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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에게 닥친 지난 두 세기 동안의 재앙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새를 사랑한 화가>

23.01.22 09:44최종업데이트23.01.2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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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자연환경 다큐멘터리를 초월한 작업
 
처음엔 제목의 주인공인 조류 학자이자 화가였던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과 그의 대표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에 올라오곤 하는 <북미의 새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라 생각했다. 국내에는 무려 4권에 달하는 해당 서적의 축약판이 나와 있을 뿐이지만 알음알음 그 명성은 알려져 있는지라 꽤 근사한 눈요기는 보장하리란 기대감을 품었다.
 
물론 <새를 사랑한 화가>는 제임스 오듀본과 그의 대표작인 <북미의 새들>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영화 내내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완성한 새들의 세밀화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스미스소니언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인 예술가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데다 본인의 이름을 딴 자연보호단체와 동물원, 주립공원이 존재하며 연방정부 우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삽화 주인공을 찬탄하는 내용일 거라는 안일한 호기심과는 꽤 동떨어져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거대한 중공업단지의 전경이 인근 습지와 강 유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그와 함께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그 시각적인 풍경과는 전혀 별개의 내용을 들려준다. 원시 그대로 간직한 자연환경에 대한 헌사가 귓가에 맴돈다. 이 괴이한 부조화는 대체 무엇일까. 답은 곧 확인할 수 있다. 약 200년의 시차로 동일한 지역을 언급한 것이다. 오듀본이 감탄했던 미시시피 강 유역이 두 세기가 지난 후 맞이한 변화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태도가 읽히는 순간이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책, "북미의 새들" 탄생과정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제임스 오듀본은 프랑스인이었지만 1803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미국 남서부 루이지애나 지역이 미국에 할양되자 미국으로 귀화한다. '장 자크'에서 후세에 알려진 '존 제임스'로 개명하면서 거의 평생 아직 오지에 가깝던 광활한 미시시피 유역을 직접 탐험하며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가 1827년부터 1838년까지 작업한 신대륙의 온갖 새들이 "북미의 새들"로 알려지게 된다. 수십 년간의 탐험과 작업 동안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오듀본은 부잣집 자녀들에게 미술과외를 해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새에 미쳐 살았다고 전한다.
 
그는 세밀화를 작업하기 위해 가능한 새들의 생태를 그림 속 배경으로 새겨 넣었다. 기존의 새 삽화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집중했지만 오듀본은 자연계의 일부로서 새를 포착했기에 그저 보기에 근사한 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장기간의 답사와 현지 사정 이해는 필수였다. 그는 아직 치안도 확립되지 않은 오지를 누비며 원주민들과 교분을 다지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도움을 받고 정보를 교환해 새의 서식지와 생태까지 기록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그의 <북미의 새들>은 단순한 도록을 초과해 현대적인 자연동물도감의 기념비적 효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듀본의 역작이 아니었다면 영영 후대의 우리는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었을 새들이 있다. 멸종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말이다. 오듀본의 책에 수록된 종 중 인간 때문에 멸종한 대표사례는 바로 '여객 비둘기' (여행 비둘기)로 알려진 종이다. 오듀본이 19세기 중반에 이 새를 그릴 때 북미대륙엔 50억 마리로 추산되는 개체가 서식하던 중이었다. 오듀본은 거대한 여객 비둘기 집단이 이동하는 장관을 몇 날 며칠간 하늘이 온통 새카맣게 뒤덮이던 순간으로 묘사할 정도였다. 당시 지구상의 전 인구가 10억 남짓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오듀본이 기록을 남긴 시절에서 불과 한 세대가 지난 1870-1890년 사이에 이 거대한 종은 순식간에 쇠락을 겪는다. 개체가 너무나 많기에 그냥 하늘에 대고 마구잡이로 쏴대기만 해도 몇 마리씩 맞고 떨어질 만큼 사냥하기도 쉬웠고, 이름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던 종이라 가슴살이 유독 발달한 특성 때문에 식용으로 유용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서부개척 과정에서 응당 발생한 서식지 파괴의 영향으로 이 불운한 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의 거대한 무리를 직접 목격했던 이들은 소수의 염려를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객 비둘기는 수천마리 이상 대집단을 이룰 때에만 번식이 가능한 특성을 지녔고 그 때문에 이들 무리가 수백으로 줄어들자 더 빨리 사멸해버렸다. 야생에선 1901년 마지막으로 목격되고 최후의 생존개체 '마사'가 1914년 동물원에서 최후를 맞으며 여객 비둘기는 멸종을 맞이한다.
 
