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크랭크업필름 외
아이가 죽었다. 아무도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 부모조차 아이가 겪은 현실을 까맣게 몰랐다. 학교는 취업률에 목을 맸고, 교육청은 아이들을 숫자로만 취급했다. 경찰은 내부고발을 덮었고, 회사는 도리어 자신들이 피해자라 우긴다. 일말의 죄책감은 느낄지언정 그 누구도 책임감을 발휘하는 어른이 없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였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세계다.
<도희야>에서 가정 폭력의 피해 소녀를 보듬었던 파출소장이 <다음 소희>에서 사무직에서 현장으로 배정 받은 여성 형사 팀장이 됐다. 배두나가 연기한 유진이다. 같은 연습실에서 댄스 연습을 했으나 소희를 몰라봤던 유진은 사건의 진상을 부던히도 파헤친다. 소희의 주변을 조사하면 할수록 울분과 자괴감, 무력감이 더해진다.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를 죽였으나 그 아이는 '문제 학생'으로 찍혀 있을 뿐이었다.
정주리 감독은 전반부 '소희의 세계'를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포착했다. 너무나도 거대하게 부조리한 현실을 겪는 19살의 버거움에 한 뼘이라도 더 가고자하는 형식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카메라가 담임 교사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는 소희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아낼 때, <다음 소희>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고 제대로 응시하겠다는 결기를 보여준다.
유진이 쫓는 '어른들의 세계'는 비정하고 냉정하다. 흔들리는 카메라 대신 고정된 화면이 지배한다. 그 비정하고 냉정한 세계에 대응하고 재처하기 위해선 유진도, 관객도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할 일이 많지 않다. 견고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건 일개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시스템은 이미 위법과 탈법, 불법이 일상화되고 그 일상이 법망 위에 선 세계다. 유진에게 "수사 다음은 뭐냐"라고 되묻는 뻔뻔한 세계다.
<다음 소희>는 소희 옆에 또다른 소희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공장으로, 택배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친구들이다. 또 소희를 잃은 충격에 급성 알코올 중독에 걸린 BJ 친구가 그들이다.
형사가 아닌 어른으로서 유진이 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다. 그 BJ 친구를 병원에 데려다주며 과일을 손에 건네주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소희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으나 일 때문에 달려오지 못했던 친구에게 따뜻한 밥 한끼 사주는 일이다. <다음 소희>는 언제라도 연락하라는 유진에게 그 소희의 친구가 "고맙다"며 흐느끼는 얼굴 역시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어떤 어른이 되시겠습니까. 그 예쁘게 밝고 쾌활하게 춤추던 소희를 잃은 지금, '다음 소희들'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도희야> 이후 8년, <다음 소희>는 더 현실적인 서사와 더 강력한 질문을 탑재한 채 2022년의 세계에 당도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최대 문제작 중 하나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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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