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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모의하는 선비들, 조선시대엔 당연했던 이유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드라마 <꽃선비 열애사>

23.05.05 12:24최종업데이트23.05.0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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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꽃선비 열애사>의 한 장면 ⓒ SBS

 
SBS 사극 <꽃선비 열애사>는 백성들의 원성이 들끓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왕위를 찬탈한 이창(현우 분)은 잔인무도한 폭정을 일삼는다. 인명을 아무렇게나 살상한다. 그의 관심은 세상의 안위 같은 데는 없어 보인다. 오로지 왕위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해 보일 뿐이다.
 
국가 지도자를 도저히 좋게 봐줄 수 없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조선시대 사람들은 '종묘사직이 위태롭다', '나라가 망하게 됐다'라고 표현했다. 세상이 이렇게 됐다고 판단되면, 이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선비들이 가장 먼저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 드라마에서 폭군 이창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선비들이다. 이들은 비밀결사 목인회를 결성해, 금서로 지정된 서책을 함께 읽으며 임금을 탄핵할 계획을 수립한다. 백색 도포에 갓을 쓴 선비 수십 명이 은밀한 데 모여 거사를 논의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에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책만 읽던 선비들이 정변을 결의하는 장면은 군인들의 쿠데타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위험하게 비쳐질 수도 있다. 창칼이 아닌 붓을 든 유생들이 정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는 믿음직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선비들의 정변에 무관이 끼어 있는 모양새

고려 제4대 주상인 광종이 958년에 과거제도를 시행한 이래, 고대 사회의 엘리트인 무사들의 권위는 점차 약해졌다. 그 대신, 문신 우위 체제가 조정과 군대를 포함한 각 방면에 서서히 확대됐다. 212년 뒤인 1170년에 무사들이 차별 구조에 항의하며 무신정변을 일으킨 것은 그 2백년 동안에 문신들의 지위가 크게 제고됐음을 보여준다.
 
1019년 귀주대첩의 명장인 고려시대 강감찬은 문과시험 장원급제자였었다. 4군 6진의 하나인 6진 설치의 주역인 조선시대 김종서 역시 문과시험 급제자였다. 이런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광종의 과거제 시행은 무신이 아닌 문신이 군대까지 총지휘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문신 사령관 옆에 무신 참모가 있기는 했지만, 문신이 군대를 통솔해야 한다는 관념이 광종 이후에 계속 확산됐다.
 
우리 시대 같으면, 장교들이 쿠데타를 모의하는 자리에 학자 출신 브레인 한두 명이 끼어 있는 장면이 자연스럽다. 문신 우위 체제가 견고했던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시대에는 문신이나 선비들이 정변을 모의하는 자리에 무관들이 끼어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다.
 
고려 광종 이후의 변화에 더해, 선비들의 정변을 수월하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요인도 있었다. 상당수 선비들은 노비와 토지를 보유한 지주가문의 일원이었다. 노비를 많이 보유한 양반 지주들이 임진왜란 의병장이 되는 사례가 많았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노비가 많은 집안의 선비들은 경우에 따라 사병부대 지휘자로 변모할 수도 있었다.
 
정부군도 선비 출신 문신들의 지휘 하에 있었고, 민간 사병부대도 기본적으로 선비들의 지휘하에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무사가 아닌 선비가 반란을 계획하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꽃선비 열애사>에 묘사된 선비들의 정변 모의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반역을 꿈꾸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들이 반역자라는 인상을 풍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성군이든 폭군이든 임금을 거역했다는 불충의 딱지가 붙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런 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정치 용어가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인조 쿠데타)에 사용된 반정(反正)이란 단어다.
 
제자 공손추가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정말로 몰아낼 수 있는 겁니까?"라고 질문했다. 맹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맹자> 진심(盡心) 편에 따르면, 맹자는 "이윤(伊尹)의 정신이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이윤의 정신이 없다면 찬탈이 된다"고 말했다.
 
