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베를린을 이끌던 2020년 1월 클린스만 감독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선수로서는 명불허전 '레전드', 감독으로서는 오락가락 '롤러코스터', 선임 과정과 배경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오리무중',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수장이 된 위르겐 클린스만(독일)의 깜짝 등장이 불러온 파장을 요약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7일 오후 5시 클린스만 감독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 카타르 월드컵을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포르투갈)의 뒤를 이어, 앞으로 4년간 태극전사들을 이끌 새로운 리더가 두 달여 만에 결정됐다.
클린스만은 독일이 배출한 축구계의 전설이다. 1980~199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스트라이커로 슈투트가르트-인터밀란-바이에른 뮌헨-토트넘 등에서 활약했으며, 국가대표로도 A매치 104경기에 출전하여 47골을 넣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당시는 서독)-유로1996을 제패한 독일 대표팀의 우승멤버이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만 통산 11골을 넣었고, 이 중에는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만난 한국을 상대로 터닝슛으로 기록한 득점도 었었다. 클럽에서도 맹활약을 펼쳐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1987-1988)과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1994-1995)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외 축구계 시선이 극명하게 엇갈린 까닭
현역 은퇴 이후로는 지도자로 변신하며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자국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을 3위로 올려놓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2011년에는 미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2013년 골드컵 우승과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호성적을 올리며 국가대표팀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2006년에는 독일 올해의 축구 감독상, 2013년에는 북중미 축구협회 올해의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다만 대표팀에서의 성과에 비하면, 클럽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헤르타 BSC를 맡았으나 각각 성적 부진과 구단과의 불화로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사퇴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동안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역대 외국인 감독들과 비교하면 클린스만의 선수 커리어는 단연 '넘버원'이다. 같은 독일 출신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포르투갈 국가대표였던 벤투 정도가 비교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정상급 스타플레이어로, 월드컵 우승경력까지 갖춘 클린스만은 인지도와 명성에서 한수 위다.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도 상위권이다. 클린스만은 대표팀에서 월드컵 3위 1회, 16강 1회, 골드컵 우승 등을 기록했고 짧게나마 바이에른 등 빅리그, 빅클럽을 지휘한 경험도 있다. 지도자 커리어에서 히딩크나 아드보카트, 벤투 보다는 다소 떨어지지만, 움베르투 쿠엘류, 조 본프레레, 울리 슈틸리케, 아나톨리 비쇼베츠, 고 핌 베어벡 등에 비해서는 크게 밀릴 게 없거나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더 두드러진다. 물론 역대 외국인 감독들이 부임할 때 부정적인 전망이 나온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클린스만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전임 벤투호에 대한 선수단의 지지가 워낙 확고했고 월드컵 16강이라는 성과를 올리면서 외국인 감독에 대한 팬들의 눈높이가 올라간 만큼 모든 면에서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술적 역량 부족, 히딩크-벤투와는 다르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대표팀의 사령탑으로 팬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의문을 떨쳐내야만 한다. 첫 번째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클린스만은 지도자 커리어 내내 유독 전술적 역량과 선수단 장악력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과거 독일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에서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했던 독일 수비수 필립 람은 2021년 본인의 자서전에서 "클린스만에게 전술적인 지시는 없었다. 선수들의 체력만 단련했을 뿐"이라고 폭로했다. 세부적인 전술 지시가 없어서 불안해진 선수들은 경기 전에 알아서 논의를 했었다는 것이 람의 주장이었다. 이는 단지 람의 개인적 편견만은 아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당시 수석코치이자 이후 후임 감독이 되는 요아힘 뢰브가 전술적인 지시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인 감독 성공 사례인 히딩크, 벤투와 가장 두드러진 차이다.
