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치우친 기업문화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담은 <잔혹한 인턴> 포스터.
tvN
일과 돌봄 사이를 오가는 해라
해라는 '독하게 일해 온' 워킹맘이었다. 아이가 화상을 입었을 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하고 승진을 위해 '임신 포기 각서'에도 서명을 한다. 임신과 육아로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겐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같이 죽기 살기로 일하는 워킹맘까지 싸잡아 욕먹는 거 더는 못 참아"라고 말하며 모질게 대하는 상사였다.
하지만, 아이를 도맡아 키워주던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자, 해라는 아이와 친정엄마 둘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우울하고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면서 점차 전업주부의 삶에 적응해 간다. 그 사이 해라는 돌봄의 중요함을 알게 되고 워킹맘의 고충에 공감하는 인물로 변해간다. 그렇게 7년을 보내다 인턴 사원으로 복귀를 한다.
복귀한 해라에게 '실장'이 된 입사 동기 지원(엄지원)은 임신과 육아로 휴직 예정인 문정(이채은)과 소진의 퇴사를 유도하는 미션을 준다. 하지만, 해라는 문정의 퇴사 후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오히려 소진의 휴직을 막는다. 그리고 아이의 등하교 도우미를 소개시켜 주는 등 소진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께 한다.
해라는 이처럼 일과 육아에 각각 전념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큰 폭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하나 있는데 일과 육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 한다는 점이다. 해라는 육아의 소중함을 알지만, 여전히 회사에서는 육아를 티내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고, 소진 역시 그럴 수 있도록 돕는다.
정말 이들의 잘못일까
하지만 복귀한 회사는 예전보다 더 삭막해졌다. 해라의 모진 모습에 '똑바로 살라'고 충고하던 동료 지원은 일하는 기계가 돼 있다. 경쟁사 온정기업의 '임신포기각서' 사건을 시대착오적이라 비난하면서도 회사 간부와 동료들의 입에서는 육아를 위해 휴직한다는 여직원들을 둘러싸고 이런 말들이 술술 나온다.
"저처럼 쓸 일 없는 사람들에겐 좀 억울한 제도죠."
"돌아오겠다고 자리는 맡아놔서 대체자를 앉히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다른 직원들 업무를 무조건 늘릴 수도 없고."
"애가 없는 사람에게는 쓸 기회조차 없는 여러모로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제도."
이는 기업문화 자체가 오직 경쟁과 성취로만 무장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말들이었다. 이런 말들이 난무하는 회사 안에서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민폐를 끼치고, 경쟁에 뒤처지는 것이 되고 만다. 당연히 이런 구조에서는 그 누구도 '돌봄'을 티 낼 수 없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회사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는 죄책감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라와 소진처럼 드라마 속 워킹맘들은 '돌봄'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마치 '애가 없는 것처럼' 일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다 '애가 있음'이 티가 난다면 이를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고 죄책감을 느끼며 '더 열심히 일해야지'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나는 마치 아이가 없는 듯 일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워킹맘들의 노력이 이런 구조를 더 강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