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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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당시 조지프 사이두 모모 시에라리온 2대 대통령은 단 6명의 군인들이 일으킨 쿠데타에 의하여 실각하며 정권이 붕괴된다. 쿠데타 주동자였던 대위 발렌타인 스트라서는 25살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연소 국가 원수가 된다.
하지만 스트라서 군사 정부 역시 이전의 부패한 정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스트라서는 다이아몬드 불법수출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군사업체인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로부터 악명 높은 외국인 용병들을 수입하여 반대파를 탄압하면서 나라의 안보와 평화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데만 급급했다.
당시 정부군 부사령관이었던 줄리어스 마다 비오는 쿠데타를 일으켜 스트라서 정권을 무너뜨리고 1996년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계획을 추진한다. 당시 대통령 선거의 슬로건과 포스터가 '손을 맞잡자'로 국민통합을 의미한 것이었다.
산코가 이끄는 반군은 선거의 슬로건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민간인들이 투표하지 못하도록 집단으로 신체를 절단하거나 훼손하는 끔찍한 테러를 저질렀다.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어서 투표를 포기하게 하려는 극악무도한 전략이었다. 반군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민간인들의 숫자는 2만 7천여 명에 이르렀다. 반군은 사람들의 몸에 투표를 거부한다는 글귀를 문신으로 강제로 새기기도 했다.
또한 반군은 모자란 병력을 채우기 위하여 나이어린 소년병들을 강제로 징집했고, 이들을 민간인들의 신체를 훼손시키는 테러에도 앞장세웠다. 놀랍게도 RUF 병력의 80%가 7~14세의 아동이었고, 이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하여 주입식 사상교육에다가 코카인 등 마약까지 복용시킨 사실이 밝혀져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반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996년 선거는 무사히 치러졌고 내전 이후 첫 민선대통령으로 UN 변호사 출신의 아흐메드 테잔 카바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런데 내전을 방관해오던 UN은 여기서 뼈아픈 실책을 잇달아 저지른다. 황당하게도 반군의 수장인 산코와 협상하여 새로운 정부에 참여시킬 것을 제안한 것. UN의 지원이 절실했던 카바 정권은 어쩔수 없이 산코와 평화협정을 두 번이나 체결하고 테러단체인 RUF까지 합법화시켜줬다.
하지만 산코의 탐욕은 멈추지 않았다. 산코는 다이아몬드 권력을 장악하면서 대통령까지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산코가 다이아몬드 불법수출과 무기밀매 혐의로 체포되자 그를 추종하는 반군이 1999년 1월 보복으로 수도 프리타운에서 정부군을 지지한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하는 '생물절멸작전'을 단행하며 6천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명의 아동이 실종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산코는 한 인터뷰에서 외신기자가 민간인 학살을 추궁하자 "당신 이름이 뭐냐, 우리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위협했고 협정에 따라 무장해제를 해야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내가? 전혀"라고 답하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산코의 만행과 UN의 거듭되는 무책임한 조치에 분노한 3만 명의 시에라리온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RUF는 총을 쏘며 무력으로 이들을 진압하려고 했지만 국민들의 저항은 강력했고 산코는 결국 정부군에 의하여 지도부와 함께 체포됐다. 이들은 2000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기소한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을 통하여 대부분 중형을 선고받았다. 시에라리온 내전을 지원한 찰스 테일러도 50년형을 선고 받았다.
다만 산코는 판결을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하며 죗값을 치르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특별법정 수석검찰관 데이비드 크레인은 "수많은 사람에게 비참한 최후를 안겨놓고 정작 자신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며 비판했다.
산코 사후 구심점을 잃은 반군은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카바 대통령은 2002년 비로소 내전이 종식되었다고 선언했다. 당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신체를 훼손당하고 아픔을 겪었던 소년들은 어느새 30대의 성인이 되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전쟁의 아픔과 후유증은 시에라리온인들의 가슴속에 씁쓸한 상흔으로 남아있다.
시에라리온의 비극에서 큰 교훈을 얻은 국제사회는 2003년 '킴벌리 프로세스'를 설립하고 반군의 분쟁자금을 위한 다이아몬드 거래 금지에 합의했다. 시에라리온은 현재 민주적인 선거를 통하여 경제성장과 자원 관리의 부패근절 등 다양한 노력이 진행중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레그 캠벨은 "평화가 자리잡지 않는 한 우리 곁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는 한때 무고한 아프리카인들의 피로 얼룩진 물건이었을 수도 있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혹자는 이를 다이아몬드의 저주라고 하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아수라였다. 다시는 피묻은 다이아몬드가 전 세계에 퍼지지 않도록 전 세계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것은 물론, 시에라리온의 비극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진정한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도 우리가 돌아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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