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흑교육>으로 연출 데뷔를 알린 가진동 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만 청춘스타, 한국에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 가진동이 연출자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흑교육>이라는 제목부터 그의 로맨틱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일 부천시 상동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흑교육>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세 명의 청소년들이 서로의 우정을 위해 누구에게도 말못했던 비밀을 공유한 뒤, 한 조직폭력배를 공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우정을 위해 벌인 비행으로 이들은 해당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무시무시한 수업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 있다.
엄밀하게 애초에 그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을 건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등을 연출한 구파도 감독이 이번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작품으로 인연이 된 가진동과 이런 저런 토론을 하다가 직접 연출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경우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작업이 중지됐을 때 가진동 또한 여러 생각이 들던 차에 제안을 덥석 수락한 것이다. "그 이후로 지옥이 시작됐다"며 가진동이 재치 있게 운을 뗐다.
고민의 결과물
"새로운 감독을 찾는 것, 찾더라도 소통하고 호흡을 맞추는 게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니 구파도 감독님이 제게 먼저 제안을 주신 거였는데 막상 하기로 한 이후 엄청 힘들었다. 감독은 결정하는 자리잖나. 근데 제가 사실 결정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웃음). 할 땐 많이 힘들었는데 끝내고 나니 현장이 그립기도 하더라. 지금은 두 번째 작품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첫 연출작으로 홍콩, 대만,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 등 전 세계 영화제를 돌고 있는 가진동은 두 번째 연출에 의욕을 보이며 영화에 담긴 여러 의미를 기자에게 설명했다. 세 명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지금의 의미심장한 제목을 잡은 것에 그는 "각 집단과 사회마다 저마다의 교육이 있다"고 부연했다.
"고등학교 졸업반은 교복을 입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보통 성인은 책임져야 할 일에 책임을 지는데 교복을 입는 순간까진 잘못을 해도 보호를 받을 수 있잖나. 그래서 세 명의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또 이들이 범죄를 저지른 뒤 학교나 가정이 아닌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곳애서 교육을 받게 된다. 흑(黑)이란 단어가 흑사회, 조폭 조직이란 의미도 담고 있다. 일종의 반면교사랄까.
물론 제가 로맨스 영화로 데뷔했기에 다들 첫 연출작은 로맨스 아닐까 생각하셨을 텐데 감독으로서 사랑 이야길 가장 먼저 하고 싶진 않았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 몇 년 전 제 인생에서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분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는 경험을 했고, 그런 걸 이번 작품에 녹일 수 있었다."
그 스스로도 과거 대마초 흡연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일까. 이후 사회봉사 및 기부활동을 이어가며 나름 재기에 성공한 그는 선악 구분에 생각이 많아 보였다. <흑교육>에서도 총 3장으로 이야기를 나눠 구상하는데 소제목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돼 있고, 극중 대사에서도 '세상엔 10%의 좋은 사람과 10%의 나쁜 사람이 있다. 나머진 그때그때 판단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식으로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몇 년 전 뉴스나 인터넷 댓글을 보며 많이 생각했다. 한 사람이 나쁜 짓을 했을 때 서로 욕하던 사람들이 그가 어느 순간 유기견을 입양했다고 하니 엄청 칭찬하더라. 좋은 사람이라도 나쁜 일을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그런 이야길 하고 싶던 차였다.
영화에서도 경찰이 직접 아이들을 훈계하지 않고 조폭에게 데려다 주잖나. 경찰이라면 보통 좋은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인데 영화에선 그들이 도리를 지키지 않고 흑사회에 청소년들의 교육을 맡겨 버린다. 오히려 나쁜 사람이라 생각되는 조폭들이 도의를 강조한다. 한국 상황은 잘 모르지만, 대만에선 경찰과 조폭의 유착 관계가 심심찮게 있기에 영화에 담게 됐다. 그리고 남자라면 대부분 비슷할 텐데 무리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후회할 짓을 하기도 하고 센 척을 하잖나. 멋있어 보이고 싶은 일이 창피한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런 걸 영화 속 청소년들에 반영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