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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드레스 사기 위해 무작정 파리로 간 청소부

[리뷰] 영화 <미시스 해리스, 파리에 가다>

22.12.15 13:21최종업데이트22.12.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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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SNS상에서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명품' 가방을 올리는 진풍경을 목격하곤 한다. 프로포즈를 할 때 반지와 함께 명품 가방을 선사하는 게 일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풍습이라나 뭐라나, 직장을 다닌 여성이 자신에게 준 첫 선물이 명품 가방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명품이 누구나 살 수 있는 품목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57년 해리스 아줌마가 청소부로 일하던 시절만 해도 명품은 '자작'이니, '후작'이니 하는 이들만의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옷)였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유플러스 tv
 

명품 드레스 사러 파리에 간다?

영국의 청소부 아줌마가 명품 드레스를 사러 파리에 간다고? 하지만, 막상 영화의 속내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때는 바야흐로 1957년 런던, 해리스 아줌마는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2차 대전이 끝난 지가 언젠데, '남편이 무뚝뚝해서 편지도 안 쓴다'며 해리스 아줌마는 여전히 종무소식인 남편은 기다린다. 그리곤 생계를 위해 이 집 저 집 청소부 일을 하러 다닌다. 명품 드레스를 사들이면서 해리슨 아줌마의 급료는 밥 먹듯이 떼어먹는 집, 청소부 일이 만만치 않다. 

오래 전 영화 <애수>가 떠오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가 여주인공이었던 영화이다. 그 영화에서 그녀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전쟁터로 간 남편(로버트 테일러 분)을 기다린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의 전사 소식,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녀는 거리의 여자가 되고 만다. 1940년대 대표적인 로맨틱 영화였던 <애수>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여성이 홀로 생계를 꾸리기란 녹록지 않았다.  

해리스 아줌마도 오랜 시간 남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그의 실종 소식과 함께 전사로 처리한다는 황망한 결과였다. 사실 현실에서 달라질 건 없었다. 아니, 달라질 게 있었다. 오래 전 남편이 실종된 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녀가 그 세월만큼 쌓인 '미망인 연금'을 수령하게 되었기 때문. 그녀는 그 돈을 들고 파리로 간다. 그녀의 '꿈'이었던 크리스찬 디올 드레스를 사기 위해서.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유플러스 tv
 

드레스 값 500파운드

급료도 제대로 안주는 부잣집 부인이 사서 의자 위에 걸쳐놓은 디올이라는 레테르(letter)가 붙은 오픈 숄더 드레스를 본 해리스 아줌마는 첫 눈에 옷에 반하고 만다. 

드레스 값인 대망의 500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급료조차도 제대로 받기 힘들던 당시에 500파운드의 고지는 요원했다. 축구 복권에 당첨돼 100 파운드 넘게 모았나 싶더니, 집 수도를 고쳐야 했다. 모이는가 싶으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돈. 우연히 그레이 하운드 경주를 보러 간 그녀는 홀린 듯이 전재신이다시피한 100 파운드를 '오트 쿠튀르'라는 이름의 개에게 건다. 

운명의 계시는 개뿔, 당연히 그녀는 100파운드 전액을 잃고 만다. 그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일구어오던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고 드러누워 버린다. 

해리스 아줌마의 디올 드레스처럼, 꿈은 누군가를 들뜨게 하지만, 때론 그 꿈으로 인해 불가능한 도전을 하게 되고, 그래서 넘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꿈을 꾸지 말라고도 한다. 그런데 영화는, 그 말도 안되는 꿈이, 고단한 삶을 살던 해리스 아줌마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보여준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유플러스 tv
 

디올 드레스가 해리스를 변화시켰다

물론 수령되지 않은 미망인 연금 500파운드가 낙담한 그녀를 구한다. 그리고 해리스 아줌마는 단 하루의 휴가를 얻어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디올  매장에 가서 드레스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어디 디올 매장이 녹록하게 런던의 청소부 아줌마에게 드레스를 판매하겠는가. 이자벨 위페르가 분한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 그녀를 쫓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영화답게 그녀를 구해 준 멋진 파리의 신사 덕에 고객 전용 패션쇼도 구경하고, 드레스도 구입하게 된다. 그런데 '오트 쿠튀르' 방식의 드레스 주문 제작에는 시간이 필요하단다. 덕분에 해리스 아줌마의 판타스틱한 파리 여행이 시작된다. 

멋진 남자와의 데이트, 모든 직원들이 찬사를 보내는 가봉 작업, 잠시 꿈이 이루어지는가 싶었는데, 여전히 현실은 역시 현실이다. 드레스마저 날아가게 생겼다. 런던 노동자 계급 아줌마의 로맨틱한 인생역전인가 싶더니, 영화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미시즈 해리스 , 파리에 가다
미시즈 해리스 , 파리에 가다 유플러스 tv
 

파리는 연일 청소 노동자들의 시위로 온통 쓰레기 투성이다. 쓰레기 투성이의 거리는 역시나 청소 노동자인 해리스 아줌자의 존재론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청소 노동자의 파업으로 마비된 도시, 그 속에서도 자신의 명성을 이어가려는 디올, 그런데 사실 그 처지도 만만치 않다.

시대가 바뀌고 더는 고급 고객들의 유치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런던 청소부 아줌마의 현금 500파운드조차 귀한 형편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 조차도 여의치 않자, 일부 직원들을 해고하려 한다. 마침 그 자리에 해리슨 아줌마가 있었고, 아줌마는 당당하게 직원들과 함께 디올 사장실로 쳐들어 간다. 

500파운드를 들고 디올 드레스를 사겠다고 파리까지 온 런던의 아줌마 덕에 일부 극소수 귀족들 비위맞추기에만 전전긍긍했던 디올이 변하게 된다. 영화는 해리스 아줌마의 이야기를 통해 '오트쿠튀르'에서 '프레타 포르테(Ready-to-wear, 즉 사서 바로 입을 수 있는 기성복)로 변화하는 명품의 세대 교체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멋진 파리의 일주일 여정을 끝낸 해리스 아줌마는 런던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급료를 미루려는 부잣집 여성이다. 그럴 때마다 전전긍긍했던 해리스 아줌마는 이번엔 다른 결정을 한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여주인공 레슬리 멘빌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청소노동자 여성의 자각과 성장을 맛깔나게 만들어 낸 영화적 서사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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