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미국식 자본주의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단아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23.06.21 17:34최종업데이트23.06.21 17:36
원고료로 응원
"그 사람의 인성을 보기 위해서는 그에게 권력을 줘봐라."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중 한명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긴 격언이다. 훌륭한 권력자는 권력을 통하여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고민하지만, 삼류 권력자는 권력 자체가 그 목적이 된다.
 
미국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링컨의 격언이 떠오른다. 성공한 천재 사업가에서 미국 정치가 낳은 희대의 이단아까지, 트럼프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중 한 명이며, 그를 둘러싼 논란과 해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트럼프의 일대기
 
 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 tvN

 
6월 2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미 45대 대통령 트럼프, 탄생에서 기소부터'편을 통하여 트럼프의 일대기와 그가 현대 정치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조명했다. 김봉중 전남대 사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트럼프는 1946년 6월 14일 뉴욕 퀸즈에서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 어머니 메리 트럼프 사이에서 3남2녀중 넷째로 태어났다. 독일계 이민자 출신인 트럼프의 가문은 아버지 프레드의 시대에 건설사업으로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르며, 트럼프는 '다이아몬드 수저'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버지 프레드는 아들 도널드를 비롯한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고철, 못, 빈 병 등 돈이 되는 것을 줍게하면서 경제관념과 돈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교육과 달리 인성교육 면에서는 실패했다. 트럼프는 어릴때부터 악동으로 불리여 악명을 떨쳤고 초등학교 2학년때는 음악 선생님을 구타하는 대형사고를 치키고 했다.
 
트럼프는 회고록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어리석게도 음악 선생님이 음악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주먹을 휘둘렀다"고 고백하며 "그 사건을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릴때부터 자립하려는 생각이 있었으며,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알리고자 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변명했다. 
 
아버지 프레드는 통제불능인 아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로 1959년 뉴욕 군사학교에 전격 입학시킨다. 군사학교는 군인을 양성하는 전문 사관학교와는 달리, 군대식 교육을 표방하는 고급 사립학교였다.
 
의외로 트럼프는 군사학교가 적성에 맞았는지 이곳에서 자기 통제, 리더십 등을 배우며 자신의 성공에 토대가 되었다고 호평했다. 트럼프는 군사학교에서 다양한 스포츠로 학교 대포로 활동했고, 특히 야구에서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을 정도로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트럼프의 동창들은 그를 '경쟁심 넘치는 리더'로 기억했으며 여성들에도 인기가 많았던 엄친아였다고.
 
군사학교 졸업 후 트럼프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신의 진로를 '부동산업'에서 찾았다. 트럼프는 미국의 명문인 뉴욕 포덤대학 경영학과-펜실베니아대학과 와튼스쿨에 진학하며 경영자의 꿈을 키웠다. 와튼스쿨 첫 수업에서 담당교수에게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일화도 유명하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며 초기부터 남다른 안목과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불과 25세 때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CEO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트럼프가 물려받은 뉴욕 아파트만 1만 4천여채에 이르렀으며, 이 자산은 훗날 트럼프의 사업 확장에 있어서 중요한 시드머니가 됐다.  하지만 그만큼 초기에는 아버지의 재력 덕분에 쉽게 성공했다는 박한 평가도 따라다녔다.
 
1973년 10월, 트럼프는 CEO로서 첫 시험대에 직면했다. 트럼프 기업이 흑인에게는 집을 임대하지 않는다며 인종차별과 공정주택법 위반으로 기소된 것. 하지만 트럼프는 "피부색이 아니라 집세를 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임대해주는 것은 집주인의 권리"라고 반박하며 오히려 정부 측에 1억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는 맞불을 놓았다. 비록 소송은 기각되었지만 트럼프의 물러서지 않은 '싸움닭' 기질을 보여주는 일화다.