재앙을 맞이한 건 여객 비둘기만이 아니다. 캐롤라이나 앵무와 상어부리 딱따구리 등 오듀본의 책에 등장한 조류 중 6종이 공식적으로 멸종으로 처리된 상태다. 다큐멘터리 전반부는 그렇게 불행한 운명을 맞이한 새들의 멸종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는데 할애된다. 어떤 종은 서식환경 파괴로, 어떤 종은 다친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몰려드는 습성 때문에 사멸해갔다. 캐롤라이나 앵무는 자신들의 서식지에 백인들이 과수원을 차리자 자기들의 터전임을 과시하듯 떠나지 않고 과일을 서리했고, 무리 중 하나가 과수원 주인에게 희생당해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이 고집 센 앵무는 최후의 한 마리까지 꼿꼿이 자리를 지킨 채 스러져갔다.
 
상어부리 딱따구리는 오듀본의 시대에도 흔한 종이 아니었던 터라 19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된 줄 알았지만 10년에 한 번꼴로 불쑥 목격되곤 하는 기이한 종이다. 1935년에 발견되었을 당시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넬 대학교 조사팀에 의해 이 희귀종의 울음소리가 녹음되었지만 여전히 해당 종의 존재여부는 미궁 속에 남아 있다. 2021년에 멸종판정을 최종적으로 받았지만 2022년에는 목격담이 들려오는 식이다.
 
'종'을 뛰어넘어 북미대륙 멸종과 파괴의 역사 재현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그런데 이런 멸종의 역사가 자연생태에 무지하던 지난 세기에 끝난 게 아니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영화는 오듀본이 목격하고 경탄해 기록했던 잃어버린 낙원의 파괴된 현재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데에는 내레이터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자와 원주민의 후예들이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오듀본의 계승자들인 셈이다. 특히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자손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세기를 거슬러 자신들의 선조를 대변하는 것 마냥 이야기를 풀어낸다.
 
광활했던 미시시피 강 유역은 그냥 지나치면 원래 그대로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물리적 공간은 그대로일지 모르지만 그곳을 채우며 생태계의 일부를 구성하던 원주민과 고유종들의 상당수는 사라져버렸다. 이를 감독은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풀어내는데, 오듀본의 삽화에서 출발한 영화인만큼 근·현대 미국 회화를 통해 설명하는 식이다. 즉 오듀본의 그림에서 주인공인 새가 사라진 자리에 배경만 남았다는 투의 표현으로 풀어내는데 이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그 땅의 원래 주인이 누구였나에 대한 질문과 환기인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난과 백인들의 침략 역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미국의 서부정복 역사가 개괄된다. '프런티어 정신'으로 포장된 서부개척의 사상적 기반과 역사적 배경이 서술되기 시작한다. '명백한 운명'이라 후세에 기록된 신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고, 원주민과 자연에 대한 파괴를 어떻게 합리화시켰는지가 설명되는데 기존에 쉽게 접하기 힘든 파격적인 설명이라 역사에 관심 가진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경청할 만하다. 종교적 차별을 피해 신대륙에 상륙해 개척을 시작한 이주민들에게 그 땅은 비좁은 유럽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광활하고 풍요로운 신천지였고, 이주민들은 신이 자신들의 믿음에 화답한 것이라는 종교적 해석에 이른다. 자신들의 눈에는 미개한 이교도에 불과한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게 자신들에게 '명백한 운명'이라는 믿음은 신념화했고, 원주민에게 잔혹하게 대하는 것과 함께 자연 파괴를 정당화하는 데까지 만능인 사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대전제 하에서 영화는 미국 근현대사를 개괄하며 주요 전환점 별로 풀어낸다. 여객 비둘기의 마지막 개체들의 이름은 '조지'와 '마사'였다. 바로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영부인 마사 워싱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영국에서 갓 독립했지만 여전히 동부 해안지대에 잔존하던 영국과 유럽식 귀족적 분위기를 띄던 건국 초기의 사회 분위기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재임기간(1829-1837)을 거치며 영국과 분리된 '대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기존의 귀족적 지도자에서 광활한 대자연 속의 미국적 영웅 모델을 선호하게 되는 사회변화는 서부 개척과 자신들의 대의 확신으로 이어진다. 정확히 오듀본이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고 초기 환경보호운동의 시조가 되어간 시기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의 북미대륙 횡단이 시작된다. 남북전쟁의 상흔을 딛고 서부개척(이라 쓰고 침략이라 읽는) 과정이 급속도로 전개된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대륙횡단철도 부설 과정에서 새들은 물론 버팔로 들소도 수난을 맞이한다. 다큐멘터리 내레이터들의 선조인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운명 역시 동일했다. 미시시피 강 지명의 기원이 된 원주민 부족들 역시 무력을 앞세운 연방정부에 의해 강제로 선조들의 땅을 내주고 척박한 보호구역으로 내쫓긴다. 조약을 체결하면서 부족장들은 미국 대통령에게 자연을 소중히 대하라는 조언을 전하지만 제대로 귀담아들은 이는 없었다. 그나마 20세기 초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최초로 국립공원이 지정되고 일정한 자연보호 정책이 시작되어 약간의 안전판이 마련된 정도다. 이런 극적인 정책 대비가 신기할 정도로 짧고 굵게 미국연방정부의 역대 정책기조 해설로 연결된다.
 
