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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신화와 WBC 우승, 일본야구 백년 숙원 풀었다

WBC 결승에서 미국 3-2 제압, 통산 세 번째이자 14년 만의 우승

23.03.22 13:57최종업데이트23.03.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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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1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챔피언십(WBC 챔피언십) 9회, 미국 팀의 마이크 트라웃이 일본 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삼진을 당하는 모습. ⓒ Getty Images/AFP/연합뉴스

 
9회초 2사, 일본이 3-2로 1점 차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가고 있던 상황 일본의 마운드 위에는 마무리 투수 오타니 쇼헤이가 올라와 있었고, 타석에 들어선 것은 마이크 트라웃이었다. 두 선수는 LA 에인절스에 한솥밥을 먹고 있는 팀동료이자, 투타에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꼽히는 슈퍼스타들이었다.
 
'세기의 대결'의 승자는 오타니였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오타니의 마지막 6구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예리한 슬라이더로 트라웃의 헛스윙을 이끌어내며 삼진 처리에 성공했다. 동시에 일본의 WBC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3월 2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결승에서 일본은 미국을 3-2로 따돌리고 2006년, 2009년에 이어 통산 세 번째이자 14년 만에 WBC 정상을 차지했다.
 
일본은 2회초 트레이 터너에 솔로홈런을 허용하며 먼저 리드를 내줬지만, 곧바로 2회말에 무라카미 무네타카의 동점 솔로홈런, 1사 만루에서 라스 눗바의 땅볼로 타점으로 역전에 성공했고, 4회에는 오카모토 카즈마의 솔로 홈런까지 터지며 리드를 벌렸다.
 
미국은 8회 카일 슈워버가 다르빗슈 유에게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2-3으로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마지막 1점을 뒤집지 못 했다. 일본은 선발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비롯해 도고 쇼세이-다카하시 히로토-이토 히로미-오타 다이세이-다르빗슈 유- 마무리 오타니까지 무려 7명을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친 끝에 미국의 막강 타선을 산발 9안타 2점으로 틀어 막는 데 성공했다.
 
이날의 백미는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오타니와 트라웃의 맞대결이었다. 이날 3번타자로 출전했던 오타니는 7회말 3번째 타석 이후 불펜으로 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8강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던 오타니는 결승전에서 팀이 필요하면 구원으로라도 등판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경기가 박빙의 승부로 흘러갔고 일본으로서는 한 이닝을 확실히 막아줄 수 있는 마무리투수로 오타니보다 더 믿을 만한 카드는 없었다.
 
오타니는 선두타자 맥닐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불안하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후속 타자 무키 베츠를 2루수 땅볼 병살타로 2아웃을 잡아내며 위기를 넘겻다. 이어 트라웃마저 삼진으로 잡고 우승을 결정지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일본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챔피언십 경기에서 미국을 꺾고 환호하고 있다. ⓒ AP Photo/ 연합뉴스

 
대회 MVP도 오타니의 몫이었다. '이도류'라는 명성에 걸맞게 WBC에서도 투타 겸업을 소화한 오타니는 타자로는 7경기에 모두 지명타자로 출장해 타율 4할 3푼 5리(23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9득점 OPS 1.345를, 투수로는 3경기 등판해 2승(9.2이닝)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 탈삼진 11개를 기록했다.
 
오타니는 WBC 1라운드 B조 조별리그에서는 첫 경기 중국전에 선발 투수 겸 지명타자로 출장하며 투수로 4이닝 1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 타자로서 4타수 2안타 2볼넷 2타점으로 투타에서 맹활약했다.
 
토너먼트에서도 고비마다 오타나의 활약이 빛났다. 이탈리아와의 8강전 3회 말에는 상대 허를 찌르는 기습 번트로 빅이닝(4득점) 발판을 만들었고, 멕시코와의 4강전에선 5-6으로 지고 있던 9회 말에 선두 타자로 나서 2루타를 치며 일본의 극적인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3-2 한 점 차 리드에서 9회 마무리 투수로 나와 우승을 결정짓는 헹가래 투수가 되며 영화같은 엔딩을 장식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이번 WBC 우승은 미국을 넘고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는 일본야구의 오랜 숙원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더 크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야구가 국민적인 인기를 끌어왔고, 오래전부터 미국을 넘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겨왔다. 일본야구계는 꾸준히 세계적인 선수들과 메이저리거를 배출하며 대표팀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일본은 1, 2회 WBC 대회 때도 우승을 차지했지만 당시는 초창기라 WBC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들이 많지 않았다. 이때만해도 일본은 미국보다는 한국과의 라이벌 구도가 더 부각됐다. 미국은 메이저리거들이 여러 가지 내부사정으로 WBC 참여에 적극적이지 않아서 기대보다 부진했고, 대진도 번번이 엇갈리며 일본과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2023년 3월 21일 화요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챔피언십 경기에서 일본 선수들이 미국을 꺾고 환호하고 있다. ⓒ AP Photo/ 연합뉴스

 
일본은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는 연이어 결승진출에 실패하며 3위에 만족해야 했던 반면, 미국은 2017년 대회에서 마침내 첫 정상에 올랐다. 2023년 대회 결승에서야 처음으로 일본과 미국의 정예 1진이 WBC에서 만나게 됐다.
 
일본은 이번 대회 오타니와 다르빗슈, 무라카미 등을 대표팀에 불러들이며 시작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미국은 두터운 선수층에 비하여 최정예 선수들을 모두 동원한 것은 아니지만 트라웃과 폴 골드슈미트, 무키 베츠 등 메이저리그 MVP급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전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비교적 수월한 대진운을 받고 손쉽게 결승까지 진출한 미국에 비하여, 일본은 토너먼트에서 어려운 고비를 몇차례나 겪었다. 특히 멕시코와의 준결승에서는 종반까지 끌려다니며 위기를 맞이했으나 뒤늦게 폭발한 타선과 무라카미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결승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2연속 역전승까지 거두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지난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WBC 우승은 일본 야구가 오랫동안 꿈꿨던 해피엔딩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시나리오로 완성된 셈이다.
 
일본에서 성장하여 미국에서도 투타 겸업으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하고 최고의 슈퍼스타로 자리잡은 오타니는 일본 야구계의 '세계정상과 미국 타도' 드림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이러한 오타니를 앞세워 결승에서 숙적으로 꼽히는 미국까지 꺾은 것은 일본야구계 역사상 가장 최고의 순간으로 오랫동안 남을 전망이다.
 
또한 오타니는 WBC 대회 기간 중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을 언급한 바 있다. 오타니는 "일본이 이번 대회를 우승하면 대만이나 한국같은 예선에서 탈락한 다른 국가들도 '다음에는 우리들이 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한때 일본과 라이벌 의식을 불태웠던 한국은 이번 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으며 일본과의 벌어진 격차를 분명히 확인했다.
 
일본야구는 미국을 따라잡기 위하여 오랫동안 장기적인 계획과 추진력을 가지고 도전해왔고, 결국 세계정상이라는 결실을 이뤄냈다. 투수-거포 육성과 대표팀 운영 시스템은 한국야구도 본받을 만한 부분이 있다. 과거의 짧은 영광과 인기에 도취되었던 한국야구는, 오타니 신드롬과 일본의 연이은 국제대회 제패를 바라보며 막연히 부러워하거나 질투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분발하여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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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일본우승 오타니 마이크트라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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