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한 장면.
ENA
주란은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의 불안정한 심리는 여기서 태동했겠지만, 그의 증상이 "하나도 낫고 있지 않은" 데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분명히 맡은 냄새나 분명히 들은 소리 등 명백한 감각을 부정당하며 살아간다면, 누구라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된다. 가스라이팅의 위력이다. 주란의 긴 머리를 빗겨주며 주술을 거는 사악한 자는 바로 그의 남편 재호(김성오 분)다.
재호는 주란의 불안을 이용해 그의 감각을 조종한다. 악취와 소음과 목격한 것을 부정하고 주란이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믿게 만든다. 심리적 착각으로 오도시켜 정신과 약을 먹이고 유순하게 길들인다. 집 밖은 위험하며 '너를 보호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맹신하게 한다. 최면을 걸듯 주란을 미혹시켜 조종하며 살아왔다. 이런 이들 부부 앞에 어느 날 상은(임지연 분)이 나타난다. 상은은 즉각 주란의 삶이 망가져 있음을 그리고 고장 낸 자가 바로 재호 임을 직감한다.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동물적 촉수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란이 위험하다고.
물론 상은은 주란을 구제하러 나타난 천사가 아니다. 죽은 남편 윤범(최재림 분)이 재호에게 하려던 일(5억을 받아내기)을 실행하기 위해서다. 윤범이 집 전세 보증금까지 날리고 죽자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살아갈 길이 막막한 상은으로서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윤범을 제거하고 겨우 살아남았는데 여기서 아이와 함께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상은은 아내 폭력(나는 가정폭력이라는 모호한 용어에 반대한다) 피해자다. 동네가 다 알게 맞고 살지만 무엇도 누구도 상은의 피해를 구제하지 않는다. 가정폭력이 아니라 명백한 아내 폭력이지만, 뼈가 으스러지고 죽어 나가도 사적인 영역의 집안일인 것이다. 죽을 때까지 맞아도 누구에게도 구출될 수 없음을 깨달은 상은은 중대 결단을 내린다. 죽느냐 사느냐다. 죽을 결심까지 했지만 사실은 "살고 싶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탕웨이 분)가 갖은 방법으로 학대하는 남편을 죽여야만 살 길을 낼 수 있었듯, 드라마 <더 글로리>의 현남(염혜란 분)이 죽도록 구타하는 남편을 없애야만 딸과 살아갈 일을 도모할 수 있었듯, 상은 역시 그랬다. 남편을 죽인 게 탄로 난 사건들에 여론이 사납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경우엔 놀라울 만큼 잠잠하다.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통쾌한 복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구현되는 카타르시스일뿐, 현실에서는 평생 맞다 죽는 경우가 많다. 평화연구자 정희진은 이를 '학습된 희망'이라 불렀다. 폭력에 찌들어 사는 여자가 집을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남편이 개과천선 하리라는 '학습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다. 사회적 가스라이팅이 아내를 집 안에 결박시킨 것이다. 때리는 남자들은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심리적 불능을 뚫고 남편을 죽여서라고 살아남겠다는 아내의 생존본능은 눈물겹지만 현실 불가능하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론할 것이다. 헤어지면 되지 죽일 것 까진 없잖아. 그렇지 않다. 이는 남자들에게만 유효한 대안이다. 어떤 여자들은 애인이나 동거남,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안전한 이별이 불가능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