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7일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 문화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국정원 정문 앞에서 블랙리스트작성 국가정보원 고발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희훈
검열에 이은 블랙리스트의 작동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파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지난 권위주의 정부시절 이를 처절히 경험했다. 그 작동방식이 피해자를 만들고 실제 공포를 자아내는 것은 바로 자발성에 기인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주범들은 사법처리 대상이었다. 그들의 지시는 일개 서류 속 문구로만 존재했던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실제 검열은 일선 현장의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실행한 과거 사례들이 적지 않다. 박근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그 현장의 주체들은 또 여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검열은 '윤석열차'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문화예술인이든, 일반 시민이든 검열이 자기 검열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자기 검열을 통한 표현의 자유 파괴가 언론 집회의 자유 파괴 즉, 민주주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박근혜 정부의 망령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윤석열 정부 1년 사이 광범위하게 부활했다. 실로 놀랍다. 특히, 지난 14일 국제도서전 개막식장 풍경은 이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필 김건희 여사가 왜'란 질문보단 윤석열 정권이 문화예술인들을 대하는 근본 인식과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시인이, 작가들이 국제도서전 개막식장에서 무자비하게 끌려 나갔다. 개막 연설에 나선 김건희 여사 경호팀에 의해서였다. 문화예술인들이 정당한 근거 없이 겪은 수모였다. 개막식에 앞서 기자회견에 나섰던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는 시의적절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자라 비판 받는 소설가 오정희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리하여,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윤석열 정부 1년, 잠잠해질 만하면 터지는 검열 사건의 피해자인 문화예술인들이, 관련 단체들이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대항해왔다. 여기에,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가세하는 중이다.
지난 23일, 내홍을 겪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사장의 이념을 거론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여당 의원들이 해당 사태의 본질과 관계없는 때 아닌 색깔론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이사장은 본인은 물론 과거 박근혜 블랙리스트의 상징과도 같같은 <다이빙벨> 사태를 겪은 영화인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또 최근 한 여당 의원은 3개 시도교육청을 통해 일선 고교 도서관에 보유 중인 박원순, 손석희,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등 10명의 인물과 세월호 등 1건의 참사 관련 서적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관련 기사 :
[단독] 고교에 '박원순' '손석희' '세월호' 책 보유 현황 제출 요구). 자칫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 횡행했던 불온 서적 리스트를 연상케 한다. 이 역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사상이나 정치적 검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적으로 규정한 노조를, 시민단체를 때려잡는다. 현 정부 여당이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통치술의 일환이다. 그런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정권 유지의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인 검열과 블랙리스트를 가랑비에 옷 젖듯 부활시키는 중이다.
무시무시한 현실은 그런 이에 대한 경각심 자체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외교와 민생, 경제 등 현안과 관련한 현 정부의 실정이 산적하다. 검열과 블랙리스트, 표현의 자유 관련 논란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쌓여가는 관련 사건과 이슈에 비해 양적으로 보도도 많지 않다. 보도 양이 적으니 체감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건이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요인 중 하나였다는 역사의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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