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 스틸 이미지.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도 제한된 시간 내에서도 김대건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탄생>의 결과물은 더욱 안타깝다. 사실 그 당시 김대건 신부는 단순한 종교인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조선 사람이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세상을 먼저 목격한 선구자였다.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통역가로 활동했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 조정이 체포부터 처형까지 3개월이나 지체할 정도로 아까워했던 지식인이었다.
영화도 '지식인 김대건'의 면모를 강조하려 한다.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자신이 보고 배운 내용을 어떻게 '조선인'으로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김대건의 내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당시 시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다. 영화는 아편 전쟁을 겪으며 무너지는 청나라의 현실과 중화 질서가 무너졌는데도 여전히 바다 밖 세상에 무감각한 조선의 실상을 대조한다. 또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영국이 견제하는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조선에 야욕을 뻗쳤던 시대상도 꼬집는다.
단순히 시대적 배경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김대건의 구체적인 행적을 묘사하며 재해석에 힘을 더하기도 한다. 그는 조선에서 평화적인 포교와 교역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며 프랑스 군을 설득한다. 프랑스 군의 힘을 빌린다면 천주교 신부라는 지위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조선인으로서 조국과 프랑스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걸 더 우선한 것이다. 그와 상하이 주재 영국 영사와의 대담도 인상적이다. 김대건은 대담이 끝난 후 조선이 머지않아 서양 국가들의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레이트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조선의 지정학적 가치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영국 측이 이미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대건의 모습은 분명 '최초의 사제'로 고정된 이미지를 뒤흔드는 신선한 해석이다.
하지만 <탄생>은 끝내 전통적인 일대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만 봐도 이 작품이 결국에는 종교적 영화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 때문에 김대건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 시도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김대건의 모험가이자 근대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빛나는데, 마지막 순간 조선의 첫 신부이자 순교자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회귀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신부 김대건이 아니라 조선인 김대건을 다루려는 시도는 그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셈이다.
오히려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재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결말까지 종교적 색채를 빼지 않은 결과 한 작품으로서의 구심점마저 약해진 까닭이다. 이처럼 매력적인 재해석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가능성도 보여줬지만, <탄생>은 결국 평범하고 뻔한 종교인의 전기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스스로 잠재우고 만다.
물론 한국 천주교 교회가 볼 때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영화화하는 작업은 충분히 매력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2021년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기도 했고, 이를 기념하는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세워지기로 결정된 사실이 공표되기도 했다. 또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최소한 이름은 한 번 정도 접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니 관심을 받기에도 적합했을 것이고, 기존 사극 영화에 자주 등장한 인물도 아니므로 신선한 시도인 것은 맞다.
다만 의도와 목적을 담아낼 그릇을 잘못 고른 선택이 뼈아프다. 사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는 워낙 스케일도 크고 공간적 배경도 다양한 만큼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만들기 적합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러닝타임의 한계가 뚜렷한 영화를 그릇으로 골랐을 때는 보다 도전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이 필요했다. 특정 순간이나 사건에 집중해 김대건 신부의 몇몇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시도가 더 적절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부제 신분으로 조선에 입국한 직후부터 체포되어 순교하는 날까지만 다루더라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김대건의 참모습 대부분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루한 위인전, <탄생>의 만듦새가 끝내 아쉬운 이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