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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다른 '언더커버', 검찰 아닌 공수처 내세운 까닭

[하성태의 사이드뷰] JTBC <언더커버>, 리메이크 과정에서 한국화 특색 뚜렷

21.05.11 14:48최종업데이트21.05.1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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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가 평소 존경하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 말씀으로 끝맺고자 합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와 공정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진정성과 저력을 믿는 저는 그런 좋은 날, 우리 역사의 봄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1월 24일 초대 김진욱 공수처장 취임사 중)

4개월 전, 현실의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은 "겸손하게 권한을 절제하며 행사할 것"이라며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취임사 전체는 다소 원론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도산의 어록을 통해 진리와 정의, 공정을 강조하는 동시에 공수처를 향한 일반 국민들의 기대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었다.
 

JTBC 드라마 <언더커버> 한 장면. ⓒ JTBC

 
JTBC 드라마 <언더커버> 속 초대 공수처장의 취임 일성은, 아니나 다를까 훨씬 선명하고 직설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초대 공수처장이 된 최연수(김현주 분)는 "그럴 일은 절대 없기를 바란다"면서도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만약에 제가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 그땐 여러분이 해 주십시오"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다.

혹자는 '그런 수사기관이 국내에, 전 세계에 있어?'라고 반문할지 모를 일이다. 맞다.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상이자 그 현실을 비틀고 극대화시킨 인물과 서사의 결합물일 뿐이다. 최연수의 이러한 과장된 일성은 향후 인물을 극단으로 몰아간 뒤 갈등을 고조시킬 것이란 작가의 예고와도 같았다. <언더커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최초 공수처 설립'이란 실제 상황과 방영 시점이 불과 4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만큼, 그 동시대성의 이점을 한껏 누리겠다는 듯 최연수의 취임사에 이런 현실감을 부여했다. 뉴스에 친숙한 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음 직한 특정 고위 전직 공무원의 어록을 빌려오는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는 인물에 충성하는 분? 원하지 않습니다. 조직에 충성하는 분?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그리고 국민에게 충성해 주기를 바랍니다."

꽤나 근사한 주제의 리메이크 장르물

<언더커버>는 6화까지 인권 변호사 출신 최연수가 초대 공수처장에 임명되는 과정을 중심 축에 놓는 한편, 30여 년 전 국정원 요원이었던 정체를 숨긴 채 최연수와 결혼해 전업주부로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 온 남편 한정현(지진희)이 가족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주요 갈등 구조로 내세운 드라마다.

최연수와의 사랑을 위해 가족과 직장, 신분 모두를 버린 한정현이 최연수의 공수처장 임명과 향후 활동을 막기 위해 한정현을 이용하려는 국정원과 반목하는 과정은 첩보물의 골격을 가져왔다. 이러한 장르물의 골격에 더해 인권 변호사였던 최초 여성 공수처장에 오른 최연수의 활약은 현실성을 띤 사회파 드라마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기에 가족 드라마로서의 감성까지 덧씌운 <언더커버>는 동명의 영국 BBC 6부작 드라마의 리메이크다. 원작의 흑인 인권운동 변호사는 1991년 초까지 학생운동을 했던 '소녀급제' 변호사로, 영국 최초의 검찰 내 흑인 여성 기소국장은 초대 공수처장으로, 주인공 부부를 위협하는 영국 경찰은 우리의 국정원으로 탈바꿈됐다.

또 변호사인 아내에게 공직을 수락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주요 사건 또한 우리에 맞게 변모됐다. 원작이 실제 흑인 인종 범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면 <언더커버>는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연상시키는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운동 사건('황정호 사건')을 내세웠다.

제작진이 자기 신념을 지키려는 여성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제공하는 한편 인권 변호사라는 캐릭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1991년 당시 학생운동을 내세웠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리메이크 과정에서 뒤따르는 한국적 특색 말이다. 

물론 '내 남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주요 갈등은 적절히 변모돼 향후 극의 갈등 요소로 부각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 6부로 구성된 원작을 우리 식에 맞게 늘리는 과정에서 구성이 다소 느슨해진다는 불안 요소도 없지 않다. 그래서 최연수와 한정현의 과거사가 향후 극 전개 굽이굽이에, 캐릭터의 감정에 얼마나 자연스레 녹아드느냐가 관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다채로운 요소로 채워진 장르물인 <언더커버>가 리메이크 과정에서 원작의 검찰을 마다한 채 굳이 공수처를 끌어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건 공수처란 설정 자체가 '언더커버' 장르에 부부 갈등극을 접목시킨 특색 있는 장르물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이 리메이크 드라마가 겨냥한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안팎의 현실 풍경
 

JTBC 드라마 <언더커버> 한 장면. ⓒ JTBC

 
"최연수 후보, 우파입니까 좌파입니까." (국회의원)
"저는 법과 정의편입니다." (최연수)
"말장난 하지 마시고, 우파입니까, 좌파입니까." (국회의원)
"굳이 물으신다면 지금까지는 소외된 약자의 편이고자 했지만 공수처장이 된 이후엔 법과 정의를 존중하는 국민의 편이 되겠습니다." (최연수)


5화 속 최연수의 공수처장 후보 청문회장 풍경이다. 이어진 질문은 "아들 한승구 군대 면제됐죠? 정당한 사유가 자폐증이 맞습니까. 군대도 안 간 자폐가 이렇게 떡하니 사업을 합니다. 이거 자폐라고 속이고 군대 면제 받은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고, "남편이 지금까지 한 번도 소득세를 낸 적도 없고 재산도 없던데, 백수 아닙니까?"라고 따졌다.

