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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소재는 식상하다? 이렇게 변용될 수도 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리턴 투 서울>

23.05.06 09:59최종업데이트23.05.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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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서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리턴 투 서울"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엣나인필름

식상해진 '입양' 소재를 완전히 재구성해내다
 
한국은 경제성장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외입양의 공급처로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아동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까지 생겼을 정도다. 한국전쟁이나 전후 온 나라가 폐허화된 상황에서야 당시로선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고 넘어가려 해도 일정부분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되고 나서도 여전히, 심지어는 인구 규모로 대비해 봐도 압도적인 숫자다. 게다가 국내에선 뿌리 깊은 혈연 중시로 인해 입양문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유독 해외로만 입양이 집중되는 건 분명히 부끄러운 노릇이다.
 
입양을 소재로 한 국내 드라마나 영화는 적지 않다. K-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을 다루지 않는 것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활용도는 그저 주인공의 기구한 수난사와 심심할 때 써먹기 위한 신파 코드에 그친다. 엑토르 말로의 세계명작소설 "집 없는 아이"에서 주인공 레미가 겪게 된 사연에서 거의 고정된 수준에 불과하다. 즉 열악한 조건에서 성장한 주인공이 추가적으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생고생하는데 우연한 계기로 알고 보니 고귀하거나 유복한 가문의 후계자여서 진실이 드러나고 잘 살게 된다는 스테레오 타입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도 모호한 경계에 처하게 마련인 해외 입양아동들의 현실과는 몇 광년 차이 나는 설정이다.
 
그렇게 유효성이 만료되어가던 중 색다른 영화 1편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대충 살펴보니 뭔가 범상치 않은 코드가 가득하다. 대강 아래와 같은 얼개다.
 
① 캄보디아 출신 프랑스 이민 2세대라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의 감독이
②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감독의 친구가 친부모를 찾아 나선 한국 여정에서 영감을 얻어
③ 한국계 프랑스 이민 2세인 연기경력 일천한 젊은 미술작가를 오디션 진행 후
④ 한국 출신 입양아로 캐스팅해
⑤ 대다수가 한국 배우 및 스태프들과 함께 제작한 기이한 영화 한편이 극장에 도착했다.

<리턴 투 서울>은 해외입양이라는, 국내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드물지 않게 차용되는 관련 소재와 배경을 공유하지만 전형적인 한국 '감성'과 미묘하게 엇갈린다. 물론 기본적인 내용 구성이나 전개가 크게 차별화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존 국내 작업들에서 선보여온 식상해질 대로 식상해진 구성을 마치 미끄러지듯 빗겨나가며 색다른 감각으로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 말로 표현하긴 참 어려운데 분명히 뭔가 느낌으로는 확 체감되는 독특한 질감이다.
 
낯선 고향에서 성장해가는 '프레디'의 여정
 
"리턴 투 서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리턴 투 서울"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 간 주인공 '프레디'가 성인이 된 후 우연한 계기를 거쳐 7년이라는 시간 동안 3차례 거듭하는 한국방문을 중심축으로 삼아 진행된다. 25살에 첫 방문, 2년 후 세컨 찬스, 5년 후에 트릴로지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듯 세 번째 방문으로 프레디의 여정이 완결되는 구성이다.
 
