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마이웨이' 개척자 박주호가 걸어온 길

은퇴식 열고 16년 축구인생 마침표... 차근차근 큰 무대로 나가며 커리어 쌓아

23.06.07 14:32최종업데이트23.06.07 16:50
원고료로 응원

▲ 돌파하는 박주호 6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수원FC와 울산 현대의 경기. 수원FC 박주호가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랭크 시내트라의 명곡 제목인 '마이 웨이(My way)'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난 나만의 길을 걸었다는 것(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인생에서 때로는 울고 웃고, 빛나거나 혹은 후회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의 굴곡을 헤쳐온 모든 이들에 대한 헌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박주호의 축구인생 역시 '마이 웨이'라는 한 단어로 가장 잘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박주호가 정든 축구화를 벗었다. 박주호는 6월 6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와 울산 현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3 17라운드 원정 경기를 마지막으로 약 16년의 프로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수원은 이날 1-3으로 울산에 패했고, 박주호는 은퇴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하여 경기 막판 교체될 때까지 91분을 활약했다.
 
킥오프 전에 박주호의 은퇴식이 진행됐다. 이재준 수원FC 구단주와 서포터즈가 감사패를 전달했고, 원정팀이자 박주호의 친정팀인 울산 선수단도 기념 액자를 전달했다. 박주호의 아내 안나씨와 세 자녀 박나은, 박건후, 박진후 등 가족들도 모두 참석하여 은퇴를 축하했다. 경기 도중 관중석에 박주호를 위한 홈팬들의 기념 카드 섹션이 펼쳐졌고, 전반 6분에는 박주호의 등번호인 6번과 6월 6일 은퇴를 기념하며 팬들이 1분간 박수를 보내주는 감동적인 이벤트가 연출되기도 했다.

은퇴 경기를 마친 후 박주호는 팬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감정이 북받쳤는지 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원 선수단은 이별 선물로 박주호를 헹가래해주면서 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박주호는 고별사에서 "팬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축구 선수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수 있었다"며 "축구 선수로서의 삶은 여기서 마무리하지만 앞으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가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대기만성의 모범사례 박주호

박주호의 축구인생은 대기만성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유망주 시절에는 다른 엘리트 스타플레이어들에 비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더 수준 높은 무대로 스텝업해가며 일본 2부리그에서 유럽 빅리그까지 진출하여 나름의 족적을 남겼을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박주호는 2008년 일본 J2리그 미토 홀리호크에서 프로 데뷔하며 가시마 앤틀러스, 주빌로 이와타(이상 일본)를 거쳐 2011년부터 FC바젤(스위스)에 입단하여 유럽에 진출했다. 이후 유럽 5대 빅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하여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했다. 2018년부터는 K리그에서 울산과 수원FC를 거치며 커리어 말년을 보냈다.
 
국가대표로도 A매치 40경기에 출전했으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U-23), 2015 호주 아시안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 활약했다. 유망주 시절에는 윙어로 시작했으나, 이후 프로에서는 왼쪽 측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넘나들는 멀티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다. 무명 선수에서 시작하여 일본-유럽을 거친 해외진출의 성공 과정, 대기만성과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이미지 등에서 흡사한 부분이 많은 대선배 '박지성의 수비수 버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박주호 축구인생의 전성기이자 터닝포인트는, 역시 바젤에서 마인츠(2011-2015)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이라고 할수 있다. 스위스리그는 국내 팬들에게 인지도가 낮지만, 박주호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명문팀인 바젤에서 유럽진출 첫해 만에 당당히 주전자리를 꿰차고 맹활약을 펼치며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훗날 리버풀에 입단하여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하는 모하메드 살라가 당시 박주호의 룸메이트였다는 일화는 유명하고, 국제결혼을 통하여 평생의 반려자가 되는 안나 씨 역시 바젤 시절에 만났다.
 
