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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슬램덩크'를 봤습니다

[리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23.01.06 09:06최종업데이트23.01.0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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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주)NEW
 
이 영화를 접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단 <슬램덩크>는 알고 있었지만 만화책도, TV 만화도 일절 접하지 못한 사람인 나는 그저 무지한 단계였다. 그나마 대중매체에서 패러디하거나, 소재로 쓰일 때, 짤(사진)로 알고 있는 정도였다. 영화 한 편을 놓고 성별을 가르는 게 어이없지만. 남성보다 스포츠에 관심사가 덜 한 여성은 유년 시절 <슬램덩크> 아닌 다른 만화를 선호했다.
 
일단, 주변의 30~40대 이상 남성 관객은 26년 만의 소식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이 나왔다며, 성인이 돼서 다시 보는 명작에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구구절절 간증을 이어갔다.
 
'왜 좋아하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TMI 설명이 되돌아왔다. 스토리, 캐릭터, 그림체 등등. 당시 파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우승까지 하게 되는 관례를 깬 사례라며 흥분했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한계를 넘어 성공하는 기존의 스포츠 장르를 탈피했다고 극찬했다. 우승, 1등, 금메달이란 결과에만 매달리는 승부가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와의 싸움이 포인트란 소리였다.
 
추운 겨울 가슴을 뜨겁게 할 이야기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주)NEW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예습 후 한국 더빙판으로 관람했다. 결과는 대만족. 마지막 10분의 전율은 상당했다. 이 부분은 만화책에서도 대사 없이 정적만 흘렀다는 정보를 들으니 상상력이 커졌다. 늦었지만, 이 아저씨들의 뜨거운 가슴을 조금은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과 연출에 참여해 더욱 의미 있던 경험이 된 거다. 26년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왼손은 거들 뿐", "나에겐 지금이 영광의 시대" 등 유명한 대사의 출처 확인도 할 수 있었다. 그 말이 나오게 된 상황과 의미를 알게 되니, 이제 대화에서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애니메이션 거장의 그림체와 다른 점도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칼로 그릴 듯, 베일 듯한 날카로움 속에 단단한 부드러움이 인상적이었다. 원작의 2D 그림에 3D CG 파스텔톤 애니메이션이 결합되어 묘했다. 흥분의 도가니인 경기장의 활력과 캐릭터의 피땀 눈물 질감과 표정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125분 중 단연코 백미는 결말 전 10분에 몰아주기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극장에 침 삼키는 소리와 작은 탄성만 있었으니 말이다.
 
원작 몰라도 즐거움 커, 안 봤으면 어쩔 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주)NEW
 
영화는 원작의 마지막 경기였던 북산고와 산왕고의 승부를 가리는 경기를 기초로 한다. 원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그대로 두고 영화버전으로 서사를 압축했다. 송태섭과 다른 캐릭터의 과거 회상 장면과 교차 편집되는 구조다. 원작의 웃음 포인트는 거의 없애고 진지하게 임했다. 강백호가 주인공이었던 원작의 조연 송태섭을 전면으로 내세워 전사를 길게 다루었다.
 
문제아로만 낙인 찍혀있던 송태섭의 아픈 가족사를 통해 누군가는 위로받고 성장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삶의 버팀목이자 소울메이트였던 형까지 쌍끌이로 세상을 떠나 괴로웠던 송태섭. 삼남매 중 둘째로 끼여 있던 열등감과 형을 향한 존경, 형만한 아우 없다는 주변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어 힘들었던 과거를 딛고, 키 작은 넘버 원 가드 송태섭 자신으로 우뚝 서게 된다.
 
잘 몰랐던 캐릭터지만 처음 보는 관객마저도 집중하게 만드는 촘촘한 이야기는 뭉클했고 가슴 벅찼다. 원작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시선, 통찰력이 느껴졌다. 최고의 팀과 벌이는 경기 장면은 보는 내내 도파민을 내뿜게 한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 있는 듯 흥분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라고는 하나, 왜 좋은 것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회자되어 입에 오르내리는지 실감케했다.
 
평일 오후 시간대였지만 극장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1990년대와 2000년에 유년기를 보낸 남성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젊은 여성 관객도 다수 있어 놀라웠고 아이와 함께 온 아빠도 여럿 있었다. 문화도 유행처럼 돌고 돌아, 나와 다음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뭉클해졌다. 좋은 것은 나만 알고 있기보다 너도 알았으면 좋겠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교감하면서 더 좋아지는 팬덤 현상까지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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