이 역시 후보자 가족 '신상 털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모자라 사상검증에까지 나서는 현실 속 고위 공직자 후보 청문회의 거울상이라 할 만하다. 최연수를 1991년 당시 운동권 학생이자 '소녀급제' 출신 인권 변호사로 그렸던 <언더커버>는 여기서 한 번 더 현실과의 경주를 벌인다. 국정원과 결탁해 최연수의 낙마를 도모한 검사 출신 3선 국회의원이자 과거 황정호 사건의 검사였던 유상동(손종학)은 이렇게 질의한다.

"후보는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김태열 아시죠? 1990년에서 1991년, 좌익용공세력의 수괴였던 전대협 의장 김태열이 각종 폭력 과격 시위의 주동자로 수배돼서 무려 2년 동안 공권력을 농락하며 1급 수배자이던 당시, 김태열 만난 적 있죠? 왜 신고 안 했어요? 의뢰인이면 좌익용공세력의 수괴였던 김태열의 법률자문 변호사였단 말인가요."

여기서 <언더커버>가 영화 <1987>을 연상시키는 과거 시위 장면과 과거 최연수가 김태열과 지금은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강충모(이승준)와 술잔을 나누며 이상을 꿈꾸는 장면을 회상 장면으로 삽입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군사정부, 권위주의 정부가 지배하는 현실을 '우리가 꿈꾸는 좋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신념과 원칙을 지켜온 최연수가 싸우는 세력이 누구인가. 그 공고한 세력이 공안검사 출신 국회의원, 이와 결탁한(것 같은) 검사, 그리고 국정원의 핵심 요직인 기획 조정실장 임형락(허준호)라는 설정은 수사기관과 공권력을, 낡은 정치인을 '공공의 적'이나 부패한 조직으로 설정해 온 여타 장르 드라마와 같은 길을 가는 듯 보인다.

사실 이 자체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드라마 속 김태열이 과거 학생운동의 전설적 인물이었고 현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지낸 정치인을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역시 의미심장한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더커버>는 최연수가 향후 청와대 비서실장을 수사하게 될 운명에 처할 것을 예고했다. "원칙을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고, 신념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평생을 지켜온 원칙과 신념의 배신 앞에 좌절과 재기를 반복하는 인물"로 소개된 최연수가 자신과 정치적 지향을 함께 한다고 믿은 강충모와 한 배를 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접 수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내가 30년 간 사랑해 온 남편은 누구인가'란 질문을 맞닥뜨리며 원칙과 신념이 흔들리게 될 최연수가 겪게 될 갈등의 전주곡이요, <언더커버>가 가리키는 주제 의식의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언더커버>는 '신분위장 첩보물'을 경유해 최연수에게 '신념이란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한편 한정현을 통해 가족과 사랑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중이다. 지금까진 이렇게 우리네 과거사와 현실을 경유한 영민한 장르물로서의 재미를 이어가고 있다.

씁쓸한 것은 <언더커버>가 드라마 밖 현실 세계에서 방영도 전에 '공수처 미화'란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드라마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됐다고나 할까.

현실의 거울상

"JTBC는 '정의를 위해 살아온 최초의 공수처장이 된 여성 인권 변호사'를 다루는 드라마를 내년 1월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공수처 홍보물'을 제작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부가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밀고 있는 공수처장을 미화한 드라마를 기획한 것은 정권의 입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12월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내놓은 성명 중 일부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JTBC는 드라마라는 매체를 통해 국민의 감성적인 영역에까지 공수처를 '정의와 인권, 여성'으로 포장하여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이용하려 한 것"이라며 "문제가 된 프로그램의 기획을 철회하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작 드라마의 뚜껑을 열자 국민의힘은 침묵하는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더커버>의 '최종 빌런'은 보수야당이 아닌 국정원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동안 '국정원 미화'로 읽힐 만한 장르영화나 드라마가 적지 않았다(드라마 <아이리스>나 영화 <의형제>, <7급 공무원> 등을 떠올려 보시길).

반면 <언더커버>는 최연수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의 조종자로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임형락을 설정했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국정원의 갖가지 공작들을 극과 주인공들의 주요 갈등 요소로 내세웠다. 공안검사 출신 국회의원과 협잡을 하고 국정원 파견 검사를 조종하는 와중에도 드라마 속 이른바 '악의 축'을 국정원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과거 '국정원 사찰 문건'을 일부 공개해 피해자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는 바로 그 국정원 말이다. 국정원을 위해 대신 나선 것이 아니라면, 이런 설정을 무시한 채 방영 전부터 프로그램 폐지 운운했던 국민의힘이 머쓱할 만한, 아니 국민들이, 시청자들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행태를 자성하고 반성해야 할 상황이랄까.

그리고 10일, 현실의 공수처는 공수처 1호 사건으로 현직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부당의혹을 "2021년 공제1호 사건으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건이 1호가 될 것이란 세간의 예측이 보기좋게 빗나간 것이다. 역시나 현실은 드라마를 뛰어 넘는 법이다. 언제나처럼, '역시나'는 '역시나'다.  
언더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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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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