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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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가 25년 만에 전하는 메시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또 다른 연출적 특징은 빈번한 플래시백의 사용이다. 경기에 몰입하려면 나오는 플래시백 때문에 영화의 리듬이 깨진다는 비판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존재 자체가 플래시백이다. 처음 <슬램덩크>를 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관객은 <슬램덩크>와 함께 성장했다. 묵음 처리된 대사를 따라 하는 건 일도 아니다. 많은 관객은 다음에 어떤 선수가 패스를 받을지, 어떻게 골을 넣을지, 벤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지만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해하며 북산을 응원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감동은 단순히 애니메이션화된 적 없는 산왕공고전을 그려낸 게 아니다. 인생의 어떤 고비마다 <슬램덩크>에서 사용된 명언들에 자신을 덧입힌 기억과 경험이 플래시백처럼 함께 재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상평의 대다수는 <슬램덩크>를 처음 읽었던 당시의 상황과 그에 담긴 추억을 함께 써 내려간다. 그리고 이 고백은 대체로 영화에 대한 평가보다 더 길다.
강백호의 일본 이름은 벚꽃과 꽃이 지는 거리라는 뜻이 '사쿠라기 하나미치'다. 4개월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을 불태워 농구 풋내기에서 바스켓맨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만개한 벚꽃 같은 화려함과 꽃이 진 거리 같은 서정이 공존한다. 모두가 지나온 학창 시절의 뜨거움과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처럼.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다. 이노우에 작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연재할 때 나는 20대였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관점에서 더 잘 그릴 수 있었고, 그것밖에 몰랐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시야가 넓어졌고 그리고 싶은 범위도 넓어졌다(...) 원작에서 그린 가치관은 굉장히 심플한 것이지만, 지금의 나 자신이 관련된 이상, 원작을 그리고 난 후에 알게 된 것 '가치관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있어도 그 사람 나름의 답이 있다면 괜찮다'라는 관점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송태섭의 일본 이름은 궁궐의 용감한 사나이라는 뜻의 '미야기 료타'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현재의 자신보다 커다란 벽과 부딪혀온 송태섭을 성장시킨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뚫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처럼.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서사가 강조된 이유도, 그깟 공놀이에 다시 열광하고 감동하는 까닭도. 25년간 각자의 가치관으로 벽을 뚫으며 어느덧 어른이 된 우리의 세월이 담겨있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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