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용(왼쪽)은 튤튤린을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여유 있게 1라운드 서브미션 승리를 따냈다.
UFC
동양인이 적응하기 쉽지 않은 UFC 미들급
UFC 미들급은 84kg 이하로 체중을 맞춰 경기를 치르지만 이들은 대부분 평소 90kg 이상의 체중을 가진 '거구'들이다. 라이트헤비급에서 체급을 내렸거나 경기를 앞두고 감량 폭이 큰 선수들은 평소 체중이 100kg을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종합격투기에서는 흔히 미들급부터 중량급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근력이 떨어지는 동양인 파이터들은 미들급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UFC에서만 14승을 거두며 아시아 파이터 중 UFC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썬더' 오카미 유신은 14승 중 13승을 미들급에서 기록하며 역대 가장 성공한 동양인 미들급 파이터로 꼽힌다. 화려함은 다소 떨어지지만 특유의 끈끈한 경기 스타일로 지난 2011년 8월에는 당사 '무적의 챔피언'으로 불리던 앤더슨 실바와 타이틀전을 치르기도 했다(하지만 일방적인 경기 끝에 2라운드 KO로 패했다).
지난 2009년에는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그랑프리 우승 등 일본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미들급으로 UFC에 도전장을 던졌다. 옥타곤 데뷔전이었던 UFC100에서 앨런 벨처를 상대로 명승부 끝에 2-1 판정승을 거두며 보너스를 받을 때만 해도 추성훈의 미들급 성공확률을 높게 보는 격투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벨처전 승리는 UFC 미들급에서 거둔 추성훈의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가 되고 말았다.
UFC116대회에서 크리스 리벤을 상대로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 가다가 경기 종료 20초를 남기고 트라이앵글초크에 걸리며 서브미션패를 당한 추성훈은 3개월 후 UFC120 대회에서 영국의 마이클 비스핑에게 판정으로 패했다. 2011년 8월 UFC 133대회에서 비토 벨포트를 상대로 경기시작 1분 52초 만에 KO로 패한 추성훈은 1승 후 3연패에 빠졌고 2012년 2월 제이크 실즈와의 경기부터 웰터급으로 체급을 내렸다.
한국인 파이터 중에서 최초로 미들급으로 활약했던 '황소' 양동이는 UFC에서 거둔 두 번의 승리를 모두 KO로 장식하면서 미들급에서 한국인 파이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체력과 경기운영에서 약점을 드러낸 양동이는 세 번의 판정패 끝에 UFC에서 2승 3패의 아쉬운 성적을 남긴 채 2015년을 끝으로 UFC 를 떠났다. 따라서 박준용은 양동이 이후 약 4년 만에 등장한 UFC의 한국인 미들급 파이터다.
'1029 참사' 추모 위해 세리머니 자제하는 파이터
학창시절 수영선수로 활약하다가 군 전역 후 종합격투기를 시작한 박준용은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의 중소단체에서 10승 3패의 전적을 쌓다가 중국에서 열린 UFN157대회를 앞두고 UFC와 계약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아시아 격투팬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구색맞추기용' 영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박준용은 옥타곤 데뷔전에서 앤서니 에르난데스에게 2라운드 서브미션으로 패했다.
하지만 박준용은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키며 마크-안드레 바리올트와 존 필립스, 타폰 은추키를 연속 판정승으로 꺾으며 3연승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특히 당시만 해도 5전 전승을 자랑하던 카메론 출신의 은추키를 꺾은 후에는 인터뷰를 하던 다니엘 코미어의 영상을 보며 복싱을 배웠다는 재치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박준용은 2021년 10월 그레고리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첫 KO패를 당했지만 화끈한 경기로 보너스를 받았다.
2022년 5월 에릭 앤더스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 박준용은 그해 10월 30일 조셉 홉즈를 상대로 UFC 진출 후 7경기 만에 첫 서브미션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박준용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첫 서브미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긴커녕 흥분한 코너를 향해 감정표현을 자제해 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경기가 열리기 전날인 10월 29일은 고국인 한국에서 비극적인 '1029참사'가 일어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로드 투 UFC 대회에서 만난 러시아의 데니스 튤튤린 역시 박준용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박준용은 경기 초반부터 하단태클에 이은 테이크다운으로 상위포지션을 잡은 후 팔꿈치 공격과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가볍게 경기를 끝냈다. 기절한 튤튤린을 걱정하며 이번에도 세리머니를 자제한 박준용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다음에 싸우고 싶은 상대로 2018년에 은퇴한 인터뷰이 마이클 비스핑을 콜하며 비스핑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스턴건' 김동현과 '코리안 좀비' 정찬성으로 이어져 온 한국인 UFC 간판 파이터 계보는 최두호의 부진과 긴 공백, 정다운의 다소 더딘 성장 때문에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경쟁이 쉽지 않은 미들급에서 활약하면서도 최근 2연속 피니시 승리를 포함해 UFC 데뷔 후 8경기에서 6승을 따냈고 해외에서 경기를 하면서도 고국의 상황을 잊지 않는 '개념'까지 갖춘 박준용은 한국의 새로운 UFC 간판 파이터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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