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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시점으로 따라가다... 치매 노인의 '뒤섞인 과거'

[리뷰] 영화 <더 파더>

21.08.01 15:18최종업데이트21.08.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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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파더> 포스터
영화 <더 파더> 포스터판씨네마(주)
 
영화 <더 파더>는 치매 노인의 기억을 그리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요즘 치매 소재의 콘텐츠가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온전히 당사자인 안소니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영화에서는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전지적 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3인칭 화자의 시점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하는지에 따라 같은 소재라도 전혀 다른 느낌의 영화가 만들어진다. 하물며 1인칭 시점이면서 화자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면 영화를 보는 사람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객관적인 사실은 무엇인지, 화자는 어떤 감정 상태인지 판단해야 한다.

시간 순서대로 쌓여있던, 사진까지 포함된 종이 파일들을 실수로 바닥으로 떨어뜨려서 엉망으로 뒤섞였는데 그것들을 주워서 다시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따라서 흐트러진 파일에 해당하는 앤소니의 회상 장면에서 뒤에 나온 에피소드가 시간적으로 나중에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고 같은 인물의 외모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같은 공간의 인테리어도 일관성이 없이 달라지고 섞이기도 한다. 한번 보고는 실체에 다가가기가 어려운 영화지만 여러 번 볼 가치가 있다.
 
다시 맞춰본 파일에 의한 대강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안소니는 런던의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다. 나이가 들고 심신이 약해지자 딸인 앤이 근처에 살면서 그를 돌보고 요양사 안젤라도 와서 그를 도왔는데 안소니가 요양사의 도벽을 의심하고 심한 말을 해서 그녀가 그만두게 되었고 새 요양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앤 부부의 아파트로 옮겨와서 살게 되지만 그기간이 길어진다.

앤의 남편 제임스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고 부부가 점점 불화하게 되어 결국 이혼한다. 딸과 둘이 살면서 새로운 요양사 로라도 들어왔는데 과거에 사고로 죽은 작은딸 루시와 많이 닮아서 안소니가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의 생활도 한계에 다다르고 딸도 새로운 애인 폴과 파리에 가서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 안소니는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흩어진 파일의 내용은 치매의 진행으로 불완전해진 안소니의 뇌에서 인지하는 내용이다. 불완전해진 뇌는 영화에서는 앤이 깨뜨린 컵과, 안소니가 자주 듣는 같은 소절을 반복하며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CD로 상징된다.

그는 끝없이 집에 집착한다. 집은 그의 마음이고 영혼이며 자기 몸을 눕힐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이다. 거기서 쫒겨나면 자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딸의 집에 가서도 그집이 자기집이라고 우기고 절대로 뺏기지 않을거라고 소리친다.

또한 시계에 집착한다. 소중한 물건이라 생각해서 잘 숨겨두지만 숨겨둔 장소를 잊어버려서 요양사나 사위가 훔쳐갔다고 주장하는게 일상이다. 죽음이라는 먼길을 갈 때 꼭 필요한 소지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계를 얼마 남지 않은 시간과 동일시해서 시계가 보이지 않으면 패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딸에게서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딸의 집에서 딸 부부가 요양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불안해한다. 그것에 대한 방어로 딸이 자신의 집을 차지하려고 한다며 음모론을 펼치고, 나를 버리려고 하냐며 딸의 죄책감을 유발하고, 죽은 작은 딸의 칭찬을 하며 큰딸의 경쟁심을 부추긴다.
 
다시 영화를 꼼꼼히 보면 공간도 묘하게 뒤섞인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은 스토리로 볼 때 안소니의 아파트, 앤의 아파트, 요양원, 치매판정을 받던 정신과등 네 개의 공간이다. 신경 써서 보면 부엌의 찬장과 타일, 식탁과 의자, 소파의 색과 재질과 배치, 벽난로의 유무, 피아노의 유무, 서재에 있는의 책꽂이의 배치와 모양과 재질등이 다르고 어떤때는 모든 것들이 서로 뒤섞인다. 시종일관 안소니의 시점이라 어떤 공간의 정확한 모습을 특정지을 수는 없고 대략 짐작할 뿐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안소니의 침실인데 침실안의 거울의 유무와 침대옆의 안락의자 형태,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중요하다. 마지막에 가게 되는 요양원 장면에서 공원이 보이는 전망 좋은방을 선택했다는 앤의 말을 통해 창밖으로 찻길이 아닌 나무가 보이고 단순한 안락의자와 거울이 있는 방은 요양원이라는 것이고 영화의 초기장면부터 거울이 있고 나무가 보이는 침실도 있었던 것을 보면 영화가 요양원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이영화는 안소니가 요양원에 들어간 후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상 장면에서 네 개의 공간이 뒤섞이고 요양원의 간호사를 딸이나 요양사로 혼동하고 요양원 치료사와 앤의 전남편을 혼동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치매 환자의 경우 시간 순서와 인물같은 사실관계는 정확하지 않아도 감정은 생생하다. 딸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하고 우울해서 결국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절망감은 딸이 침대에서 자는 안소니의 목을 조르는 환상으로 보이고 딸이 사위와 요양원을 의논하는 것을 듣고 불안했던 마음은 그장면이 데자뷰처럼 계속 반복해서 떠오르는 것으로 보여진다.

더 먼 과거의 회상을 통해 애써 부정하던 작은딸의 죽음도 떠올리고 다정한 간호사를 보며 어릴적 엄마를 찾게 된다.

"엄마가 왜 나를 보러오지 않지? 나는 누구야?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무슨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어. 이제 나 하나 누울 공간이 없어. 그래도 긴여행에 필요한 시계 하나는 챙겼어."

쓸쓸한 독백과 함께 영화도 끝나고 안소니의 인생도 끝난다.
 
인간은 누구나 살다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 앤이 아무리 아버지를 사랑해도 아버지를 젊고 건강하게 되돌릴 수는 없으며, 아버지와 함께 죽을 수도 없다. 그래서 과거로 침몰하는 배에 아버지를 두고, 살겠다고 떠나는 그녀를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그녀의 시간은 아직 진행형이며 미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 기억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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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글을 쓰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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