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 위를 걷다> 스틸 이미지
Orange Studio
마침내 7월, 이 지역에 우기가 돌아왔다.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비라는 존재가 내리기 시작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현실에서 유래한 것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비가 쏟아지는 우기 묘사는 마치 판타지 영화 <듄>의 무대처럼 다가온다. 영화의 주 무대인 모래혹성 '아라키스'에 사는 원주민 프레멘 족은 비라는 존재를 상상 속 산물로 간주하는 사막의 민족이다.(실제로 작가인 프랭크 허버트는 사막 민족 베두인에게서 프레멘의 설정을 가져왔다) 물이 희소해진 마을에 마침내 빗방울이 천둥과 함께 들이친다. 널어놓은 옷가지가 젖고 손볼 틈 없어 비가 새는 집 안이지만 아이들은 그저 웃는다.
이제 부모들이 차례로 돌아온다. 새 옷, 간식, 라디오 같은 선물과 함께. 하지만 의지할 어른들이 돌아왔다는 게 울라이는 제일 기쁘다. 마을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고 아이들은 뛰어논다. 이웃마을 투아레그 족 아이들이 물이 괴인 웅덩이로 와 마을 아이들과 뒤섞여 논다. 그저 천진한 풍경 같지만 수자원 문제는 사막과 초원 지대에서 역사적으로 항상 분쟁의 핵심요인이었다는 것을 제작진은 상기시키려는 듯 비춰진다. (투아레그 족은 사하라 사막 국가들에서 자원 분배와 민족 문제로 내전의 핵심세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이 풍족하니 이렇게 평화롭게 어울리는데 말이다.
다시 10월이 되고 건기가 돌아오면 영화 속 마을주민과 바깥에서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은 이제 하나가 되어버릴 테다. 이제 또 앞으로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다시 도회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소녀 울라이의 눈앞에, 마치 선물을 가져온 신들처럼 대형 공사차량들이 줄지어 등장하기 시작한다. 1년 전에 접수시켰던 청원서가 이제야 회신된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생존을 걱정하며 물을 구하러 다니던 게 발전된 과학기술의 수혜로 순식간에 깊은 지하를 굴착해 우물을 뚫어낸다.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자 마을에는 축제가 열릴 기세다. 그렇게 영화는 마을주민 입장에선 해피엔딩 드라마에 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제목인 <물 위를 걷다>의 의미는 학교 수업 중 교사가 니제르엔 물이 없는 게 아니라 깊은 지하에 많이 있다고 지하대수층에 대해 설명하자 아이 하나가 천진하게 묻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럼 우리는 물 위를 걷는 거네요?" 교사도 미처 생각 못한 답인지 즉답하지 못한다. 교실의 아이들은 도저히 그런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우기가 오고 뒤이어 우물이 개통되자 아이들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 순간 주민들의 행복한 표정은 잊기 힘들다.
하지만 지하대수층의 고갈은 또 다른 재앙의 우려를 낳는다. 비가 없어 관개수로에 의지하던 고대 문명들이 지하수 고갈과 관개시설 파괴로 사라져간 역사는 수두룩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 한 바가지에 저렇게 주민들의 희비가 교차되는 걸 보고 난다면 우물 뚫어주는 사업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심정이 누구나 들 법하다. 기후위기가 빈곤한 3세계에 가져오는 파괴적 위협을 타티스트 마을이 1년간 겪은 생생한 르포 다큐멘터리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물을 물 쓰듯 하는' 게 누군가에겐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깨닫게 될 테다.
3세계 곳곳에서 수자원 부족은 그저 목마름을 넘어 재앙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시리아 내전도 오랜 농경지대의 황폐화로 도시로 몰려든 빈곤층 문제에서 촉발했다는 설이 대두된 지 오래고, 사막화 과정을 겪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내전과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가 확인되는 상황이다. 물 부족 현상이 초래할 디스토피아는 이미 <매드맥스> 시리즈만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인간의 상상력은 결국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상상력이 다시 현실화되는 위험한 시대로 향하는 셈이다.
가뭄이 해소되지 않는데 '흠뻑쇼'가 될 말인가 하는 논쟁에 찬반양론이 불타오르던 한국사회다. 각자의 입장과 논리가 치열하게 격돌하지만 수자원의 낭비는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란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 난다면 당분간 세면대에서 기운차게 수도를 틀어놓긴 힘들지 않을까?
<작품정보> |
물 위를 걷다 Above Water
2020|프랑스|다큐멘터리|89분
감독 아이사 마이가
2022 제19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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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