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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모사하지 않고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 보여주고 싶어요"

[리뷰] 클라이밍에서 영감을 얻은 무용작 '온더락(On the Rock)'

23.02.07 16:05최종업데이트23.02.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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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
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옥상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0년 도쿄올림픽 중계로 기억한다. 자그마한 고등학생이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성인들과 함께 암벽등반 경기에 나서는 장면을. 물론 이전에 김자인(35)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지만, 앳된 얼굴의 소녀가 세계적인 선수들 틈에서 경기를 하는 것으로도 흥미로운 일이다. 당시 결선에서 종합 8위를 오른 직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리드 부문 금메달을 수상한 서채현(20) 덕분에 '클라이밍'을 바라보는 시선은 새삼 달라졌다. 

'오르거나 버티거나'

성공 또는 실패라는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다. 이렇게 단순한 결과를 낳는 클라이밍은 올림픽을 넘어 생활체육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수직으로 수십미터에 이르는 암벽등반의 매력 덕분에 주변에서는 암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아마추어 동호회를 중심으로 클라이밍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갔다. 이런 붐업에 힘입어 지난 3일~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온더락(on the rock)>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공연은 '클라이밍'에서 영감을 얻은 무용 작품이다. 특히 암벽을 오르거나 매달리면서 나타나는 순간의 찰나를 무용수들이 완벽하게 재해석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온더락>을 제작한 단체(모든 컴퍼니)가 직관적인 스포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현대무용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고민해온 '모든 컴퍼니'가 걸어온 발자취에 주목해보았다. 

'모든 예술을 받아들이고 융합한다'

김모든(39) 연출가를 중심으로 결성된 '모든 컴퍼니'가 지향하는 바는 다소 뚜렷해 보인다.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왔는데, 이처럼 스포츠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일까. 클라이밍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 전에 이미 펜싱에 관한 작품(피스트)을 지난 2021년에 공개한 바 있다. 어쩌면 무용을 표현하기 위하여 스포츠를 선택한 것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어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한 질문에 김모든 연출가는 "직선과 곡선, 나선형의 움직임을 강조한 무용에서 스포츠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라 말했다. 특히 <온더락>은 위드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을 투영해 신체의 한계점을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라 설명했다. 위태롭게 매달린 상태로 버티면서 다음 발자국을 찾는 모습이 어쩌면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더불어 김 연출가는 "몸을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태도와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인간의 한계에 직면한 동시대에서 출발
 
 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
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옥상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대체로 어두운 조명 아래 흰색과 검은색의 단조로운 채색만이 무대를 감싼다. 4명의 남자 무용수와 4명의 여자 무용수는 한줄기 빛이 내려오는 길을 따라 교차해서 걷는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듯한 이들은 무심코 걷다가 어딘가를 응시한다. 멀리서 매캐한 냄새와 기운이 밀려온다. 입과 코를 틀어막은 그들은 이내 발걸음을 재촉하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작품의 초반은 우리가 코로나19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추상적인 이미지에 포커싱을 맞춰온 무용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사실을 전달하는 배우처럼 대사를 읊지는 않지만 어딘가를 응시하는 장면의 의도를 눈치채게 만들었다. 이것은 '모든 컴퍼니'가 말하고 싶었던 '인간과 신체의 한계'를 표현하기에 앞서 우리가 직면했던 암울한 상황을 넌지시 깔았던 셈이다. 실제로 김 연출가도 최근 3년간 팬데믹을 겪으면서 공연하기 쉽지 않았던 제약 때문에 한동안 심란했다고 고백했다.  

화면이 전환되고 집을 떠올리는 집기가 벽면에 걸렸다. 아마도 암벽을 오르기 위해서 4미터에 이르는 배경에 의자와 책상, 시계 등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8명의 무용수들은 서로 끌어주기도 하고 잡아당기는데,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균형을 이룬다. 둘씩 짝을 이룬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때로는 상대방의 힘에 의지한 채 다양한 동작들을 일궈냈다. 한 명이 보조를 맡으면, 다른 한 명은 메인이 되는 패턴을 반복한다. 메인이 되는 무용수는 마치 클라이밍에서 볼 수 있는 동작들을 유연하게 생성한다. 무대에서 공연하지만 어두운 조명 아래 암벽에 등반하는 선수를 보는 착각에 휩싸인다. 그들의 동작은 점차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는 선수들처럼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클라이밍을 소재로 무용을 하는 진짜 이유는?

클라이밍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무용수들의 동작은 '암벽 위(on the rock)'에 매달린 모습과 묘하게 겹쳐보인다. 하지만 김 연출가는 단순히 클라이밍을 '모사'(원본을 그대로 베낌)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시·공간에서 자신이 넘어야 할 '한계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강조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전에 없던 제약을 마주하면서 주변 장애물이 커다란 벽으로 느껴졌어요. 그런 압박감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을 클라이밍에 대입한 것이죠. 그래서 실내 클라이밍장을 찾아 리서치를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이번 작품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위드코로나에 접어든 지금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개인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온더락>은 쉽게 포기하고, 쉽게 선택하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앞에 닥친 고난을 이겨내려는 인간을 표현한 것이다. 즉, 스스로에게 한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번 공연이 초연되기 전날(2월 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드레스리허설을 마친 후 작품을 제작한 김모든 연출가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직관적인 스포츠에서 추상적인 무용으로
 