다만 이 사건과 별개로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드는 백인우월주의자 집단 KKK에서 활동했던 전력이 있으며, 아들 트럼프 역시 인종차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975년, 29세의 트럼프는 뉴욕의 심장인 맨해튼에서 부동산 사업을 확장하여 호텔업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했다. 놀랍게도 트럼프의 선택은 심각한 적자와 채무로 망해가던 코모도 호텔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 프레드는 '침몰하는 타이타닉 갑판에서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격'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트럼프는 코모도호텔의 유동인구와 접근성을 봤을 때 투자가치가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코모도호텔을 1000만 달러에 인수하여 약 7천만 달러를 들여 리모델링했고, 1980년 9월 그랜드 하얏트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호텔은 개장 7년간 연간 총영업수익 3천만달러에 이르는 대성공을 거뒀고 뉴욕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트럼프는 부친의 그늘을 벗어나 젊은 사업가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트럼프의 호텔 사업이 번창하는 데는 뉴욕시로부터받은 40년에 걸친 세금 감면 혜택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뉴욕은 지금과 달리 높은 범죄율과 불안한 치안으로 악명을 떨치며 중산층 주민들의 이탈이 심각했다. 이 틈을 노린 트럼프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적극적인 투자와 사업확대를 통하여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뉴욕시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1983년에는 또다른 대형 건축 프로젝트로 가문의 이름을 딴 '트럼프 타워'를 건설했다. 높이 202미터, 58층의 주상복합건물로 지어진 트럼프 타워는 어마어마한 땅값으로 유명한 뉴욕 한복판에 위치하며 '세상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건물'로 꼽힌다. 상부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잭슨, 브루스 윌리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유명인들이 거주하기도 했다.
 
부동산 사업에서 정상에 오른 트럼프는 이어 카지노와 쇼비즈니스 사업에도 잇달아 진출하며 큰 성공을 이어갔다. 무려 19권에 이르는 책을 집필하여 자신의 성공비결과 경영방식을 알리며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등극했다.
 
1990년대부터 트럼프는 대중매체에 활발하게 얼굴을 비추면서 미디어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하기 시작했다. 영화 <나홀로집에2>,드라마 <섹스앤더시티> 등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빌딩에서 미국의 최대인기스포츠중 하나인 WWE(미국 프로레슬링) 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특히 2004년부터 출연한 리얼리티쇼 NBC <어프렌티스>는 트럼프의 이름을 미 전역에 각인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트럼프의 회사에서 경영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참가자들이 경쟁하는 취업 서바이벌 쇼였던 <어프렌티스>는 무려 15시즌에 걸쳐 제작되며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트럼프는 여기서 오너이자 진행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희대의 유행어까지 낳았다. 트럼프가 쇼에서 출연자를 악랄하게 비판할수록 프로그램의 인기는 치솟았다고 한다. 대중은 여기서 판단력이 탁월하고 단호한 트럼프의 캐릭터에 열광했다. 전문가들은 "어프렌티스가 아니었으면 트럼프는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트럼프에게 큰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한편으로 트럼프가 성공을 거듭하면서 숨겨진 복잡한 여성편력도 하나둘씩 드러났다. 트럼프의 첫 번째 아내는 체코 출신의 모델 이바나 젤니치코바로, 부부는 1977년 결혼하여 이방카 등 세 자녀를 얻었다. 이 당시만 해도 트럼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가정적인 아버지로서 완벽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1년 트럼프는 이바나와 이혼하고 내연녀였던 17살 연하의 배우 말라 메이플스와 재혼했다. 1999년에는 다시 말라와 이혼하고 6년뒤인 2005년에  또다른 내연녀였던 24세 연하의 모델 멜라니아 크나우스와 다시 세 번째 결혼에 성공했다. 그가 바로 훗날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멜라니아 트럼프였다. 첫 아내인 이바나는 미국의 유명 방송인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한 여자에 충실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그의 바람기를 폭로하기도 했다.

