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인 저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
한상언영화연구소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이 명제를 적용하면 '한국영화운동사'는 이효인의 역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1980년 이후 전개된 한국영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서 있었던 이효인 경희대 교수가 그 시대의 기록을 꾸준히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의 소명의식도 작용한 것이겠으나 오래된 시간의 기억을 꾸준히 글로 남기는 성실한 자세는 그 자체로 한국영화운동의 귀중한 기록이면서 후학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영상자료원장을 역임한 이효인 교수가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를 펴냈다. 지난 2021년 12월 31일 발간된 책에는 이효인 교수의 학창시절 이야기와 군사독재 시절 경찰에 끌려가 당한 고문, 그리고 영화운동 시기에 대한 정리와 함께 개인적인 평가와 후일담 등이 골고루 담겨 있다.
이효인 교수의 개인사를 짧게 정리하면 1970년대 후반 경희대에 입학해 유신독재 치하에서 학생운동 서클에서 활동했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시위에 나섰으며 군 복무를 마친 후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군사독재의 탄압으로 인한 일명 <파랑새 사건>으로 1986년 피검돼 선고유예로 나왔다.
1987년 6월항쟁을 전후로 충무로에서 활동하다 1989년에는 민족영화연구소를 설립하며 이론과 출판, 영화제작 등을 통해 한국영화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로 이어지는 초기 미국영화직배반대 시위에는 민족영화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영화운동사는 한국영화사의 한 부분이지만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변화를 추동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79년 출발해 1980년 정식 서클(동아리)이 됐던 서울대 얄라셩을 시작으로 서울영화집단으로 이어지는 전개 과정은 한국영화운동의 흐름을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다.
특히 1986년 '파랑새 사건'은 영화법으로 인한 최초의 영화인 구속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이후 전개된 과정들 역시 한국영화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는 그 시기에 대한 집중적인 기록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개인적인 기록들을 자세하게 정리해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영장 없이 끌려가 고문당하고 불법 구금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는 대학 입학 이후 시작된 '이효인의 운동사'를 담았으나 소설가 지망생을 꿈꾸었고, 실제로 지난해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던 저자가 젊은 시절 문학을 꿈꿨던 재능을 한껏 발휘했기에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이효인 교수는 2020년 펴낸 <한국 뉴웨이브 영화>를 통해 1980년~1990년대 한국영화의 흐름에 대해 학술적으로 고찰했다. 학자로서 연구한 내용에 더해 직접 체험한 내용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는 그 뒤를 잇는 책으로 자서전과 다름없는 진솔한 기억들이 돋보인다.
책 쓰기를 멈출 만큼 힘들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드러낸 것은 대표적이다. 1980년 11월 영장도 없이 경찰에 강제로 연행돼 모진 고문을 당하고 10여 일 이상 불법 감금됐다가 고문 흔적이 사라질 즈음 풀려났던 시기는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다.
연행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공권력이 자행한 납치였고,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은 영구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야만적 고문의 후유증으로 친한 친구를 잃은 아픔 역시 여전히 힘든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