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관객의 참여도가 높은 뮤지컬이다.
치타
공연 얘기에 이어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그녀의 인생 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건 엄마 덕분이라고.
원래 치타의 꿈은 가수였다. 외동딸로 자란 그녀는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다 해주는 부모님을 만나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한다. 치타가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부모님께 춤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딸에게 끼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판단대로 치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춤과 노래에 빠져들었다. 원래도 자신감이 넘치던 치타는 꿈까지 생기자 자존감이 꽉찬 사춘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치타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때의 나이 고작 17세였다. 학교 가는 시간마저 가수 준비에 쓰고 싶다고 자퇴까지 했던 열정 넘치던 딸이었기에 어머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의식 없이 누워있는 딸을 두고 두 가지 수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누구보다 딸을 잘 알았던 부모는 '내 딸이 장애를 가지게 되어 가수를 하지 못하면 죽는 것보다 싫어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Coma theraphy(저체온 치료)를 선택했단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이 곡이 < Coma 07 >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는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출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치타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의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쌍욕을 날렸지만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치타는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방황의 시간은 흘러만 갔다.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재활 때문이었을까.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병원에 있는 동안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치타는 "기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래를 조금이라도 강하게 할 경우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는 후유증을 겪었다.
2년 정도가 흘렀을까. 랩을 해보라는 권유를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다행히 곧잘 하게 된 치타는 무명의 시간을 지나 Mnet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가수의 길은 멀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2010년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향 부산에서 어머니와 머리를 맞댄 치타. 어머니는 힘들어하는 딸에게 "손톱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재주도 많으니까 기술을 배우라"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치타도 서울 생활을 접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짐정리를 하려고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바로 '언프리티 랩스타'의 작가였다. 잠시 생각을 하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또 고민에 빠졌다. 이미 마음을 다 접은 상태였다. "신의 장난 같았다"라고 치타는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보다 써놓은 가사가 많았다. 그녀는 "우승을 못해도 발버둥 치는 '나'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걸 알리고 싶었다"라며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치타는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