갓난아기 때 입양기관에 맡겨져 프랑스로 보내진 후 프레디는 20여 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다. 하지만 프레디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 마음먹고 한국 방문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원래 처음에는 평소 흥미를 느끼던 일본 여행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기상문제 때문에 그가 탄 여객기는 일본에 내리지 못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일정 어그러진 김에 대안으로 바로 옆 나라에 수정된 일정으로 방문한 것뿐이다. 그런 전후사정 때문에 원래 프레디는 딱히 친 가족을 수소문하거나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사실 그에게 자기를 버린 이들에 대한 원망과 의문이 있다면 모를까, 좋은 기억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가 묵게 된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롭게 사귄 한국인 친구들은 프레디에게 당연하다는 듯 친부모 찾기를 권하고 이것저것 돕는다. 여기서부터 주인공의 반응은 K-드라마의 통속성을 벗어나 입양아동 당사자의 시점에서 혼란 그 자체인 상황을 투영하며 진행된다.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프레디는 숙소에서 만난 테나의 도움으로 입양기관을 찾고 거기에서 자신의 친부모가 생존해 있음을 확인한다. 그는 친부모에게 연락을 취할지 망설이지만 끝내 입양기관을 통해 만남 여부를 묻는 전보를 보내게 된다. 친모에게선 답이 오지 않지만 군산에 살고 있던 친부는 프레디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다. 하지만 자신을 버렸던 친부모가 탐탁하지 않던 프레디는 변덕을 부리며 입장을 계속 번복한다. 그래도 결국 군산 행 여정을 시작한다. 거기에서 프레디는 재혼해 이복동생들을 둔 친부와 재회한다. 고모와 할머니도 함께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한국의 가족들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그를 환대하지만 프레디는 그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통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군산에서의 며칠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일정 제약 때문에 프레디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고, 2년 후, 다시 5년 후 한국을 재방문한다. 시간의 변화를 상징하듯 프레디는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처음 방문했을 때가 25살이고 두 번째 방문에선 27살, 세 번째 방문은 32살이 되었으니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혼란에 빠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일신에 변화가 잔뜩 일어날 시기이긴 하다. 여전히 충동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회사원 생활을 척척 해내는 모습이 자기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와 함께 프레디가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직업이 뜬금없어보이다가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맞물려 기묘한 통찰을 제시해준다.
 
그런 가운데 프레디는 점점 자신의 뿌리를 찾는 데 근접해 간다. 하지만 프레디가 친부모를 결국에는 차례로 만나고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 과정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 등속의 회귀로 귀결되진 않는다. 버릴 땐 언제고 죄책감에서인지 집요하게 일방적으로 연락하던 친부와 적정선을 설정하고, 마침내 오랜 시간 만남을 피하던 친모와 눈물의 상봉을 이루지만, 결국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프레디는 단독자로 남는다. 물론 태어난 고향과 자신의 현재 정체성을 갖추게 된 고향 모두에 적응하지만, 프레디의 운명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속해진 것이다.
 
경계에 선 입양인의 혼란을 섬세한 터치로 형상화하다
 
"리턴 투 서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리턴 투 서울"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엣나인필름

프레디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은 그에게는 필연과 우연 사이, 즉 '0과 1의 세계'인 셈이다. 영화 속에서 프레디는 수시로 충동적인 감정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듯 일어나는 면모를 보이곤 한다. 그런 불규칙성이 프레디의 행보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만들지만 따지고 보면 프레디의 친지들 또한 감성이 충만해 있다. 그들은 각자 당연하다는 듯 프레디에게 이래야 한다느니 저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며 자기 본위로 제시하고 요구한다. 결국 매 순간 아슬아슬한 국면을 때론 슬기롭고 단호하게, 때론 예측불가의 화약고 같은 결단을 통해 헤쳐 나가는 건 프레디 자신에게 달려 있는 몫이다.
 
외국인 감독의 연출임에도 1960-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선구자라 할 신중현 사단의 음악을 그야말로 '지대로' 활용하는 면모가 영화 속 프레디의 감정의 파고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건 1967년 신중현 작사ㆍ작곡, "꽃잎"이다.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효시로 불리는 이 숨겨진 명곡이 프레디 역 박지민 배우의 인상적인 등장과 맞물려 시선을 사로잡는다. "꽃잎"을 듣고 있던 게스트하우스 직원 테나에게 무슨 음악을 듣느냐고 물으며 프레디가 이어폰을 건네받을 때, 이후 프레디의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물론 지나고 나서야 알아챌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대 왜 날 잡지 않고 그대는 왜 가버렸나
꽃잎 보면 생각나네 왜 그렇게 헤어졌나
 
