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환혼: 빛과 그림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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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고대의 모든 무사들이 종교 권력과 연결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당대의 합법적 공인 없이 무력 혹은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하지만 주도권을 잡은 쪽은 공인된 무사들이었다.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인 무사의 존재는 한국사에 등장하는 승군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고려사> 최영 열전에 따르면, 최영 장군은 "당태종이 우리나라를 공격했지만, 우리나라가 승군 3만 명을 출동시켜 그들을 격파했다"라고 언급했다. 당태종의 고구려 침공을 막은 원동력 중 하나가 승군들이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조선상고사>는 "승군은 국선(國仙)의 수하였다"라고 말한다. 승군은 종교 무사단을 이끄는 국선의 지휘를 받았다고 한 뒤 "승군의 내력을 모르면 고구려가 당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원동력 뿐만 아니라, 명림답부가 이끈 혁명군의 중심이나 강감찬이 거란을 격파한 요인을 알 수 없게 된다"면서 "이렇게 되면 고구려·백제·신라로부터 고려까지 천여 년 동안의 군사제도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불경뿐 아니라 무예도 연마하는 승군의 모습은 임진왜란 승병장들의 활약을 통해서도 한국 역사에 각인됐다. 서산대사나 사명대사는 일본군의 침략 앞에서, 살생을 금하는 불교 계율을 초월한 일로 인해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되고 있다.
고대 사회의 무사들이 종교적 배경을 가졌다는 점은 그들의 무력 행사가 사회적 거부감을 덜 초래한 이유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신성한 종교 제단을 지키기 위해 무예를 단련하는 그들의 임무가 살상 행위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트리거나 혹은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정치권력이 주축이 된 국가권력이 무력 행사의 합법성 여하를 결정한다. 군대나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은 정치권력의 승인 때문이다. 이런 공인을 받지 못하면 조폭이나 깡패 혹은 반란단체 등으로 불리게 된다.
고대에는 그런 공인을 종교가 해주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시기에는 국가권력도 해주었지만, 이런 공인의 시초는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종교권력의 승인을 받는 무력 행사는 정치권력의 승인을 받는 무력 행사에 비해 훨씬 잔혹하게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각종 테러가 그것을 웅변한다. 한편, 종교적 배경을 갖는 무력 행사는 여타의 무력 행사에 비해 좀더 신중해지거나 절제되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신체적 제압을 주 업무로 삼는 무사들이 오랫동안 대중의 배척을 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그런 데서도 찾을 수 있다.
<환혼>의 무사들은 종교적 배경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술법을 주된 무기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의 주류적 무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종교적 숭배와 관련된 신성한 행위에 쓰인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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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