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뱅크시> 스틸 이미지
(주)마노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YBA의 동력은 소진되고 만다. 그들은 스스로도 자신들은 고갈되어 버렸다며 OAP라 자조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노동당에 대한 기대가 차갑게 식어간다. 대처에게 물려받았던 신자유주의 정책은 큰 틀에서 유지된다. 여기에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침공에 적극적으로 블레어 정부가 참여하게 되면서 노동당을 지지하던 이들 사이에선 환멸이 늘어가던 2000년대 초다. (브리스틀은 전통적인 노동당 초강세 지역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 흐름 아래에서 뱅크시의 작업은 반전-반체제 사회운동과 조응하게 된다. (지금도 뱅크시 작업의 주요 테마는 흔히 '좌파'라 불리는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당대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그의 작업은 점점 더 큰 조명을 받으며 '뱅크시 현상'은 영국을 뛰어넘어 세계적 관심을 얻기 시작한다.
한편 시민대중과 완벽하게 유리되어가던 현대미술에 대한 반발과 공명하게 된 뱅크시와 동료들은 포퓰리즘적 인기를 얻는 것을 기회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한다. 인디 예술가들의 자급자족 프로젝트 형태로 거리예술 판매 프로젝트와 대안적 전시회를 시도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2002년부터 '산타 게토'란 이름으로 파티와 결합된 전시 및 판매행사를 시작한다. 명성에 걸맞게 2003년에는 '터프 워'라는 명칭으로 대규모 단독 전시회를 시작한다. 그리고 스크린 프린트로 자신과 동료들의 작업을 출력해 '픽쳐스 온 월스' 인쇄회사를 설립한다. 이 프린트 작업을 저가에 직접 판매하면서 기존 아트 비즈니스 쇄신을 실험하는 시도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뱅크시의 지명도를 '세계구' 급으로 높이게 된 개화만발의 시간이 찾아온다. 2003년에는 뱅크시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이 펑펑 터지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뉴욕, 런던, 파리 미술관과 디즈니랜드 습격사건, 2005년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 지역에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을 대상으로 삼았던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미술에서 뱅크시의 이름은 부동의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2003년에 벌어진 주류 전시 공간 습격들이 주류 미술계의 상업주의와 대중과의 괴리를 지적하는 거대한 농담에 가까운 것이었다면, 2005년 이후 꾸준히 거듭된 팔레스타인 관련 이벤트는 사회문제에 진지하게 발언하는 예술가로서 그의 명성을 쌓아올리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 관심과 실천은 그저 일회성이 아니다. 2007년 산타 게토 연례 전시회는 베들레헴에서 개최되었고 2015년엔 가자지구 폭격을 고발하는 2분여 단편기록영화를 제작했다.
2017년에는 '월드 오프 호텔' 프로젝트를 가동해 예술가의 사회참여에 한 획을 긋는다. 그저 일회성 그라피티가 아니라 영국이 자행한 식민통치의 역사부터 한 세기에 걸친 제국주의의 그림자와 그 결과물을 실제 숙박시설로 사용되는 건물과 결합시킨 시도다. (심지어 건물 운영은 팔레스타인 현지주민들에 의해 직접 이뤄진다) 그의 이런 면모는 이미 1990년대 멕시코 활동 때부터 현지 사회운동을 목격하며 축적되어온 것이기도 했다.
6_거대한 성공 후 찾아든 아이러니의 시간
2006년에는 영국을 벗어나 LA에서 '거의 합법적이지 않은'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이 이벤트는 기존의 뱅크시와 거리예술이 갖던 정체성을 벗어나 보통의 화제성 전시회가 되어버리고 만다. 유명인과 스타들이 몰려들어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 미디어의 총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전시회 자체 내용보다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커플이 오랜만에 재결합한 장소라는 매스미디어의 가십이 전시회를 침몰시켜버린 것이다.
전시회는 물론 상업적으로 대박이 났지만 거리예술의 미덕, '익명의 무법자가 공공장소에 침범하는' 행위와 온전하게 동떨어지고 만 것이다. 뱅크시와 그를 지지하던 동료들에게 해당 전시 평가는 충격이 컸음이 드러난다. 그만큼 거리예술에서 현장성, 공간적 특징, 대중과의 피드백은 작품과 떼어낼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이 거리예술가들과의 인터뷰에서 거듭 반복된다. 이 지점은 이후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이 갖는 사회적 위치와 파생되는 논란에서 일관되게 집중하는 부분이 되었다.
뱅크시와 그의 동료들은 그렇게나 미술관과 경매회사, 박물관, 자본가 같은 큰손들로부터 독립된 시스템을 수립하고자 애썼는데도 '뱅크시 효과'는 정작 그들이 지양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자들에게 열렬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우스갯소리로 거리예술이 현대미술에 편입되고 주목받게 된 전환점은 데미언 허스트보다 뱅크시 기사가 언론에 더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라는 자조가 뒤따른다. 그런 웃기 힘든 곡절도 따라왔지만, 어쨌든 그를 아이콘으로 삼아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되어 도시의 풍경 일부가 된 그라피티와 거리예술의 영향력은 나날이 거대해진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선거 홍보포스터도 그 영향을 받았을 정도다. 이제 그라피티 문화는 영 아티스트로 통칭되던 현대미술 스타들 이후 청년예술운동의 유의미한 후계로 등극한 것이다.
