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경기도 하남에서 진행된 KBS1 <전국노래자랑> 한 장면.
KBS1
모든 맥락을 소거하고 본다면, 이찬혁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나 새 앨범 'ERROR'의 콘셉트를 생각하면 퍼즐이 짜 맞춰진다. 앨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죽음'이다. 케이팝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주제다. 첫곡 '목격담'에서 이찬혁이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파노라마'와 'Time! Stop!'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노래한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노래 '장례희망'과 함께 앨범이 마무리된다. 그는 위켄드(The Weeknd)의 신스웨이브부터 어쿠스틱 팝까지, 다양한 음악을 경유하는 한편, 죽음을 다룬 가사와 함께 내면의 혼란을 표현한다. 자신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고 상정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반추하기도 한다. 'A DAY'와 '부재중 전화'가 그렇다. 내일 죽음이 찾아온다면, 혹은 죽은 '나'를 목도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노래와 기행은 오히려 청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 '장례희망' 중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감독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2022)의 등장인물들은 이따금 개연성 없는 괴이한 행동을 한다. 종이로 손가락을 베는 것부터, 자신을 위협하는 악당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것은 약과다.
개연성이 없는 행동을 할수록 우주에 균열이 생기고, 다른 우주에 사는 자신과 연결되는 '버스 점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버스 점프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사는 우주에는 없는 새로운 능력을 얻는다. 이찬혁의 괴이한 행동이 오히려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에겐 설명할 의무가 없다
호주 출신의 가수 시아(SiA)는 10년 넘게 가발로 얼굴을 가린 채 노래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어떤 대중 가수도 그와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낯선 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찬혁이 하고 싶은 것 그만 해라', 'GD병을 넘어서 중2병이다', '예술병에 심하게 걸렸다'와 같은 반응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침묵→삭발 역조공"…이찬혁, 표현의 자유인가 GD병인가
이러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에는 언론의 지분 역시 크다. 10월 25일 한 언론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이찬혁의 기행은 예술일까. GD병의 발현일까. 중요한 것은 어떠한 퍼포먼스나 무대도 배려와 예의 없이는 지탄받는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중2병'이나 GD병' 같은 단어는 모든 해석과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납작하게 누른다.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어떤 무대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배려와 예의란 누구를 위한 개념인가. 아티스트 이찬혁에게는 무대 안팎의 행동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 해석은 대중의 몫으로 남겨 놓아도 충분하다. 직관적이며 친절한 무대는 이미 많이 보아 왔다. 조금 다른 무대, 더 낯선 콘셉트가 더욱 받아들여질 때, 우리 가요계의 다양성도 더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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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