재미 대신에 교훈을 남기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세계 속으로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새를 사랑한 화가"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찬란

 
하지만 여전히 19세기 '명백한 운명'을 신봉하던 주류 백인들의 질서는 강고하다. 2010년대에 미시시피 삼각주에 서식하던 야생 닭이 멸종을 맞는다. 미국 유전지대의 1/3을 차지하는 이 지역에서 사업하던 거대 석유자본의 신규개발을 관변 환경단체가 손들어 주면서 일어난, 예방할 수 있었던 종말이다. 물론 이 불행한 멸종은 특정 조류에게만 닥친 게 아니다. 대규모 채굴과 파이프라인 설치 때문에 습지 생태계 전체가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어떤 습지는 메말라버리고 다른 습지는 확장되지만 인위적인 요인이기에 어종이 늘거나 하는 대신에 죽은 땅과 하천만 늘어나는 중이다.
 
또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소개된다.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지역을 초토화시켰던 태풍 카타리나의 여파로 뉴올리언스에 소재한 오듀본 동물원 수족관이 파괴되고 1만 마리의 희귀어류가 죽고 만다. '명백한 운명'을 자신하던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처 입은 자연의 분노처럼 닥친 일이다. 아울러 그런 자연재해 가운데에도 구호와 보상은 원주민과 유색인종에게는 박하다는 비판이 추가된다. 오듀본이 근심했던 때로부터 1세기 반이 넘게 지났음에도 '잃어버린 낙원'이 되어버린 북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한 이주민들의 왜곡된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그로 인한 재앙은 애꿎은 생태계와 비주류 계층에 전가되는 슬픈 현실을 개탄하듯 영화는 흘러간다.
 
너무 비관적으로 치닫는 게 못내 부담스러운지 마지막에 카메라는 오듀본의 발자취들을 되새기려 한다. 뉴욕 어딘가에 오듀본의 그림들을 계승한 벽화들이 한 블록을 채우고 있다. 비록 여전히 너무나 부족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솜씨와 헌신으로 사라져갈 운명의 새들을 필사적으로 남긴 제임스 오듀본의 간절함이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의 호소 같은 풍경이다. 그렇게 통상적인 환경생태 다큐멘터리들과는 제법 궤를 달리하는 내용의 구현이 완성된다.
 
<새를 사랑한 화가>는 오듀본의 책에만 남은 종들의 슬픈 역사가 현재진행형임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두 세기가 지나도 아직 과오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번갈아 교차시킨다. 주제의식이 명확하기에 영화는 대작 자연환경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기대되는 스펙터클한 재미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계몽적이라 느껴질 만큼 영상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물론 제임스 오듀본의 아름다운 기록화가 가득 등장하기에 눈요깃거리가 부족하진 않지만 말이다. 그 아름다운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이들에게 오듀본의 작업 이후 거의 두 세기 동안 펼쳐진 역사와 당대 현실의 풍경은 측은지심과 함께 경각심을 불러오는데 탁월한 교육적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작품정보>
 
새를 사랑한 화가 Birds of America
2021|프랑스|다큐멘터리
2023.01.25. 개봉|84분|전체관람가
감독 자크 루엘
수입 및 배급 찬란
 
2021 5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초청
2021 12회 코펜하겐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
2022 47회 도빌아메리칸영화제 초청
2022 45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 초청
새를 사랑한 화가 자크 루엘 감독 존 제임스 오듀본 북미의 새들 환경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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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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