박주호는 바젤에서 2시즌간 77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특히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박지성이 있던 최전성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키고 16강에 올라간 것은 박주호 축구인생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또한 박주호는 16강전에서 만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도 당시 세계 최고의 윙어로 꼽히던 아르연 로번을 틀어막는 등 좋은 활약으로 한국과 유럽에서 '신데렐라'로 떠오르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바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박주호는 유럽 5대 빅리그로 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게 되고 마인츠를 거쳐 세계적인 명문 빅클럽으로 꼽히는 도르트문트까지 입단했다. 또한 국가대표에서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혜택을 얻었고, 2015년에는 호주 아시안컵에도 발탁되어 슈틸리케호의 준우승에 기여하며 승승장구했다.
 
아쉬움 남는 순간들
 

▲ 팬들에게 인사하는 박주호 6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수원FC와 울산 현대의 경기가 끝난 후 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수원FC 박주호가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2015년 도르트문트 입단 이후 박주호의 커리어는 급격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쟁쟁한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넘쳐났던 도르트문트에서 박주호는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며 2시즌 동안 불과 11경기 출전에 그쳤다. 한창 전성기를 보내야 할 시절에 이적이나 임대로도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을, 순탄하던 박주호 본인의 유럽 커리어를 용두사미로 망쳐버린 최악의 패착으로 꼽힌다
 
국가대표로서의 커리어도 다소 꼬인 편에 속한다. 전성기 박주호의 실력을 감안하면 A매치 출전이 불과 40경기에 그쳤다는 것은 아쉬운 기록이다. 전성기에 주포지션이던 왼쪽 풀백 자리에는 김진수,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기성용이라는 벽이 있었기에 주전보다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만족해야 했다.

월드컵 본선 최종명단에도 두 차례나 포함되었지만, 2014년 브라질 대회에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고, 2018 러시아 대회에서는 스웨덴과의 1차전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1경기 27분 출전'으로 자신의 월드컵 커리어를 모두 마감하는 불운을 겪었다. 박주호는 벤투호 시절인 2019년 동아시안컵(E-1 챔피언십) 이후 더 이상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박주호는 2017년 12월,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K리그 울산에 입단하며 한국에서 선수경력의 말년을 보냈다. 2020년 울산의 아시안챔피언스리그 우승(ACL)에 기여했으며, 2021년부터 수원 FC로 이적하여 주장까지 역임했으며, 마지막 은퇴시즌에도 14경기를 소화할 만큼 36세의 나이에도 꾸준히 붙박이 주전으로 중용받았다.
 
특히 국내 복귀 이후 2018년부터 KBS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귀여운 자녀들과 함께 출연하여 오히려 선수활동 때보다 더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2019년에는 축구선수임에도 KBS 연예대상까지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선수인생의 마무리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주호는 마지막 시즌에도 수원FC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뛰고 있었고, 풀타임 소화가 가능할 만큼 기량이나 체력에도 문제가 없었다. 수원FC는 지난해와 달리 올시즌에는 강등권에 근접한 리그 9위에 그치며 어려운 순위싸움을 펼치고 있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장까지 역임했던 베테랑으로서, 박주호가 시즌 중반에 은퇴를 선언해야만 했는지 타이밍이 아쉽다. 당초 투병중인 아내의 병간호와 육아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최근 박주호 본인이 직접 부인했으며 "은퇴 시점은 작년부터 오랫동안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최근까지도 주변에서 은퇴를 만류했지만 박주호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호는 스스로의 축구인생을 '100점 만점'으로 자평하며 "목표를 했던 것들을 계속 이뤘고 계속 도전했다. 한번 결정을 하면 후회 안 하는 성격이다. 선수 시절엔 항상 60~70점을 줬는데 오늘만큼은 후회 없이 마무리했기에 100점을 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또한 본인이 어떤 선수였는지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난 항상 팀이 원하는데 맞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다고 팀플레이로서 자신의 가치를 설명했다.
 
박주호는 일본에서 유럽, 한국을 거치며 일반적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커리어를 만들어갔다. 항상 평탄하지는 않았고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무리 역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가장 박주호다운 방식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고 할 만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박주호 은퇴 수원FC 슈퍼맨이돌아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