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재난으로 모든 게 리셋되면서 제도가 재편되고 새로운 계급이 생겨났다. 부자든 빈민이든, 대출 껴서 샀든, 어제 이사를 왔든 이제는 생존력이 중요한 세상이 왔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버리고 권력에 취한 영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해가며 갈등하는 민성, 리더를 무조건 따르고 의지하는 금애. 이들의 삼각편대로 황궁 아파트 정비 사업이 완성되고 완벽한 천국이 완성된다. 작은 나라로 보일 만큼 단단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수다. 식량을 찾는 외부 탐사 시 투철한 희생정신도 가져야 한다. 남을 해쳐야 하는 잔인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먼저 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살인은 점점 무감 감해져만 간다. 먹을 것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은 원시시대로 회귀한 현대의 씁쓸함을 뜻한다. 인간성 퇴보의 다양한 양상이 펼쳐짐에 따라 누구나 악인과 선인을 넘나든다. 안과 밖이 확실하게 구분된 거대한 성이 된 아파트는 차츰 썩어간다. '우리'와 '너희'만 있고 '나'와 '너'는 없는 이분법과 파시즘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타심은 죄가 되고 이기심만 팽배해진다. 민주적인 투표로 결정했으니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해도 다수결에 따르는 민주주의의 단점이 재현된다.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양극화가 발생하고 다수의 횡포로 소수의견은 묵살된다. 점차 분열을 야기하고 군중심리로 몰아간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거다.
영화는 130분 동안 관객을 붙잡고 끈질기게 묻는다. '만약 나라면 외부인을 받아 줄 것인가, 내칠 것인가'. 끊임없는 딜레마가 좇아온다. 이를 계속해서 불편해하는 인물은 명화(박보영)다. 집으로 귀환한 혜원의 말을 믿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작은 불씨가 번져 집을 태우듯. 견고했던 황궁 성은 균열이 생겨 무너져 버리게 된다.
극장을 나서는 데 지난겨울 갑작스러운 폭설에 한국 관광객을 도운 미국 부부 이야기가 생각났다. 본인도 힘들 텐데 침실과 음식을 나눈 온정에 모두가 훈훈했던 일화다. 엄청난 추위 속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베푼 인류애가 떠올랐지만 반면 섬뜩하게 다가와 공포스러웠다.
덧붙여, 하필이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앞 아파트 한 동 전체에 전기가 나갔다. 영화 속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화려한 불빛과 활활 타오르는 열기, 식을 줄 모르는 열대야에 깜깜해진 블랙아웃이 한 시간 넘게 진행 중이다.
시원한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앞 동은 그야말로 무간지옥일 것이다. 폭염에 지친 일요일 밤. 정전은 쉽게 복구될 기미가 없어 야속하기만 하다. 내가 저 집에 살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했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부탁한다면 들여보내 주어야 할지 갈등에 빠진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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