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
옥상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전작이 펜싱을 소재로 했고, 이번에도 클라이밍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스포츠를 모티브로 공연을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동작을 만들고, 무용수에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전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공연은 경험에서 나오는 감정상태에 접근하다보니까 추상적인 무용이 더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펜싱은 친척이 선수로 활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 어느날 우연히 경기를 봤는데, 안무가들이 무대에 서듯이 그들도 외나무 다리에 서있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 펜싱 동작의 어떤 부분이 무용이 될 것이라 생각했나?
"칼로 찌르고 피하는 두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펜싱의) 곡선과 직선이 제게는 안무를 만들 수 있는 동기가 됐다. 그래서 친척 동생을 찾아가 실제 경험담과 동작을 배웠다. 그런 민첩성, 유연성 등의 운동성은 무용가들과도 많이 닮았다. 그리고 찌르고 피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마주해야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 클라이밍도 어떻게 무용으로 옮겨 왔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5년 전부터 클라이밍에 관심이 있었다. 처음 공연을 한 것은 2007년이니까 대략 15년 넘게 활동해왔는데, 팬데믹이 닥치면서 공연장에서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아지니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2020년부터 리서치를 하면서 암장을 찾아서 색깔이나 번호를 밟으면서 찾아가는 패턴을 배웠다. 처음에는 30초도 못 버티고 땅에 떨어졌다. 오기도 생기면서 계속 도전했다. 탈부탁이 가능한 홀드들을 보면서 '투어를 다닌다'고 한다. 이 장소에 가면 이런 디자인에 있는데, 클라이밍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현장에서 찾아 가는 것이다."
- 클라이밍과 이번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함께 도전하니까, 하면 할수록 성취감을 느꼈다. 특이한 것은 모르는 사람들도 옆에서 응원해준다. 어디에 발을 밟아야할지 길을 찾는 루트파인딩 과정을 조언해주는데, 이번 작품 안에서도 클라이밍이 고독하고 외롭게 혼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과 만나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다. 길의 패턴들이 무용수들의 움직이는 동기를 전달하고, 직접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홀드를 각도가 틀어지게 설정하거나 작게 튀어나와 있는 양각을 잡아 발을 딛는다. 그것은 안무가들이 일반적으로 몸의 전체가 닿는 면대면의 컨택과는 다르다. 몸의 골격이나 쇄골이나 손가락은 잡아당기는 힘의 원리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 무대에 배경으로 설치한 것은 일상적인 '집'이다. 왜 의자, 탁자, 시계가 있는 집을 배경으로 삼았는가?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스스로에게 벽이라는 것은 길을 걷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설거지를 할 때, 개인마다 다른 심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시작을 '암벽 위에서(on the rock)'이라는 제목처럼 암석을 덩그러니 놓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암벽을 타는 것은 그대로 따라하는 모사일뿐이지 어떤 이야기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양각이지만 음각 느낌도 나는 세트를 만들고 싶었다."
- 안무가들의 복장과 배경은 어떤 의도로 디자인한 것인가?
"단단한 암석을 보여줄 수 있는 의상의 디자인을 찾았다. 뇌의 단면을 자른 듯한 패턴으로 디자인을 하다보니 길과 미로의 형태를 발견했다. 실제로 클라이밍장처럼 굴곡이 있는 느낌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러면 벽 느낌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붙어있는 느낌, 제목을 상기할 수 있는 느낌, 옴짝달싹 못하는 그 위에서 결국에는 팔에 힘이 빠져서 내려와야하는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그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책상, 의자를 배경으로 표현했다."
- 무채색, 회색의 톤으로 조명도 단순하게 흰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룬다. 양과 음 등 이분법적인 것으로 최대의 효과를 시도했다. 왜 톤다운을 해서 작품을 구상했나?
"사실 이전에 연습했을 때는 색깔이 많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추가하면서 점점 줄이게 되는데, 펜싱이라는 경기에서도 강렬한 색깔이 나왔는데, 전체적인 톤다운이 암석을 상징하는 의상과 다르게 튀는 느낌이 들어서 점점 색을 줄였다."
- 일반적인 무용은 몸동작 자체에 집중하는데, 이번 공연은 혼자서 할 수 없는 동작들이 눈에 띈다. 둘이서 의지하거나, 잡아채기도 하며, 서로의 목덜미를 밀어내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보니까 클라이밍에서 볼 수 있는 동작들을 많이 연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혼자서도 저런 동작을 할 수도 있을까라는 동작을 발견했다. 둘이서 할 수 있는 균형을 이룬 것이 많았는데, 그 수많은 동작들을 어떻게 연구했나? 눈을 감고 어렴풋하게 보면 배경은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이는데, 메인이 되는 사람에게서 클라이밍이 보인다.
"처음에는 직렬 형태로 어떤 색을 짚으면서 우리가 익숙한 것들을 최대한 비우고 싶었다. 그래서 'Z', 'N'과 같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떠올렸다. 그 안에서 1~8까지 무작위로 번호를 매긴다. 그러면 1부터 8까지 가는 과정의 길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춤으로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발끝으로 짚고, 다음은 허벅지도 닿게 하며 길을 외우면 점차 춤처럼 완성된다. 이렇게 외웠던 과정을 상대방의 몸에 입히는 것이다. 경각골이라든지 목덜미라든지 무릎 뒤에 있는 곳을 잡고 최대한 수행하는 자세가 클라이밍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많이 나오는 착지 동작이다. 가장 먼저 배우는 동작이기도 하다."
- 이밖에 드러내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는가?
"시계가 나오는 부분이다. 두 사람을 동일한 인물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우리는 하나의 벽이나 관문을 넘으면서 성장하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장애물이 생겨난다. 낙하하는 과정 안에서 과거의 본인을 기다리면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소제목에서 여자 무용수가 했던 것처럼 추락하거나 낙하는 모습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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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