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스틸
부산국제영화제
엄마의 기억을 마주하는 세 딸들의 입장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는 글감을 핑계로 일기장 같은 옛 물건들을 버리기 싫어한다. 엄마는 냉장고든 수납장이든 버리지 못하고 꽉꽉 채워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엄마의 습관을 제일 싫어하는 것도 둘째요, 기억을 잃는 엄마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둘째 혜영이다.
첫째가 시큰둥한 건 실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다. 오로지 당면한 미래가 고민인 막내는 아직 그런 가족의 갈등이 체감되지 않는다. 서울에 가기 위한 막내의 철없는 행동이 쌓여왔던 네 모녀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제목에서 알수있듯, 엄마의 과거 기억은 결국 역사적 상흔과 결부돼 있고, 결과적으로 부산 그리고 영도라는 지역성과 단단히 결부돼 있다. 역사의 문제가 지역의 문제로, 다시 세대의 문제이자 소통의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체는 세 딸들이다. 그 기억을 네 모녀가 함께 찾아 나설 때 <교토에서 온 편지>는 관객들에게 어떤 안도감과 위로를 건네 준다. 갑갑하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상에서 어떤 돌파구를 내고 가족과 나를 함께 보듬으려는 어떤 시도를 마주하는 일은 분명 감동적이다.
한편의 장편 소설 같다는 표현을 쓴 건 그래서다. 소소한 듯 결코 소소하지 않은 서사와 그 서사 속 다층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들을 섬세하고 균형감 있게 잡아내는 재현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 같다는 표현이 꼭 '영화적이다'의 반대말이 아닌 것처럼. 단정하게 정돈된 서사 안에서 인물들의 반경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 자체로 영화적 재미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 한채아나 한선화처럼 부산 출신 배우들이 선사하는 캐릭터들의 부산 방언 연기는 그 자체로 여성들의 시선과 입장에 밀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에서조차 흔치 않은 장면들이다.
티빙 웹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로 연기력을 발산한 한선화의 차분한 연기도 일품이고, 만만치 않은 역할을 소화한 엄마 역의 차미경 역시 녹록지 않은 연기력을 자랑한다. 후반부, 두 모녀가 마주하는 장면과 연기는 이 장편소설 같은 여성서사의 결말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