히딩크 감독은 압박축구와 멀티플레이, 벤투는 빌드업과 점유율축구 등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축구 철학이 뚜렷했다. 또한 이들의 축구는 당시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시대적 트렌드와 한국 축구의 조화를 추구한 결과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히딩크, 벤투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분야별로 전문화된 코치진을 운용하며 '대표팀의 현대화'에 기여하며 선수단의 확고한 지지를 받았다.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반면교사의 대표적 사례로는 슈틸리케가 있다. 그는 점유율 축구라는 나름의 지향점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그라운드에서 실제 구현할 전술적 역량이나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술가형 코치(신태용 전 감독)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타입이지만 인맥 부족 등으로 선수단 장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클린스만은 전술에 대한 세부적인 설계를 주도하는 '전술가'라기보다는, 체력과 멘털 관리에 주력하는 '매니저' 유형의 감독에 가깝다. 슈틸리케와 벤투를 넘나드는 극과 극 체제를 모두 경험하며 눈높이가 달라진 한국대표팀이 클린스만 감독의 방향성과 훈련시스템에 만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 변수는 '성실성'이다. 사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도자로서 유독 축구 외적인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독일 대표팀 시절의 미국에서 재택근무를 하다가 논란에 휩싸인 일이나, 미국 대표팀 시절 독일계 선수들을 편애한다는 비판, 헤르타 BSC 시절 SNS 라이브 생중계로 일방적인 사임을 발표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기행'에 가까운 클린스만의 행보들은, 한 조직을 책임진 리더로서 책임감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축구협회도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재임 기간 한국에 상시 거주하는 것을 계약 조건에 넣었다"라고 따로 밝히기도 했다. 한국축구는 2001년 히딩크 감독 시절에도 휴가가 너무 잦다는 이유로 마찰을 빚은 바 있으며, 2014년에는 당시 협상 중이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재택근무 문제로 이견이 엇갈리며 협상이 결렬되기도 했다. 대표팀 지도자에게 성과만큼이나 태도와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클린스만의 성실성에 대한 의구심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언론과 누리꾼들의 감시대상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문제는 '경험 부족과 현장 공백기'다. 클린스만은 그 명성만 봤을 때 베테랑 감독처럼 보이지만 지도자로서의 활동 경력은 풍부하지 않다. 클린스만은 2004년 독일대표팀 사령탑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는데 약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클럽과 대표팀을 모두 합쳐 5팀을 맡은 게 전부다. 그나마 오래 재임했던 기간은 경기 수가 적은 대표팀 감독 시절이었고, 최근 마지막으로 맡았던 헤르타 BSC에서는 불과 76일 만에 초고속 사임했다.
팀과 팀 사이의 공백기도 길어서 실질적으로 감독을 수행했던 기간은 9년도 채 되지 않는다. 헤르타에서 사임한 이후로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기까지도 약 3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냈다. 히딩크와 벤투의 경우, 한국 대표팀에 부임하기 전 다소 하락세를 보였을 망정 꾸준히 현장감각과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지도자로서 한창 활동할 나이에도 축구계 현장에서 자주 벗어나 있던 클린스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마이클 뮐러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이에 대해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전술만이 아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어떻게 살릴지, 스타플레이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중요하다. 여러 요소를 통해 팀워크를 이뤄야 하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뤘을 때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답변은 축구협회 역시 클린스만의 전술적 약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축구 팬들의 의구심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까닭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그래서, 왜 클린스만이어야만 했는가'다. 불확실한 전술적 색채, 오랜 경력에 비하여 부족한 현장 경험과 공백기, 불통과 기행을 둘러싼 우려 등 클린스만의 단점은 이미 세간에 충분히 알려진 상태였다.
마이클 뮐러는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은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를 상당히 원하고 있었고 (한국 축구와) 함께 발전할 마음,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다른 후보자에 비해 컸다. 한국을 맡으면 어떤 팀과 어떤 경기를 치르게 되는지를 묻는 것을 보고 그가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으려는 동기가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에 관심이 있거나 감독 자리를 원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 축구만의 확고한 색깔과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클린스만은 과연 그러한 한국축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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