임금인 태갑(太甲)을 하아시켰다가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자 3년 만에 복권시킨 은나라 재상 이윤의 정신을 갖고 있다면 폭군 방벌도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다른 마음이 아니라 불의를 몰아내려는 마음이 있다면 폭군 방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도한 정변도 맹자가 말한 폭군 방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 시대 선비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폭군 방벌로 불리기보다는 반정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박정희와 달랐던 점
 

SBS 드라마 <꽃선비 열애사>의 한 장면 ⓒ SBS

 
1506년에 중종반정을 일으킨 사람들은 정(正)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미인 반정이란 단어로 자신들의 행위를 지칭했다. 그들은 이 용어를 연산군 폐위와 중종 즉위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연산군이 폐위된 음력 병인년 9월 2일(양력 1506년 9월 18일)로부터 1개월 정도 경과된 음력 10월 7일(양력 10월 22일)이었다. 이날 거행된 조강(朝講)에서도 이 단어가 거론됐다.
 
신하와 군주의 아침 세미나인 이 자리에서 반정 공신인 사헌부 집의(정3품) 이유청이 중중에게 건의한 내용이 있다. 연산군의 측근들을 추가적으로 숙청하라는 것이었다. 중종은 그 사람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대꾸했다.
 
이때 이유청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반정이다. 그는 숙청 대상자를 거명하면서 "지금 반정(反正)하는 때에 당연히 죄 주어야 하거늘, 하물며 이들을 의심없이 신임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대상자들을 벌줄 것을 건의했다. 연산군 정권 관련자들을 철저히 응징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정'의 회복이었던 것이다.
 
1960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자신이 벌인 일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장면 내각을 전복한 직후에 그가 꾸린 것은 군사혁명위원회다. 이렇게 혁명이란 단어를 선호한 것은 자신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박정희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혁명을 했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으려 애썼다. 이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 이념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필요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노비주이자 지주이고 가장인 그들은 '군주는 아버지나 다름없다'는 논리를 가정의 부부관계나 산업현장의 노비·주인 관계 혹은 소작농·지주 관계로도 확대·적용했다. 이런 논리 구조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지배를 합리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명분 없이 이 논리 구조를 훼손하면, 그들 역시 또 다른 하극상을 자초할 수도 있었다. 하극상이 만연했던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일반 민중들의 반란이 많았던 사실은 하극상이 팬데믹 같은 전염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정이란 논리는 이런 하극상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 이는 그들의 행위를 '정'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 포장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는 반란을 했지만 개념적으로는 반란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효과가 있었다.
 
'반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의 중요성
 

SBS 드라마 <꽃선비 열애사>의 한 장면 ⓒ SBS

 
'정'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은 혁명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정'의 상태로부터 멀어진 기존 질서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는 정변으로 인한 사회 혼란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을 달래는 데도 효과가 있었다.
 
폭군 방벌 같은 용어로는 그런 효과를 만들어내기 힘들었다. 이런 단어는 도전적 뉘앙스를 풍길 뿐,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혁명 성공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질서 회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폭군 방벌이나 혁명 같은 급진적 단어를 강조하는 것은 정변 주역들에게 손실이 될 수도 있었다.
 
반면, 반정은 도전적 느낌뿐 아니라 동시에 안정적인 느낌도 함께 제공했다. 정변에 의해 기존 질서가 깨진 게 아니라 원래 질서가 회복된 듯한 느낌을 풍길 수 있었다. 이런 용어를 자신들의 거사에 적용해 안정 심리를 확산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선비나 문신들은 영리하고 교묘했다고 할 수 있다. 도포에 갓을 착용하고 책을 읽는 그들의 외형은 정변과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정변 기술이 능한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 단어를 1506년 연산군 폐위뿐 아니라 1623년 광해군 폐위 때도 사용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 단어는 조선시대 정변을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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