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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폭력, 안 보인다고 해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

21.09.10 16:42최종업데이트21.09.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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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디피>를 보고 마음이 편치 않던 오후였다. 딸애와 미용실에서 펌을 하고 있었는데, 딸애의 머리를 만져주던 남자 미용사가 <디피>를 본 모양이었다. 그의 드라마 소감은 이랬다. "저도 현역 나왔는데 그거 너무 과장됐어요." 경험이란 이런 것이다. 이토록 확증편향적인 것이다. 경험은 인간을 성장하게도 하지만 그 안에 갇히게도 한다.
 
군 생활 경험은 때로 분열적이기도 하다. 30여년 전에 중사로 전역한 남편은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군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진짜 사나이>를 즐겨 보며 스스로도 사나이답다고 믿고 있는 그가, 군이 체질에 맞았음에도 "말뚝을 박지 않은" 이유는 "하도 해먹는 게 눈에 보여 못 참겠어서"였다. 부조리를 목도했으며 스스로도 부조리가 군대의 고질적이고 조직적인 문제임을 알면서도, 그는 빈번히 보도되는 군조직의 기강 해이나 부패 관행을 쉽게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곤 한다.

또한 자신이 겪은 가혹한 훈련과 반인격적 병영 내 구타를 알고 있고 증오하면서도, '관심 병사'라 불리는 병사들의 곤경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냉혹하다. 드라마 <디피>의 군대 폭력 가해 재현을 보면서도, "저런 놈들 있다"면서도 "지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말이 무색하게도 "나아졌다"는 지금, 군대 내 폭력이 다시 불거졌고 한 병사의 불행한 소식이 전해졌다.
 
2014년 만화 <D.P 개의 날>이 고발한 군대 폭력
 
< D.P 개의 날 >을 만화로 보기 시작한 때는, 윤 일병 사망 사건이 공분을 일으킨 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져가던 즈음이었다.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김보통 작가의 만화가 전면으로 연재되기 시작했는데, 제목이 < D.P 개의 날 >이었다. 작은 글씨로 소개된 설명에는 DP가 탈영병 추격조(Deserter Pursuit)를 이르는 말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흑백으로 그려진 만화 <디피>는 소재의 불행만큼이나 암울한 군대 폭력의 현실을 다루고 있었다. 만화는 자극적인 가해의 폭력에 집중하기보다, 탈영병을 쫓으며 군 담장 밖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병사의 심정에 이입하는 디피조장 안준호의 관점으로 그려졌다. 탈영병을 쫓으며 그가 왜 탈출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게 되는 준호의 경험은, 탈영에 관한 질문의 과녁을 폭력을 저지른 병사 개인이 아니라 군 조직으로 이동시키게 한다. 이동된 위치에서 군대 내 폭력을 들여다보면 그 근저에 군조직의 적폐가 단단히 똬리 틀고 있었다.
 
군대에서 디피로 복역했던 김보통 작가는 그 자신의 경험을 녹여 2014년 < D.P 개의 날 >을 연재했고, 이를 원작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가 만들어졌다. 그가 탈영병 추격을 마치고 군에 복귀한 어느 날, 하루가 멀다 하고 두들겨 맞던 병사가 다른 하급 병사를 모질게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대체 무엇이 저들을 폭력의 릴레이로 몰아넣고 있는가를 자문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자문을 사회로 확장되어 옮긴 것이 < D.P 개의 날 >이었다.
 
드라마 <디피>는 < D.P 개의 날 >의 캐릭터를 조금 변경해 드라마의 본령인 재미를 적절히 선취하고 있다. 그러나 조일병이 당하는 폭력을 재현한 장면은 군대 폭력 피해자들이나 가족들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폭력의 재현은 현장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유발하기도 하기에 윤리적 재현에 대한 고민이 세심히 요구된다. 문득, 안병장을 위시해서 벌이는 폭력의 구체적 양상들을 습득하려는 모방 폭력이 재현되지 않을까 저어되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군대 폭력

