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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풍 위한 미니 은퇴식, SK 구단의 품격

문경은에서 전태풍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는 SK처럼

22.01.31 11:08최종업데이트22.01.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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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했던 시간은 비록 일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연을 맺었던 '옛 동료'이자 '한국농구의 전설'을 예우하려는 SK 구단의 품격이 농구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지난 1월 3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 원주 DB의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뜻깊은 이벤트가 벌어졌다. 바로 2년전까지 SK에서 활약하다가 은퇴한 전태풍을 위한 미니 은퇴식이었다.
 
미국 출생으로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전태풍은 이승준-이동준 형제, 문태종-문태영 형제 등과 더불어 한국농구에 2010년대 귀화혼혈선수 열풍을 주도한 멤버중 한 명이다. 미국명은 토니 애킨스(Tony Akins)였으나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전태풍으로 개명했다. 2009년 전주 KCC를 통하여 한국프로농구에 진출한 전태풍은 당시 한국농구에서는 보기힘든 화려한 기술과 슈팅을 겸비한 '공격형 포인트가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SK와는 선수 시절 말년인 2019년에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전 소속팀이던 전주 KCC에서 사실상 방출당하며 은퇴 기로에 몰렸던 전태풍은 선수생활 연장을 위하여 당시 문경은 SK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도움을 호소했다. SK는 한국농구를 빛낸 전설의 영예로운 마무리를 위하여 대승적인 차원에서 영입을 결정했다.
 
전태풍은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20시즌 30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3.8득점 1.6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화려했던 전성기에 비하면 출전시간도 영향력도 많이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벤치 '조커'로 고비마다 힘을 보태며 SK가 정규리그 공동 1위로 시즌을 마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전태풍의 '라스트 댄스'는 아쉽게도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하필이면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프로농구가 시즌을 다 마치지 못하고 조기종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전태풍은 SK에서 1년 더 선수생활 연장을 고심했으나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그렇게 전태풍은 팬들과 공식무대에서 작별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코트를 떠나야 했다. 전태풍이 한국농구에 남긴 영향력과 스타성을 감안하면 아쉬운 마무리였다.
 
KBL에서 여러 팀을 거친 전태풍이지만 아무래도 전성기를 보낸 'KCC맨'의 이미지가 가장 강했다. 하지만 KCC에서는 팀을 떠나는 과정이 그리 좋지 못했고, 마지막 팀인 SK에서 뛴 시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어느 구단에서도 먼저 나서서 전태풍의 은퇴식을 추진하기가 애매한 모양새였다. 여기에 몇년째 코로나19 확산세도 여전하여 현장에서 관중들과 함께하는 은퇴식같은 이벤트를 추진하기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SK는 끝까지 전태풍을 잊지 않았다. 은퇴 후 방송활동 등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던 전태풍은 30일 DB와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하여 오랜만에 농구장을 찾았다. SK는 당사자인 전태풍에게도 사전에 소식을 알리지 않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단순한 하프타임 이벤트인줄 알았던 전태풍은 코트 중앙에 불려나와서 전광판에 자신의 현역 시절의 모습이 담긴 특별영상이 공개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SK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앞으로도 당신의 인생을 응원하겠다. 땡큐-리멤버 태풍"이라는 문구로 뒤늦은 은퇴 인사를 전했다.
 
전희철 SK 감독과 주장 최부경은 전태풍의 유니폼과 사진이 담긴 액자와 꽃다발을 각각 선물했고, SK 선수단이 모두 나와 전태풍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전태풍은 SK의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감격을 감추지 못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단촐하게 약식으로 치러진 은퇴식이기는 했지만 무려 1년 6개월 만에 성사된 '농구선수 전태풍의 진짜 고별무대'였다.

SK는 전태풍의 송별식을 자축하듯, 이날 경기에서 원주 DB를 100-84로 대파하며 올 시즌 최다인 10연승을 질주하며 훈훈함이 두배가 됐다. 구단 역대 최다인 11연승 기록에도 어느덧 한 경기 차이로 접근했다.
 
소속팀과 함께 한 시간에 상관없이, 한국농구에 기여한 노장들을 아름답게 떠나보내주는 마무리는 SK만의 전통이기도 하다. SK의 역대 사령탑인 문경은 전 감독이나 전희철 현 감독도 모두 SK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한 바 있다.
 
문경은 감독은 프로농구에서는 삼성과 전자랜드(현 가스공사)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전희철 감독은 오리온의 창단 겸 우승멤버였다. 이들은 선수생활 말년에 SK에 이적했고 당시 팀성적도 좋지 않은 암흑기였지만, 구단은 이들이 영예롭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끝까지 배려했다. 문경은과 전희철은 은퇴한 후에도 코치와 감독을 거쳐 완전한 'SK맨'으로 거듭났다.
 
귀화선수들과의 특별한 인연도 눈에 띈다. 김민수는 오직 SK에서 '원클럽맨'으로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받으며 영예롭게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또다른 귀화혼혈선수인 이승준과 이동도 말년에 단 한 시즌이었지만 SK에서 형제가 함께 마지막 시즌을 보내며 은퇴한 바 있다.
 
농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스포츠다. 이기고 지는 치열한 승부도, 화려한 스타성이나 계산적인 비즈니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존중과 감동이 없다면 스포츠로서의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오랜 세월을 헌신한 스타와 구단간도 서로 활용가치가 떨어지면 한 순간에 남남처럼 등을 돌리기 쉬운 프로의 세계에서, SK는 짧은 시간을 함께한 인연이라도 끝까지 소중한 가족처럼 예우하는 품격을 보여줬다. 잘나가는 성적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SK의 '감성 마케팅'은 팬들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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