사업가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 tvN

 
 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 한 장면. ⓒ tvN

 
한편 트럼프는 이제 사업을 뛰어넘어 정치계에 시선을 돌렸다. 흔히 트럼프가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뛰어든 것 같지만, 트럼프의 정치활동은 이미 1987년부터 시작됐다. 트럼프는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나들며 무려 4번이나 당적을 바꾸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정치인으로서 트럼프의 존재감이 부각된 계기는 2011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트럼프가 오바마의 '출생 이슈'를 제기한 사건이었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아프리카의 케냐 태생이라며 미국 대통령으로 출마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에서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며 트럼프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리고 그해 4월 30일,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초대손님인 트럼프가 마주하게 됐다. 오바마는 여기서 자신의 출생증명 이슈를 언급하며 객석에 있는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오바마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트럼프의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시켰고, 그가 대선출마를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는 4년 뒤인 2015년 6월 16일 트럼프타워에서 정식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슬로건(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ing)을 내걸고 2010년대 급격히 미국의 추락한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위기, 기성 정치에 좌절감을 느끼던 저소득-저학력의 백인 노동자 계층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트럼프는 미디어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자극적인 이슈를 생산하는 선동정치와 노이즈 마케팅 전략으로 세상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과거 이력으로 미디어를 활용하는데 능숙했던 트럼프는 SNS를 통하여 이민자, 진보주의자, 여성, 언론, 정적들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과 혐오 발언을 통하여 논란을 통한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공화당 경선을 승리한 트럼프는 대선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었다. 당시 두 사람의 TV 토론은 미국 역대 대선 사상 가장 지저분한 막장 토론으로 회자된다.
 
트럼프는 이미 토론전부터 SNS를 통하여 "힐러리는 자기 남편(빌 클린턴 전대통령)도 만족시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미국을 만족시키겠냐"는 성희롱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힐러리 측은 2005년 트럼프가 여성에 대한 음담패설을 일삼았던 녹취테이프가 발굴된 것을 빌미로 트럼프의 '여성혐오'를 맹비난하며 반격했다.
 
이에 트럼프는 힐러리와의 2차 TV 대선토론에서 먼저 음담패설에 대하여 사과하는 듯 했지만, 곧바로 힐러리의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퍼게이트' 불륜사건을 끌어들이며 역공에 나섰다. 트럼프는 "난 말만 했지만 클린턴은 행동으로 옮겼다. 미국 정계역사상 클린턴만큼 여성을 학대한 사람은 없었다"고 비난했다.

힐러리는 애써 분노를 참으며 "여러분은 모두 답을 알고 게실 것이다. 영상속 과거의 트럼프와 지금 현재의 그가 과연 여성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일지"라며 저격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는 힐러리를 누르고 당선됐고 미국 45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미국 역사상 전례없는 아웃사이더 이단아이자, 역대 최고 부자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예고한 대로 반이민 정책, 대중국 견제, 미군의 아프간 철수 등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들을 표방하며 전세계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기는 의혹과 위기의 연속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국제사회에서 외교갈등-동맹국들과의 관계 악화로 갈등을 빚었고, 자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엄청난 피해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하여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는 2021년 조 바이든에게 접전끝에 패배하고 재선에 실패하며 4년 만에 민주당에게 다시 정권을 내주게 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고분고분 물러나지 않았다. 대선패배 이후 대통령 선거 의회 인증일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함께 의사당으로 걸어가자. 내가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노골적인 대선불복 의사를 드러냈다.

트럼프의 발언으로 자극받은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방위군과 FBI의 투입으로 시위는 5시간만에 진압되었지만 5명의 사망자와 150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참극으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하원은 임기를 1주 남겨놓은 현직대통령인 트럼프를 배후로 지목하여 내란 선동혐의를 적용하여 탄핵을 추진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우세했던 상원에서 탄핵은 부결됐다. 트럼프는 역사상 최초로 임기중 탄핵을 두 차례나 당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트럼프는 퇴임 이후에도 올해 3월 30일에는 성인배우와 '성추문 입막음'과 '극비 기밀문건 유출' 혐의 등으로 전-현직을 통틀어 기소된 첫 미국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기록들을 추가했다.
 
논란 속에서 트럼프는 여전히 활발한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며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세력 역시 건재하다. 미국 사회는 트럼프 이후 만연한 반지성주의와 정치혐오, 극단적 진영대결의 악화로 인하여 지금까지 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트럼프를 가리켜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하여 해묵은 가식을 벗겨내는 인물"이라는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어쩌면 트럼프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미디어의 그늘이 만들어낸 희대의 이단아일지도 모른다. 과연 훗날의 역사는 트럼프를 어떻게 기억할까.
벌거벗은세계사 도널드트럼프 미국정치사 미국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