 
드라마 <디피>에서 차마 믿기 어려운 폭력을 저지르는 병사는 반인격적 장애를 가진 특별한 개인이 아니다. 폭력은 상급자가 당연히 누리는 "그래도 되는" 권리였고, 이에 이른 데에는 군대의 조직적 승인이 있었다. 피해 병사가 가공할 폭력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모두 눈 감는다. 폭력에 기반한 군대내 서열을 승인하고 이를 이용해 손쉽게 군대 내 기강을 잡으려는 군조직의 암묵적 공모는 군대 내 폭력을 은폐시키고, 극단적 가해가 드러나도 이를 개인의 일탈로 몰아 서둘러 봉합해왔다.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 피해 병사는 폭력을 피할 수단이 없다. 남편의 믿음처럼 "지금은 좋아졌다"는 세상이고, 이제는 병영에서 휴대폰을 사용한다고 해서 조직적으로 가담하고 은폐하는 폭력을 막을 수 있을까? 휴대폰으로 상징되는 고발의 수단이란 적어도, 권력이 균질하게 작동되는 수평적 관계에서만 유효하다. 해군 정일병의 죽음이 이를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드라마에 그려지는 군대 폭력은 그 수위와 빈도의 차이일 뿐 간부들 사이에서도 여일하다. 헌병대 대장 천중령(현봉식)이 수틀리면 하급 간부 임대위(손석구)의 '조인트를 까고' 먹던 그릇을 얼굴에 집어던져 가격하거나, 지휘권 남용을 우려하는 임대위의 발언에 즉각 하극상 즉결 심판감이라고 겁박하는 장면을 보라. 자신보다 하급인 조직의 구성원이면 그가 간부이던 병사이던 상관없이 폭언하고 때릴 수 있는 게 군대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서열에 의한 군대 내 기강 잡기는 가장 손쉬운 조직관리법이 되어 공고히 이어져 왔다. 군대의 폭력을 태생적이라 믿게 한 것이다.
 
남자들의 세계엔 항상 서열이 존재하고 힘의 지배로 조직의 질서를 세운다고 믿는 남성중심주의는 비단 군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학교 폭력에서도 직장 폭력에서도 질서화된 폭력은 유사한 양상으로 펼쳐지며, 힘으로 세운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즉각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폭력이 불거져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일이 벌여졌는가를 집단적 차원에서 성찰하지 않고 개인의 몰인격으로 쉽게 처리해 버린다. 학교건 직장이건, 오랜 시간 지속된 폭력의 피해를 조직 구성원이 모를 리 없건만, 모른 채 방관해 온 책임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셀프 면죄부를 남발해 왔다.
 
탈영한 조일병(조현철)이 디피에 체포된 후, 다 알고 있었으면서 다 방관했으면서 왜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하냐고 울부짖는 일성 앞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구조적 폭력의 방관자이자 공모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막바지에 조일병 누나가 동생이 당하는 피해를 왜 모른척했냐는 물음에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일병이 내 동생, 내 아들, 내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사회 구성원이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공동의 책무에서 비껴날 수는 없다. 내 가족 내 친구가 당한 폭력이 아니라고 해서, 조직적으로 승인되고 은폐된 군대 폭력을 "과장된" 이야기라거나 운 나쁜 병사의 불운이라 치부하는 것은, 구조적 폭력을 무한 반복하게 만들며 한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에 처하는 데 공모하는 일이다.
 
군대 폭력의 민낯은 근자에 우리에게 심대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군대 성폭력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이 피해를 호소했을 때 이를 무마하기 위해 군대 집단이 벌인 일을 보라. 피해 보고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조직 구성원에게 피해자와 피해의 내용을 까발겨 집단적 따돌림과 괴롭힘을 유도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기는커녕 가해자가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피해자를 협박하도록 방치했다. 피해를 고발해도 그 조직이 피해자를 전혀 보호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피해자에게 어떤 선택이 남을 수 있겠는가.
 
적폐가 된 지 오래인 군대 (성)폭력은 한 정치인의 말처럼 모병제를 한다고 척결되는 것도, '여자도 군대 가라'고 드잡이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군대 (성)폭력의 근간에 폭력을 승인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구조적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해왔음을 통렬히 자각하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한 환골탈태의 다짐과 대책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군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군대는 성역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행해야 하는 책무가 피해자에게만 전가되는 조직은 없어져야 한다.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볼 때마다 가짜 군인 놀음에 한숨이 나오는 사람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디피 D.P> <D.P 개의 날> 군대 폭력 군대 성폭력 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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