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정원"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시네마 달
그런 규정에서 상당부분 벗어난 영화가 있다. <작은정원>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포스터나 이미지 자료를 보면 근래 심심찮게 출현하는 실버세대 관찰 기록영화로 분류될 법하다. 이미 우리는 480여 만 관객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나 290여 만 관객 스코어를 쌓아올린 <워낭소리> 같은 한국독립영화 역대 1-2위 개봉작을 알고 있다(둘 다 다큐멘터리다). 본 작품은 그런 일군의 성공사례를 추종하는 형상으로 보이는 터이다 보니, 꽤나 유행 막차에 올라탄 변주로 규정하기 딱 좋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조곤조곤 뜯어보기 시작하면 <작은정원>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간파하게 될 테다. 일단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현재 한국독립영화판에서 창작자로도, 출연자로도 흔히 상정되지 않는 60-80대 고령 여성들로 작품 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다. 영화의 연출을 포함한 기술 스태프가 필수불가결한 도움을 줬다는 건 명백하다. 그렇지만 영화의 뚜렷한 초점과 방향성은 명백히 기존 독립영화들에서 영화의 방향과 색깔을 규정해온 인적 네트워크와 별개로 존재한다.
② 서울 중심-대학 영화전공과 차별화된 창작활동에 기반을 둔 작업으로서의 정체성이 명확하다. 강릉에 터를 잡은 감독과 그 주변에서 프로 영화인 혹은 예술가의 원대한 꿈 대신 소박하게 영화/영상을 수련한 이들, 그들의 도움으로 인생 황혼기에 또래 다수는 인생에서 평생 누려보지 못해온 문화적 호사(?)를 누리게 된 이들이 서로 어우러진다.
③ 이들이 담아내는 작품의 내용은 최신 사회적 유행을 반영하거나, 요즘 독립영화 주요 향유집단인 청년세대의 기호와는 안드로메다 급으로 동떨어져 있다. 영화는 홍보자료의 표현처럼 지독하게 느릿느릿한 속도로 흘러간다. 주인공들이라 할 일단의 할머니 그룹이 실제 삶의 리듬감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의도에 충실하다. 그래서 숨 가쁜 속도감과 리드미컬한 편집감이라는 동 세대 독립영화들의 스타일을 행여나 기대한 이들이라면 그들의 예상치를 온전하게 뒤집어 놓는다. 그렇다고 알고 보니 대단한 비밀을 숨겨두고 조심스레 풀어놓는 두뇌퍼즐 게임도 아니다.
그저 이 영화는 우직할 정도로 주인공들의 슬로 라이프를 찬찬히 늘어놓을 뿐이다. 그 직진에 설마 했던 관객은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분명히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현재 한국독립영화의 핵심 '소비자 집단'을 상정하고 작업을 한 게 아니다. 그 지점은 확고해 보인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주식거래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작은정원>을 표상하는 세 부류의 얼굴이 각자 지분을 공유하며 화면에 출연한다.
<제1주주>
영화의 제목과 동일한 동네 노년여성들의 소모임 '작은정원'이다. 이들은 길게는 70년, 짧게는 35년 이상 한 동네에서 얼굴 맞대고 살아왔다. 그런 8명의 노년 여성들이 동네 미화에서 출발해 사진촬영과 영화제작을 배워가면서 품위 있고 흥겨운 노후를 보내게 된 경과, 그리고 이들이 배움의 길을 놓지 않으면서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가능한 변화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이들은 사진을 배운 뒤 정지화면 말고 활동사진에 욕심이 났다. 그래서 단편 극영화를 제작해 영화제에서 상영되기에 이른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욕망은 충족될수록 증폭되게 마련이다. 이들은 다음 정거장으로 뚜벅뚜벅 전진한다. 마치 예정된 운명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피사체로 전시되는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 참여자로 활약한다. 그렇게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역으로 할머니들은 진화를 거듭 이어간다.
<제2주주>
그런 '작은정원' 그룹의 손뼉에도 맞장구가 필요하다. '디지털 소외'라는 신조어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지 오래인 세상이다. 촬영도 편집도 이들이 아무리 재교육을 받는다 해도 온전히 다 소화하기엔 한계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뼉을 마주치지 않으면 파문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런 핵심첨가제 역할이 바로 이 영화를 제작한 지역영상집단의 소임이다. 독립다큐멘터리 계에서 오래 활동한 이마리오 감독은 10여 년 전 영화제작의 중심지인 서울을 떠나 강원도 바닷가로 이주한다. 그 이후로 10년 넘게 지역에서 영화 제작은 물론 다양한 영화 관련 활동으로 한국 자본주의 핵심에서 빗겨난 강릉이란 동네에 이채로운 채색을 더하는 중이다. 그런 괴짜 감독과 그가 양성해온 영화동료들이 할머니들의 손뼉에 화답했다. 스스로 문을 두드린 부담스러운 제자들에게 사진을 가르쳤고, 영화 제작에 대해 전수했다. 한국 대부분의 '지방'에선 불가능한 사례다.
<제3주주>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어쩌면 배후의 큰손일지도 모를 존재는 바로 영화 속 풍경으로 자리 잡은 강릉 명주동 일대 동네라는 공간이다. 검색하면 금방 소개 글이 주룩 떠오르는 지역명소 봉봉방앗간을 비롯해 주인공 그룹이 일평생 살아온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지방도시 중에도 변두리다. 하지만 정감 가는 골목 곳곳에 이들이 가꾸는 화분과 화단이 촘촘히 채워지고, 시선을 기울이면 그곳엔 어김없이 '작은정원' 로고가 한 쪽 구석에 새겨져 있다. 집이란 공간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으면 기이할 정도로 금방 쇠락한다고 하는데 그런 보살핌 덕분인지 이 작은 초 고령화 사회에선 그 속도가 지극히 느리게 흘러간다. 물론 사람이 살며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작은정원' 멤버와 조력자들이 위치한다.
관객이 이윽고 발견하게 되는 사려 깊은 '슬로 무비'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