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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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영화는 달리의 창작활동을 ① 그의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착 + ② 아내 갈라에 대한 (마치 중세 기사도문학을 방불케 하는) 일평생 순애보의 고양 과정으로 설정하고 구현해낸다. 거기에다 독보적 천재로 형상화된 주인공이 만년에도 관심을 놓지 않았던 천문학과 수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전 방위적인 지적 탐구정신을 덧붙인다. 이런 조명의 태도는 상당히 정치적인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
제작진은 아마 살바도르 달리의 주요 관심사는 동시대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와 입장으로 '참여예술'을 행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 했던 것이라 설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대신에 거장의 관심사와 초점은 좀 더 장구한 스케일과 시야로 인류 문명과 철학적 쟁점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라 옹호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형이상학적 주제에 골몰했던 실제 주인공의 관점을 화면상에 충직하게 재현하려는 것처럼 다가온다. 문제적 인간으로서 주인공에 대한 논쟁적 조명보다는 있는 그대로 거장의 삶에서 덜 알려진 이면을 재구성해 폭넓은 이해를 취하려는 방법론에 영화는 집요하리만큼 충실하게 다가선다.
여기에 누구나 궁금해 할 쟁점, 위대한 예술가의 사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영화는 풍성한 유산을 잔뜩 이야기보따리 풀 듯 설명해준다. 특히 동료 작가의 아내로 처음 만나 불륜으로 연결되고, 달리의 가족 - 특히 아버지 - 들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의절하다시피 하며 일평생 함께 한 운명의 상대, '갈라' 달리의 역할과 둘의 내밀한 에피소드가 잔뜩 풀어진다. 갈라는 단순한 순애보의 주인공이 아니라 파리 초현실주의 그룹에서도 존재감이 강력했던 예술의 이해자로 등장한다. 유독 모성애에 가까운 이해를 갈구하던 달리에게 10살 연상의 지적이고 행동력 강한 갈라는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조합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갈라는 남편이 오직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달리의 작업을 상품화하고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하는 등 내조와 외조를 전 방위적으로 행한다. 달리는 갈라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둘은 미국 망명시절과 (예나 지금이나 유럽, 그리고 세계 문화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파리 체류를 수시로 진행하면서도 작가의 고향 바닷가를 그들만의 안식처로 삼아 떠나지 않았다. 그 둘만의 공간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은 기록과 말년에 갈라가 마치 중세 기사도 문학의 재현을 이룩하듯 옛 성을 수리하고 틀어박힌 에피소드는 통념상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달리의 속사정을 이해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소화한다. 그들의 평생 해로스토리는 워낙에 비범해서 어느 순간부터 빠져들게 만들어버린다.
현대예술의 거장, 제대로 '톺아보기' 찬스를 제공하는 작업
살바도르 달리에 대해 관심이 깊어 그의 전시회를 방문했거나 관련 전기나 소개책자를 숙독한 이들이라면 이 영화에서 아주 특별하게 새로운 발견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텍스트를 통한 이해와 시각 이미지로 접하는 광경에서 오는 감흥은 차이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게다가 심지어 '무빙-이미지', 즉 활동사진의 운동성은 정지된 이미지 감상과 명확히 다른 체험인 법이다.
달리가 자신이 평생 치열하게 추구하고 기획하려 했던 조건과 환경 하에서 구축해나간 고향 인근 보금자리의 공간 변천사는 그 부분만 떼어놓고 봐도 꽤 재미있다. 고독한 대가의 이미지와 다르게 현대 대중문화에서 달리와 갈라가 체력 닿는 한 소화했던 방문객과의 접촉이나 일상적으로 선보였던 프로그램 장면들은 거의 개인미술관이나 도서관 활동처럼 묘사된다.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초빙되어 무대미술을 담당할 정도로 광대무변하게 이뤄진 (그의 폭넓은 관심사와 그 결과물로서의) 작업들을 목격하는 것도 회화작업 외의 다채로운 창작을 확인하는 보람을 선사한다.
그런 풍요로운 거장의 유산을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살바도르 달리라는 작가의 진면목이 이런 거로구나 깨닫게 되고야 만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일평생 하나의 창작물처럼 직조하고 있었던 셈이다. 위악적이고 과시적인 기행 또한 순수예술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대중문화가 잠식하던 당대 사회상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연인 갈라와의 지독한 사랑의 연대기처럼 그는 중세 기사나 음유시인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는 그저 귀부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얻고 싶어 평생 부와 명성, 성공을 쫓았지만 타고난 재능 덕분에 단순한 속물이 아니라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 군주가 된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가 생전 인터뷰에서 밝히듯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가 예술의 자리를 침범하고 장악하던 시절에 그는 생존과 활동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시대를 선도해 나갔다. '광대'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말이다. 그가 후반기에 선보인 작풍인, 점점 동 시대성을 초월해 고전주의로 자기 스스로를 신화적 존재로 수립해 나간 활동상을 눈으로 목격한다는 건 단순히 정보 차원 습득과는 전혀 다른 체험이 될 테다. 그래서 그의 일종의 팝 아트적인 활동들, 예를 들어 '추파춥스' 로고를 즉석에서 디자인한 일화 같은 게 빠진 건 확실히 아쉽기는 하다. 뭐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에피소드라 뺐을 테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반갑고 유익했던 지점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려 한다. 스스로를 '돼지'나 '똥'이라 지칭하며 언론플레이를 즐기던 살바도르 달리이지만 예리한 통찰과 심미안은 늘 비수처럼 번득이고 있었다는 증명이다. 밀레의 '만종'에 대한 달리의 독창적이고 탁월한 해석,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한 거장의 터치가 영화의 종막 가까운 부분에서 깜짝 서비스처럼 말미에 툭 튀어나온다. 자신들의 비전을 풀어내던 제작진의 깜짝 선물로 여겨져 더 반갑다. 우리가 잘 몰랐던 달리의 이면을 듬뿍 선사하는 거장의 소개영상이자 (<반지의 제왕> 에필로그에서 불사의 땅으로 떠난 주인 '프로도'의 노트를 완성하던 충직한 '샘'의 태도 그 자체인) 꼼꼼한 영상 도슨트 작업과 만났던 시간이다.
<작품정보>
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
Salvador Dali – In Search of Immortality
2018|스페인|끝나지 않는 초현실 콘체르토 / 다큐멘터리
2023.08.02. 개봉|110분|12세 관람가
감독 데이비드 푸졸
출연 살바도르 달리, 갈라 달리, 몽세 아구어, 알프레도 히치콕,
루이스 부뉴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외 다수
제작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
수입/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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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