 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
온더락(On the Rock) 공연 장면옥상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전작이 펜싱을 소재로 했고, 이번에도 클라이밍으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스포츠를 모티브로 공연을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동작을 만들고, 무용수에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전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공연은 경험에서 나오는 감정상태에 접근하다보니까 추상적인 무용이 더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펜싱은 친척이 선수로 활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 어느날 우연히 경기를 봤는데, 안무가들이 무대에 서듯이 그들도 외나무 다리에 서있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 펜싱 동작의 어떤 부분이 무용이 될 것이라 생각했나?
"칼로 찌르고 피하는 두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펜싱의) 곡선과 직선이 제게는 안무를 만들 수 있는 동기가 됐다. 그래서 친척 동생을 찾아가 실제 경험담과 동작을 배웠다. 그런 민첩성, 유연성 등의 운동성은 무용가들과도 많이 닮았다. 그리고 찌르고 피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든 싫든 마주해야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 클라이밍도 어떻게 무용으로 옮겨 왔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5년 전부터 클라이밍에 관심이 있었다. 처음 공연을 한 것은 2007년이니까 대략 15년 넘게 활동해왔는데, 팬데믹이 닥치면서 공연장에서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아지니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2020년부터 리서치를 하면서 암장을 찾아서 색깔이나 번호를 밟으면서 찾아가는 패턴을 배웠다. 처음에는 30초도 못 버티고 땅에 떨어졌다. 오기도 생기면서 계속 도전했다. 탈부탁이 가능한 홀드들을 보면서 '투어를 다닌다'고 한다. 이 장소에 가면 이런 디자인에 있는데, 클라이밍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현장에서 찾아 가는 것이다." 

- 클라이밍과 이번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함께 도전하니까, 하면 할수록 성취감을 느꼈다. 특이한 것은 모르는 사람들도 옆에서 응원해준다. 어디에 발을 밟아야할지 길을 찾는 루트파인딩 과정을 조언해주는데, 이번 작품 안에서도 클라이밍이 고독하고 외롭게 혼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과 만나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다. 길의 패턴들이 무용수들의 움직이는 동기를 전달하고, 직접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홀드를 각도가 틀어지게 설정하거나 작게 튀어나와 있는 양각을 잡아 발을 딛는다. 그것은 안무가들이 일반적으로 몸의 전체가 닿는 면대면의 컨택과는 다르다. 몸의 골격이나 쇄골이나 손가락은 잡아당기는 힘의 원리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 무대에 배경으로 설치한 것은 일상적인 '집'이다. 왜 의자, 탁자, 시계가 있는 집을 배경으로 삼았는가?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스스로에게 벽이라는 것은 길을 걷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설거지를 할 때, 개인마다 다른 심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시작을 '암벽 위에서(on the rock)'이라는 제목처럼 암석을 덩그러니 놓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암벽을 타는 것은 그대로 따라하는 모사일뿐이지 어떤 이야기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양각이지만 음각 느낌도 나는 세트를 만들고 싶었다."

- 안무가들의 복장과 배경은 어떤 의도로 디자인한 것인가?
"단단한 암석을 보여줄 수 있는 의상의 디자인을 찾았다. 뇌의 단면을 자른 듯한 패턴으로 디자인을 하다보니 길과 미로의 형태를 발견했다. 실제로 클라이밍장처럼 굴곡이 있는 느낌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러면 벽 느낌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붙어있는 느낌, 제목을 상기할 수 있는 느낌, 옴짝달싹 못하는 그 위에서 결국에는 팔에 힘이 빠져서 내려와야하는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을 표현했다. 그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책상, 의자를 배경으로 표현했다."

- 무채색, 회색의 톤으로 조명도 단순하게 흰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룬다. 양과 음 등 이분법적인 것으로 최대의 효과를 시도했다. 왜 톤다운을 해서 작품을 구상했나?
"사실 이전에 연습했을 때는 색깔이 많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추가하면서 점점 줄이게 되는데, 펜싱이라는 경기에서도 강렬한 색깔이 나왔는데, 전체적인 톤다운이 암석을 상징하는 의상과 다르게 튀는 느낌이 들어서 점점 색을 줄였다." 

- 일반적인 무용은 몸동작 자체에 집중하는데, 이번 공연은 혼자서 할 수 없는 동작들이 눈에 띈다. 둘이서 의지하거나, 잡아채기도 하며, 서로의 목덜미를 밀어내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보니까 클라이밍에서 볼 수 있는 동작들을 많이 연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혼자서도 저런 동작을 할 수도 있을까라는 동작을 발견했다. 둘이서 할 수 있는 균형을 이룬 것이 많았는데, 그 수많은 동작들을 어떻게 연구했나? 눈을 감고 어렴풋하게 보면 배경은 보이지 않고 사람만 보이는데, 메인이 되는 사람에게서 클라이밍이 보인다.
"처음에는 직렬 형태로 어떤 색을 짚으면서 우리가 익숙한 것들을 최대한 비우고 싶었다. 그래서 'Z', 'N'과 같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떠올렸다. 그 안에서 1~8까지 무작위로 번호를 매긴다. 그러면 1부터 8까지 가는 과정의 길들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춤으로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발끝으로 짚고, 다음은 허벅지도 닿게 하며 길을 외우면 점차 춤처럼 완성된다. 이렇게 외웠던 과정을 상대방의 몸에 입히는 것이다. 경각골이라든지 목덜미라든지 무릎 뒤에 있는 곳을 잡고 최대한 수행하는 자세가 클라이밍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많이 나오는 착지 동작이다. 가장 먼저 배우는 동작이기도 하다." 

- 이밖에 드러내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는가?
"시계가 나오는 부분이다. 두 사람을 동일한 인물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우리는 하나의 벽이나 관문을 넘으면서 성장하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장애물이 생겨난다. 낙하하는 과정 안에서 과거의 본인을 기다리면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소제목에서 여자 무용수가 했던 것처럼 추락하거나 낙하는 모습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펜싱 무용 모든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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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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