뱅크시는 이제 자신의 예기치 않은 대성공을 감당하고 응전해야 한다. 특히 그가 주력한 대응은 기존의 판매용 인쇄물이나 오리지널 캔버스와는 별개로 그가 사회적 맥락을 의도해 작업한 벽을 통째로 떼어내 판매하는 문제였다. 그는 '페스트 컨트롤'을 설립해 작가 자신이 인정한 작품 인증서 COA를 발급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미술시장의 허점을 활용한 셈이다. 작가의 인증인 COA가 없다면 상류예술기관에선 굳이 뱅크시의 작업을 고가에 구매할 가치가 없게 된 것이니. 하지만 여전히 뱅크시가 작업하고 간 건물 벽은 '성지' 취급을 받으며 과거엔 지우기 바빴던 신세에서 180도 뒤바뀐 상황이다. 건물주는 실시간 투명 플라스틱으로 벽화를 보호하고 미술상들은 부르는 값에 벽을 통째로 떼어내려 혈안이 되는 건 여전하다.
뱅크시는 드물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거리예술은 그 거리의 것이자 해당 도시에 대한 선물이므로 작품을 거리에서 '훔치는' 행위는 도덕적 범죄라는 입장을 명백히 개진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미술계 억만장자들이 그라피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건 시장의 바닥을 드러내고 갈 데까지 갔다는 하나의 징후 아니겠냐는 진단도 이어진다.
7_거리 아티스트로서의 도전은 계속된다
▲영화 <뱅크시>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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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뱅크시는 작업에 매진한다. 2008년엔 좀 더 거리예술의 본연에 밀착한 형태로 워털루 기차역에서 '칸스 페스티벌'을 열었다. 개인이 아닌 40여 명의 동료 거리예술가와 함께한 작업이다. 2009년에는 오랜만에 고향 브리스틀에서 '뱅크시 vs 브리스틀 박물관' 전시회를 개최한다. 20년 전 앤더슨 작전의 주요 구성원이던 브리스틀 시의회가 (태도를 정반대로 고쳐)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였다. 일종의 '역사의 복수'인 셈이다. 그리고 2015년에는 전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없는 테마파크, '디즈멀랜드' 이벤트가 이어진다.
그 외에도 2010년 그가 직접 연출한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통해 현대 개념미술이 작업의 가치와 무관하게 인플레이션의 극을 달리는 상업화를 비판하면서 일종의 조롱이자 풍자로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노점을 열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이를 통해 미술업계가 작품의 본연적 가치보다는 예술광고가 포장해주는 혜택에 의존한다는 걸 폭로해버린다. 60달러 정가제(!)로 판매된 그의 익명의 작품들은 몇 점 팔리지도 않았지만 지나는 길에 2점을 구매한 뉴질랜드 관광객들은 작품의 가치를 꿰뚫어본 안목 덕분에 훗날 12만 5천달러에 작품을 팔았다는 후일담과 함께.
그런 응전과 반격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뱅크시를 비롯한 거리예술은 주류 예술계의 거대한 중력에 포섭되어 버린 것 아닌가 자책감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상업주의와 패션화, 유명인 홍보 등은 동일하게 거리예술에도 전면적으로 침공을 수행중이다. 런던과 브리스틀에는 뱅크시의 벽화를 따라 투어하는 코스가 성황리에 진행 중이고 정작 작가는 공인하지 않은 전시는 전 세계를 돌며 큰 성공을 거두는 중이다. 뭐가 앞뒤가 바뀌어도 심하게 바뀐 것 같다.
그와 함께 미디어의 '뱅크시 찾기' 광풍은 이어진다. 그는 홍보가 아닌 자기보호를 위해 익명성으로 자신을 감쌌고 대신에 쥐와 원숭이를 거리 곳곳에 새겨 넣었지만, 현대미술의 상업주의는 살아있는 실명의 예술가를 등장시켜야만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뱅크시 주위의 지인들은 뱅크시를 안다. 브리스틀 시민들 중에도 그가 누군지 아는 이들이 허다할 테다. 하지만 상업적 신비주의가 아니라 거리미술의 특성 상 그의 '익명성'은 필수적인 완성요소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는 그런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도시예술에도 잘 짜인 홍보 전략과 대전략 수립 당시 원칙 사수를 위한 방어가 필요해진 시절이다.
※ 이 뱅크시를 찾아내려는 매스미디어의 광풍은 2021년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국내 소개된 <공개수배 뱅크시>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다큐멘터리는 D-box에서 스트리밍 시청이 가능하다.
영화는 다시 2018년 10월 2일 소더비경매장으로 돌아온다. 뱅크시 작품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잘 알려진 작업인, 시민 대중도 구매 가능한 중저가 수준으로 거래되어온 <풍선과 소녀>가 102만 4천 파운드에 낙찰되는 순간이 반복된다. 액자에 내장된 파쇄기가 작동되고 현장의 미술계 인사들이 경악하는 표정들이 클로즈업된다. 하지만 그 카타르시스를 지나면 자막으로 파쇄 후 작품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는 후일담이 표시된다. 영화가 완성된 후 해당 작품은 '사랑은 쓰레기통에'란 새 이름으로 2021년 경매에서 원래 낙찰가의 18배인 1870만 파운드에 팔렸다고 한다.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도시 게릴라들의 시가전은 계속된다.
| <작품정보> |
뱅크시 - 무법예술의 출현
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
2020|영국|스트릿 아트 다큐멘터리
2022.08.11. 개봉|112분|전체관람가
감독 엘리오 에스파나
출연 뱅크시(기록화면), 벤 아인, 스티브 라자리데스, 존 네이션, 펠릭시 'FLX' 브론,
알란 KET, 스케이프 마르티네즈, 켈리 RISK 그라벨
내레이션 마크 홀게이트
뱅크시 목소리(재연) 조지프 프라우스
음악 피트 위츠
번역 김경준
수입 (주)마노엔터테인먼트
배급 (주)마노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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