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앨범 <굿 씽> 발표한 남성 뮤지션 루크 맥퀸
아이원이앤티
- 한국에서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2013년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겹쳐졌다.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든 미국발 '모기지사태'로 나 역시 소위 '하우스푸어'가 됐고, 심적으로 한때 황폐해 졌다. 그런데 오히려 내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내가 태어난 나라인 한국에 와서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도 찾고, 일도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해줬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놓치 않았던 음악을 주위 많은 분들의 적극적 도움에 힘입어 늦은 나이의 시작이지만 프로 뮤지션으로서 인생을 살게 됐다."
- 현재 음악인으로서만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 현재 소속회사에서 해외관련 업무도 담당하면서 음악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정규앨범도 꽤 많은 제작비를 회사에서 부담해 발매한 거라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커지고 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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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면서 음악은 어떤 의미였나?
"10대 전반에 걸쳐 음악은 나에게 '탈출'의 의미였다. 노래를 듣고 부르고, 곡을 쓰던 모든 순간들이 행복 자체였다. 당시 미국의 부모님들은 내가 음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전혀 도움을 안 주셨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미안하다고 말해주셨고, 오히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 영향을 준 아티스트가 있다면?
"성장기 시절 즐겨 들었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아일랜드 밴드 유투(U2)가 대표적으로 영향을 줬고, 콜드플레이(Coldplay)와 밴드의 보컬리스트 크리스 마틴(Chris Martin) 역시 내게 큰 영감을 여전히 주고 있다."
- 한국에서 활동을 하는데 언어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아쉽게도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고,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계속 한국어 공부를 하는 중이고, 레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도록 열심히 꾸준히 해 보겠다.(웃음) 회사에서도 홍보활동을 진행함에 있어 언어 때문에 여러 제약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한국어로 공개석상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어라운드 30(서른 즈음에)'의 후반부 후렴파트를 한국어로 노래한 라이브 클립들이 있다. 내년에는 '서른 즈음에' 원곡 가사, '롱잉'을 한국어 노랫말로 개사해 다양한 라이브 무대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웃음)"
-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 활동이 있다면?
"뮤지션으로서 내 창작 곡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싶다. K-Pop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음악 팬들이 즐기는 주요 콘텐츠가 돼 너무 기쁘다. 재능 있는 한국의 젊은 뮤지션들이 글로벌 마켓에서 멋지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어 발음이나 노랫말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련의 프로듀서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국은 루크 맥퀸에게 어떤 곳인지?
"내가 태어난 나라다. 다섯 살 때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돼 언어, 음식, 문화 등 모든 것이 오랜 세월 낯선 곳이었지만, 중년의 나이가 돼 지금 내가 정착해 살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10년 뒤에도 나는 이 곳에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한 사람으로서 있을 것이고, 내게 큰 도움을 준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갈 거다. 시멘트의 강도만큼이나 탄탄한 인생을 한국에서 뿌리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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