그 다음으로 신중현과 더 맨의 1972년 곡 "아름다운 강산"이 혼란을 거듭하는 프레디의 심경을 반영하듯 등장한다. 그리고 역시 신중현의 1967년 곡 "봄비"가 말 그대로 보는 이의 가슴을 찢어놓는다. 이와 함께 프레디가 즐겨 몸을 맡긴 채 춤을 추는 현란한 전자음악 사운드 역시 특정한 카테고리에 가둬지길 거부하는 주인공의 기운을 온전하게 구현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여기에 프레디 역을 맡은 신인배우 박지민의 아우라가 혼연일체를 이룬다. 마치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구급 명성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비요크의 연기활동을 연상시키듯, 이 화가 출신의 신예는 기교파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표정과 몸짓, 행동 하나하나로 프레디 내면의 파열과 혼돈을 구현해내는 독창적 결을 선보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프레디라는 캐릭터와 그가 보여주는 다면적인 얼굴을 잊기 힘들 것이다. 친부 역을 맡은 오광록 배우의 전형적인 한국적 부성애 캐릭터 역시 하나의 상징으로 형상화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혈통이 아니라 주체적 개인으로 구현된 입양인의 초상
 
"리턴 투 서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리턴 투 서울"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엣나인필름

결국 프레디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탄생과정을 거슬러 오르고, 양부모에게서도 독립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여정을 완수하기에 이른다.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입양기관에서 친부모를 찾는 과정 묘사와 프레디가 좌충우돌을 거듭하며 친부모에 대한 감정을 정리해나가는 심리 표현이 피상적인 혈연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는 국내 상당수 관련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선보인다. 과거에 빈곤이 온 나라를 뒤덮던 시절, 잘 사는 서구 국가에 입양되면 행복하게 살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식을 입양 보낸 이들이 적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그렇게 입양된 국가에서 혼란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적응에 실패하거나 불행한 운명에 시달린 이들의 후일담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몇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사례들이 소개되긴 했지만 극영화로의 재현은 또 다른 영역의 확장으로 평가될 만하다.
 
더불어 <리턴 투 서울> 속 프레디의 경험은 굳이 한국의 해외입양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계를 넘어 미지의 세계에 떨어져 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당사자들의 행복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당사자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3세계에서 1세계로 입양된 수많은 경계인들의 한 초상으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생생한 르포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프레디의 7년간의 변화와 성장과정은 의외로 차곡차곡 견고하게 진행된다. 주변은 물론 자신에게 스스로 품었을 물음표가 해소되는 과정이 2시간 꽉 채워낸 이야기 속에서 몰입도 강렬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언어 간의 소통과정에서 겪는 통번역 해프닝과 (남북 분단으로 인한 국제적 긴장과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직업을 잃은 친부 경험담처럼) 시사 풍자적인 장치들도 군데군데 숨어서 풍부한 해석을 보물찾기처럼 설정해두고 있다. 감각적인 음악과 현란한 불빛 사이 찰나에서 길을 잃지 않고 종착역에 도달하는 프레디의 풍부한 표정과 그가 감춘 내면의 상처가 추억의 명곡들로 전해질 때면, 이 통속성 넘치는 이야기가 이렇게도 변용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될 테다. 그야말로 '발견'의 영화다.
 
<작품정보>
 
리턴 투 서울 Return to Seoul, Retour à Séoul
2022|프랑스|드라마
2023.05.03. 개봉|119분|15세 관람가
감독 데이비 추
주연 박지민(프레디 역), 오광록(한국 아빠 역)
출연 구카 한(테나 역), 김선영(한국 고모 역), 요안 짐머(막심 역),
루이스-도 데 렌쿠에사잉(안드레 역), 허진(한국 할머니 역),
손승범(동완 역), 에멜린 브리포드(루시 역), 레진 비알
제작 맑은시네마
수입 및 배급 (주)엣나인필름
 
2022 75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2022 23회 도쿄필멕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2022 15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감독상, 신인연기상(박지민)
2022 43회 보스턴비평가협회상 작품상
2022 48회 LA비평가협회상 뉴제너레이션상(데이비 추), 뉴제너레이션상(박지민)
 
 
"리턴 투 서울"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리턴 투 서울" 포스터영화 포스터 이미지(주)엣나인필름
리턴 투 서울 데이비 추 감독 박지민 오광록 해외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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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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