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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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하에게는 지난 44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6살짜리 소녀는 어쩌다 미국 입양아가 된 걸까. 그 뒤에는 충격적이고 슬픈 비밀이 숨어있었다.
사실 경하는 유괴되어 강제로 해외입양되었던 것이다. 경하가 실종되었던 1975년 5월 9일, 한 여인이 친구들과 놀고 있던 경하에게 접근했고 기차에 태워 종점인 충북 제천까지 데려간 이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경하는 역 앞 경찰서로 가서 집을 찾아달라 부탁했지만, 경찰서에서는 경하를 제천의 한 고아원에 데리고 갔다. 또한 고아원에서는 경하를 미아가 아닌 고아로 등록했고 불과 두 달 만에 해외 입양을 결정했다.
당시 경하는 본인의 이름이 '신경하'이고 나이와 가족관계까지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도 고아원도,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를 찾아주려고 노력한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고아원 원장은 경하에게 "넌 엄마 아빠가 버린 아이야. 네 이름은 지금부터 백경화야"라고 세뇌시키며, 자신의 성을 따라 아이의 성과 이름까지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찾지 못하게 하려는 꼼수였다.
또한 입양 기관에서는 경하를 고아가 된 사유에서 '버려진 아이'로 분류하고 수원 백씨의 호주인 백경화로 고아 호적을 만들었다. 이에 경하는 완벽하게 공식적인 서류상으로 '고아'가 되었고, 입양 기관장의 동의만으로 미국 입양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경하는 미국에 입양갈 때 갖고 갔던 '여행증명서'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는데, 당시에 기재된 경하씨의 신상명세는 모두 실제와 다른 거짓이었다.
그나마 외향적인 성격으로 낯선 곳에서도 비교적 잘 적응했던 경하는 고아원에서도 '굿걸'이라고 불릴 만큼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입양이 결정되며 생전 처음 보는 서양인,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입양되면서 한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두려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는 해외 입양이 빈번했다. 그것도 고아가 아니라 미아인데도, 부모를 찾아주지 않고 해외 입양을 보내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미아를 의도적으로 해외 입양 보낸 기관은 아동 1명당 입양 수수료 5000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1인당 국민 소득이 4500달러였던 것과 비교해 엄청난 비용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한 해에만 8000명 이상이 해외 입양으로 보내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입양아 수송 전세기까지 운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당시 한국에서는 입양 부모나 기관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입양을 진행했고, 당사자인 아이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박경진씨는 해외로 입양되던 아이들을 자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경진씨는 "아이들의 가기 싫은 듯한 걸음이 기억난다. 손을 안 놓고 자꾸만 우리에게 안기더라.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승무원들도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경하가 미국으로 입양된 것은 1976년 2월 4일, 실종된 지 약 9개월 만이었다. 7살에 미국에 건너온 경하씨는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마다 기억 속의 집과 동네 그림을 그리며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경하씨는 한국에서 자신이 지내던 고아원 원장에게 연락을 해서 혹시 자신를 찾는 사람이 없는지 물었지만 아무도 없었다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한때는 "진짜 나는 버림받았구나"라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경하씨는 양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해서 결혼하고 딸도 낳았다. 경하씨의 딸은 진짜 엄마를 그리워하는 경하씨를 위하여 DNA를 미국의 325캄라 기관에 대신 등록해줬다. 비록 비정한 세상과 시대는, 모녀를 떨어뜨려놓았지만, 그 모진 세월에도 끝내 서로를 찾으려는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마침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현재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다. 1970년에서 1989년 사이 해외 입양을 간 아이는 총 10만 8402명이다. 전 세계 375명의 수많은 또다른 '경하'들이 진실화해위에 해외 입양 실태에 대한 조사를 신청했다. 그들이 한국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시의 진실을 밝혀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경하씨 가족이 다시 상봉할 수 있었던 것은 DNA 등록이 결정적이다. 현실적으로 입양 서류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만큼 DNA가 당사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극적으로 딸을 찾은 태순씨는 DNA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부모가 죽지 않는 한, 자식들도 부모를 찾으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니까 양쪽이 모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또다른 기적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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