보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무가베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로 했고, 무가베 일가는 사임 이후에도 막대한 연금을 받으며 계속 호화생활을 누렸다. 2019년 9월 6일, 95세의 무가베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싱가포르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평균수명이 반토막난 짐바브웨의 국민들과 달리, 무가베 본인은 끝까지 평온하게 천수를 다 누리고 간 셈이었다.
'독재는 압제를 낳고, 노예를 낳고, 잔혹함을 낳는다. 더 끔찍한 것은, 독재는 어리석음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어록이다. 짐바브웨가 독립 이후 오히려 오늘날까지 아프리카의 최빈국으로 전락한 데는 무가베가 남긴 악영향이 너무나 컸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때는 독립운동가였으나 결국 자신의 욕망과 장기집권에만 눈이 멀어 국민과 정적에게 총구를 겨눈 독재자로 타락하면서 국가 전체가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미치는 영향력이 한 나라의 운명과 역사까지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지 그 무게감을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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