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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날도 오겠죠"

[인터뷰]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의 치타

23.02.20 14:59최종업데이트23.02.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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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가 직접 그린 그림: 치타와 어머니 그리고 반려동물 훈이 나나 구름 부리 달타냥 타랑. ⓒ 치타

 
가수에서 영화 출연, 화가 그리고 뮤지컬까지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치타.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의 주연을 맡은 지 두 달. 뮤지컬을 보고 인상깊었던 차에 지난 14일 그녀와 인터뷰를 가졌다. 

2020년도에 개봉한 영화<초미의 관심사>에서 조민수 배우의 딸 순덕 역을 맡았던 치타. 뮤지컬도 영화 찍을 때와 비슷한지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연기라는 통로는 같을 수 있지만 '발성' 등 공간이 주는 표현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영화는 대본을 숙지한 후 감독의 의도대로 신을 준비하는데 비해 뮤지컬 공연은 시작하기 전부터 참여도가 더 높았다. 아무래도 가수다 보니 내가 맡은 배역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전부 다 쓰고, 다른 배우들의 노래를 지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뮤지컬은 매번 할 때마다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이 달라지는 매력이 있다."

뮤지컬에 대한 치타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짧은 시간 내에 가사를 쓰고, 다른 배우들을 봐주느라 정작 자신의 캐릭터 분석하는 시간이 짧았다고. 하지만 그만큼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그녀는 "아직도 공연을 가기 한 두 시간 전에 대본을 또 본다"라며 "(그게) 관객에 대한 예의이자 저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양동근 배우와 함께 뮤지컬을 하면서도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다른 배우들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양동근 선배는 사람이 아니지 않니? 어떻게 저걸 저렇게 다 준비를 한거야? 장면을 다시 짜고 구상하고 일찍와서 혼자 연습하고. 그걸 보며 많이 배웠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관객의 참여도가 높은 뮤지컬이다. ⓒ 치타



공연 얘기에 이어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한 그녀의 인생 스토리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건 엄마 덕분이라고. 

원래 치타의 꿈은 가수였다. 외동딸로 자란 그녀는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다 해주는 부모님을 만나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한다. 치타가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부모님께 춤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딸에게 끼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판단대로 치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춤과 노래에 빠져들었다. 원래도 자신감이 넘치던 치타는 꿈까지 생기자 자존감이 꽉찬 사춘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 무서울 것 없던 치타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때의 나이 고작 17세였다. 학교 가는 시간마저 가수 준비에 쓰고 싶다고 자퇴까지 했던 열정 넘치던 딸이었기에 어머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의식 없이 누워있는 딸을 두고 두 가지 수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누구보다 딸을 잘 알았던 부모는 '내 딸이 장애를 가지게 되어 가수를 하지 못하면 죽는 것보다 싫어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Coma theraphy(저체온 치료)를 선택했단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이 곡이 < Coma 07 >이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는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출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치타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의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쌍욕을 날렸지만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치타는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방황의 시간은 흘러만 갔다.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재활 때문이었을까.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병원에 있는 동안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치타는 "기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래를 조금이라도 강하게 할 경우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는 후유증을 겪었다. 

2년 정도가 흘렀을까. 랩을 해보라는 권유를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다행히 곧잘 하게 된 치타는 무명의 시간을 지나 Mnet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가수의 길은 멀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2010년 아버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향 부산에서 어머니와 머리를 맞댄 치타. 어머니는 힘들어하는 딸에게 "손톱 꾸미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재주도 많으니까 기술을 배우라"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치타도 서울 생활을 접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짐정리를 하려고 KTX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바로 '언프리티 랩스타'의 작가였다. 잠시 생각을 하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또 고민에 빠졌다. 이미 마음을 다 접은 상태였다. "신의 장난 같았다"라고 치타는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보다 써놓은 가사가 많았다. 그녀는 "우승을 못해도 발버둥 치는 '나'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걸 알리고 싶었다"라며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치타는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치타의 어머니는 여러번 치타의 뮤지컬을 본 왕팬이다. ⓒ 치타

 
"언젠가는 저의 스토리가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활짝 웃는 치타. 그 웃음의 깊이가 처음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를 지탱해 준 꿈. 그 꿈을 아직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 전할 말은 없을까.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기회가 없다. 당연히 대학은 가야 하고, 누굴 이겨야 하고, 어떤 아파트에 살고 아빠 차는 어떤 것이며… 그런 걸 들으며 자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으려고 노력해야한다. 핸드폰으로 알게 된 지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몸소 직접 해보고 결정하고 다시 경험하다 보면 자신이 뭘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고, 하고 싶은 건 해야 죽을 때 후회를 안 할 것 같다는 치타. 검정 옷을 즐겨입는 치타의 내면에는 다양한 색깔이 가득했다. 가수뿐 아니라 배우로 활동하는 그녀, 또 다른 도전 앞에 선 그녀를 응원한다. 
치타 김은영 소크라테스패러독스 초미의관심사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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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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