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에서의 승리2018년 독일월드컵의 마지막 경기가 카잔에서 있었고, 우리가 최강 독일을 2대 0으로 물리쳤습니다. 벌써 까마득해졌지만, 뿌듯한 기억입니다.
이창희
사실, 월드컵 원정에서 승리의 환희에 대한 경험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의 원정 직관을 되돌려 보더라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직관하지 않았으니,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이렇게 딱 두 번의 승리만 허락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승리의 환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과하며 예열된 감정은 열두 번째 선수로서 골대 뒤에 서는 순간, 확률이나 통계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채워진다.
이런 상태로 월드컵에 왔으니, 그렇게 어렵다는 월드컵에서의 1승을 당연한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말이다. 통계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상태. 어쩌면 서포터가 되어 서는 순간의 솔직한 내 마음이다. 이미 냉정 따위는 기대할 수 없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러니, 목소리를 잃은 엉망진창의 몸이 되어서도 현실은 애써 부정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경기를 마치고 셔틀버스로 돌아온 수끄 와키프의 광장은 전 세계의 축구팬들로 가득했다. 어떻게든 환호의 한가운데를 피해 가고 싶지만, 이미 공간을 가득 채운 환희는 피할 방법이 없다.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인파로 가득한 광장을 조심스럽게 피해서 숙소에 들어왔지만, 잃어버린 목소리가 기억하는 어제의 감정은 앞으로 얼마간은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을 거다. 목소리가 돌아올 때쯤엔 잊혀져 있을까? 여행은 계속되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