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구미호뎐 1938> 한 장면.
tvN
2년 뒤에 발행된 1940년 8월 2일자 <조선일보> 5면 하단에서는 함경남도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는 "개는 먹어도 가죽은 먹지 말고서 가죽대로 팔라!"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런 뒤, 함경남도 식민당국에서 나온 소식이라면서 "가죽을 활용하기 위하야서는 개는 고기만 먹고 가죽은 그냥 벗겨 피혁으로 공출시킬 방도를 취하여야 하겟다는 것이다", "도 당국에서 이가튼 귀한 자원을 식용보담도 피혁으로 살닐터로 금후 개는 반드시 가죽을 벗겨낼 것을 전제로 먹기끔 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개를 피혁으로 활용할 터이니 반드시 가죽을 벗겨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멸종위기 처했던 삽살개
이 같은 동물 학대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쪽은 개였다. 개를 죽이기 위한 전문 기관이 있었을 정도다. 1994년 1월 1일자 <경향신문> "94 '개의 해' 우리 토종견 민족과 함께 달려온 용맹·끈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고유의 개들은 일제시대 모진 수난을 겪었다. 1940년을 전후, 일제가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피혁 및 모피를 군수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를 설립, 도견부를 설치하여 등록된 진돗개를 제외하곤 모조리 때려잡았다. 이때 1년에 10만 마리에서 50만 마리까지 떼죽음을 당해 우리 고유의 개들은 급속히 줄어들게 됐다."
이 같은 일제의 정책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품종이었던 삽살개를 멸종 직전까지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개는 털이 복슬복술한데 이것이 이들의 운명에 악영향을 끼쳤다.
삽살개를 보존하기 위한 하성진·하지홍·하지윤·김화식·탁연빈 교수의 활동과 연구를 소개한 위 기사는 "삽사리는 신라 김유신 장군이 즐겨 데리고 다녔다는 일화가 기록에 나올 정도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길러져 조선시대에 와서는 '개' 하면 곧 삽사리로 통용될 정도로 아주 흔한 개였다"라고 한 뒤 이렇게 설명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던 삽사리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만주 관동군의 방한복·방한모 등의 재료로 쓰기 위해 도견부라는 특별 기구까지 설치, 연간 50만 마리 이상을 무차별 도살하는 바람에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인 못지않게 한국 동식물도 일제강점기에 지독한 고난을 겪었다. 어느 시대나 동식물은 인간으로 인해 수난을 겪지만, 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특히 심했다. 일제 식민지배로 인한 한이 한국인들의 가슴에만 응어리져 있는 게 아니라, 동식물을 포함한 이 땅 전체에 서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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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