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 고양 캐롯 감독의 '안양 KGC 인삼공사 디스성 발언'이 결국 KBL 재정위원회까지 가는 사태를 초래했다. 2월 13일 KBL은 김승기 감독의 구단 비방 행위의 건과 현대모비스 게이지 프림의 스포츠 정신을 위배한 파울의 건 및 해당 심판 경기 운영 미숙에 관한 건과 관련해 재정위원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재정위원회는 14일 오전에 열린다.
사건의 발단은 김승기 감독이 지난 10일 KT전을 앞두고 최근 캐롯의 내부 상황에 대하여 언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뜬금없이 KGC를 언급한 데서 비롯됐다. 올시즌을 앞두고 고양 오리온 농구단을 데이원자산운용이 인수해 재창단한 캐롯은 모기업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농구단 운영이 어려워졌다. 최근 급여 연체에 이어 구단 매각 작업을 진행중인 사실이 공개되며 부실 구단운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어수선한 구단 상황이 캐롯 선수단 내부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김승기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지금의 상황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괜찮다"고 답했다. 선수단을 이끌어야하는 현장 책임자로서 비록 진짜 속마음은 힘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대응은 훌륭했다.
그런데 여기서만 끝냈으면 괜찮았을 대목에서, 불필요하게 KGC를 추가로 언급하면서 사단이 났다. KGC는 바로 김 감독이 캐롯을 맡기 전, 지난 시즌까지 7년간이나 몸담았던 전 소속팀이었다. 김 감독은 여기서 KGC 시절 전임 단장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굳이 비교하면 (지금의 캐롯보다) KGC 때가 더 힘들었다. 당시 단장님으로부터 아끼면서 팀을 운영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 배웠던 것들을 여기서 지금 활용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라고도 덧붙였다.
KGC는 김승기 감독에 대한 발언이 알려진 후 이를 '구단에 대한 비방'이라고 판단하고 KBL에 징계를 요청했다. 김 감독은 입을 한 번 잘못 놀린 죄로 불과 사흘 만에 재정위에 회부되는 신세가 됐다. 김 감독은 KGC의 대응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재정위에서 성실하게 해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승기 감독과 안양 KGC 구단간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이 발언이 굳이 왜 재정위까지 가야 할 일인지 뜨악할 수도 있다. 김 감독의 해당 발언 자체만 놓고 보면, 이를 KGC 구단에 대한 디스로까지 해석하기에는 무리로 보일수도 있다.
캐롯 시절보다 KGC 감독 시절이 더 힘들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또한 KGC에서 배운 노하우를 캐롯에서 활용하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김 감독의 발언은 언뜻 들으면 전 소속팀에 대한 칭찬처럼 들린다.
하지만 김 감독이 정말로 순수한 의도에서 KGC를 언급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김 감독이 이미 이전부터 KGC에 여러 차례 악감정을 드러내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준 전력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캐롯으로 이적한 후 여러 차례 KGC 시절의 뒷이야기를 언급한 바 있다. 김 감독은 KGC에서 감독으로 데뷔했고, 팀을 두 차례나 정상으로 이끌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감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김 감독은 KGC에서 성과에 비하여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 하고 오히려 구단의 소극적인 지원으로 힘들었던 설움으로 자주 언급하며 수차례나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김 감독이 우승권 전력의 KGC를 떠나서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불안정한 신생팀 캐롯으로 자리를 옮긴 가장 큰 이유도 결국 KGC 구단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김 감독이 지난해 10월 16일 시즌 첫 원정경기를 위하여 안양을 방문했을 때 구단은 옛식구인 김 감독과 코치진, 전성현 등에게 꽃다발을 안기며 나름 예우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오히려 "7년 동안 이 팀에서 고생하다가 다른 팀이 되어서 홍삼(모기업의 대표상품) 하나도 주지 않더라. 굉장히 서운하고 얄밉기도 했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김 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전임 KGC 단장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도 농구계 관계자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제와서 KGC 구단과 전임 단장을 굳이 언급하면서, 심지어 급여조차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 하는 캐롯의 상황과 비유하여 '전 소속팀이 더 힘들었다. 덕분에 많이 배워서 고맙다'는 투로 이야기한다면 누가 봐도 진심이 아닌 비꼬는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다만 KGC는 김 감독과 떠난 이후 프런트도 대거 물갈이 됐다. 김승기 감독과 갈등을 빚었던 전임 단장도 이미 농구계를 떠났다. KGC는 김 감독이 그동안 전 소속팀에 대한 발언을 이어갈 때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KGC가 이제서야 김 감독의 발언을 문제삼은 것도 꼭 이번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참고 참은 것이 누적된 끝에 결국 터져버린 것에 가깝다.
하지만 농구팬들은 양쪽 모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물론 김승기 감독 입장에서는 전 소속팀에 대하여 외부에 다 밝혀지지 않은 뒷이야기와 앙금이 남아있을 수는 있다. 프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구단과 감독이 갈등을 빚다가 헤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모든 감독들이 다 김승기 감독처럼 틈만 나면 전 소속팀을 험담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이미 구단을 떠난 마당에 할말이 있다면 합리적인 언어와 구체적인 방식으로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KGC는 김승기 감독이 떠난 이후에도 빈 자리는커녕, 리그 1위를 달리며 순항하고 있다. 김 감독과 달리 정작 KGC는 김 감독을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가뜩이나 캐롯이 모기업과 매각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사령탑까지 진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논란을 자초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KGC가 굳이 재정위로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간 것도 성숙한 대응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KGC가 그간 소극적인 투자, 구단의 발전에 기여한 선수-감독에 대한 홀대 등으로 논란이 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며, 실제로 김승기 감독 외에도 문제를 제기한 농구인들의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와 프런트가 바뀌고, 당장 지금의 성적이 순항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간 역사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같은 시행착오는 반복될 수 있다.
또한 스포츠계에서는 라이벌이나 앙숙구도가 있기 마련이고, 이들간의 디스전도 리그 흥행을 위한 하나의 화제거리로 활용할 수 있다. KGC가 당당하다면 김승기 감독의 언행을 토론의 장으로 끌고나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박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개인의 의견을 구단이 재정위 안건으로 올리는 전례를 남겼다는 것은, 앞으로도 자칫 의사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거나 왜곡할 위험이 크다.
피차 서로 보기 흉한 '뒤끝'만 드러낸 김승기 감독과 KGC 구단 모두, 이번 갈등의 패자일뿐 승자는 없다. 오십보 백보, 혹은 피장파장이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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