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은 전신마비가 된 아들 강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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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강호는 엄마의 강한 모습 뒤 여린 마음도 읽어낸다.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찢은 후 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은 걸 보았을 때, 자신의 밥을 뺏은 후 주방에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강호는 아버지를 죽게 한 자들이 결국 엄마의 삶마저 빼앗았음을 깨닫는다(9회).
그리고 9회 남긴 편지에서처럼 '그들로 인해 철저히 망가져 버린 어머니의 삶.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평생을 나쁜 엄마로 살아야 했을 그 아픔'에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 '나쁜 검사'의 길을 걷는다. 결국 강호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보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를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강호가 받아들인 '부모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7살 아이가 된 후에도 계속된다. 영순은 강호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해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엄마 속상해. 엄마 속상한 거 좋아?"
이에 강호는 순수하게 엄마의 말을 따르지만, 이런 메시지들은 강호에게 '엄마의 감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다. 나아가 '엄마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이처럼 영순은 강호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만, 강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보다는 '도구화'시켜버리는 오류를 저지른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영순이 '나쁜 엄마'일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순이 '나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아이가 자신과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이를 존중해주는 태도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뱃속에서부터 한 몸이었던 아이들에 대해 '자신이 다 안다'는 착각을 하지만, 실은 아이는 엄연히 부모와는 다른 독립된 존재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한다 해도, 아이의 마음속엔 다른 생각과 다른 시각이 자라난다.
당연히도 아이의 이런 관점은 존중받아야 하고,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아이는 결코 부모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없으며, 부모의 삶을 대신 살아갈 수도 없는 법이다.
하지만, 영순은 강호를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자 남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강호가 자기 자신과 분리된 존재라는 것,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물론, 영순이 강호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지극한 사랑으로 강호를 돌보지만, 그 사랑이 오히려 자기 자신과 강호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 셈이다. 때문에 한 번도 고유함을 존중받아보지 못한 강호는 끝끝내 엄마의 뜻대로만 살며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다. 그리고 7살의 순수한 영혼으로 되돌아간 후에야 '왜 엄마 마음대로만 하냐'고 항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12회에 강호는 이전의 기억들을 되찾았다. 그리고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 강호가 이 일들을 끝내고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면 정말 좋겠다.
▲영순은 간절한 마음으로 강호의 법대입시와 사법시험 합격을 뒷바라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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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뭐로 만들고 싶어요?"
나는 <나쁜 엄마> 영순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종종 들어왔던 이 질문이 떠올랐다. 현실의 많은 부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이 질문에도 아이를 주체가 아닌 부모의 '객체'로 대하는 태도가 배어 있었다. 영순은 어쩌면 이 질문을 극단적으로 실천한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엄청난 모성에도 불구하고 '나쁜 엄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가로 키우고 싶어요. 원래 제 꿈이 화가였거든요. 예고 준비하던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결국 포기했지만 우리 아기도 왠지 나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릴 것 같아서요."
9회 회상 장면에서 영순이 임신을 축하해주는 한 이웃에게 건넨 말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가 이뤄주면 좋겠다는 이 바람이 당연하게 들리는 한 현실의 많은 아이들이 강호와 같은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부디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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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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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 마음대로..." 라미란이 나쁜 엄마인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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