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 시즌 경기에 출전했던 신의현 선수.
신의현 선수 제공
평창 패럴림픽에 대한 첫 기억을 묻자 그는 2018년 3월 9일 개회식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 때 기수로 나선 것을 떠올렸다.
"그때 의족을 신고 걷다 보니 걸음걸이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어요. 다른 생각 없이 '잘 걸어야겠다, 태극기도 높이 들어 올려야겠다'라는 생각만 했었죠. 그리고 맨 앞에서 휘청거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때는 걸음걸이에만 집중했었어요.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 관중 분들이 응원의 함성을 크게 내주셔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3월 10일 열린 첫 경기도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신 선수는 "직전 월드컵에서 메달을 따내기도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긴장도 되고, 욕심도 많이 났다"면서 "그때 출전했던 경기가 바이애슬론이었는데, 사격하는 데 총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에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아쉬운 경기를 뒤로하고 돌아가면서 '남은 경기들을 잘 하자'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그렇게 첫 경기에서 마음을 달랜 덕분에 메달을 땄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는 바로 다음 날인 11일 크로스컨트리 15km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의현 선수는 '조금 더 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단다. 이유를 묻자 그는 "앞의 선수와 8초 남짓 차이가 나서, 조금만 더 했으면 메달 색을 바꾸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애국가 꼭 울리겠다던 약속, 폐회 직전에 지켰죠"
메달을 딴 이후에도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신 선수는 패럴림픽 기간 당시 "경기장에 애국가를 꼭 울릴 수 있게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폐회 직전인 17일에 지키게 되었다. 그가 크로스컨트리 7.5km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그때는 마지막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자고 생각했어요. 사실 경기를 하는데, 코치님이 계속 '5초'라고 하시는 거예요. 가장 잘 하는 친구에게 5초 뒤지나 싶어서 더 열심히 뛰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까 5초 앞서 있었더라고요. 경기장 안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경기를 뛰었는데, 그 각오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신의현 선수는 "금메달이 확정된 후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라며 "그때 '경기장에 애국가를 울릴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고 금메달을 따낸 순간을 떠올렸다.
포디움에 올라 애국가를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처음에 다쳤을 때, 어머니가 고생하셨을 때 생각이 났다"면서 "(메달 딴 뒤)어머니께서는 그저 웃으시면서 '잘했다'고 안아주셨다. 참 감사했다. 어머니도 내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 순간 참 기쁘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의현 선수는 평창 패럴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평창 패럴림픽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사고를 당해서 어렵게 살았고, 장애인이 된 순간 세상에 쓸모없던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삶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았죠. 그래도 운동을 만나서 나라를 위해 출전했고, 결국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이잖아요. 그래서 평창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이 정말 뜻깊고 기뻤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패럴림픽 이후 크게 오르지 못해 아쉬웠다는 신 선수는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장애인 체육계에서도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안다.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중계를 더욱 많이 해주면 더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다"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장애인 스포츠의 스토리가 비장애인들의 스포츠 못지않아요. '죽다 살아난 사람들의 스토리'잖아요. 사회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 중계, 아니라면 보도라도 많이 해주고, 매스컴에서 관심을 이끌어주어서 국민들이 더욱 주목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패럴림픽 땐 바이애슬론에서 금메달 따야죠"
신의현 선수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종목은 크로스컨트리다. 양다리를 의족에 의지했던 그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엔 스키는 막연히 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앉아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애인도 못 하는 스포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 '스키' 하면 떠올리는 알파인 스키를 그는 타본 적이 있을까. 신 선수는 "내려가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부상 위험도 있다 보니 알파인 스키엔 도전 못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내가 설령 알파인 스키까지 잘 타면, 다른 스키 선수들은 어떻게 하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실 신의현 선수는 다른 종목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평창 패럴림픽이 끝난 후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핸드 사이클에 도전해보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장애인 선수들 중엔 동계와 하계 모두에서 복수의 종목에 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각오가 지금도 유효한지 물었다. 하지만 신의현 선수는 "두 마리 토끼는 한 번에 잡기가 어렵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렇게 두 종목에 모두 도전해보려고 했는데, 쓰는 근육이 다르다 보니까 두 개의 종목을 함께 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라며 "두 가지를 함께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잘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더욱 집중을 해서 베이징 패럴림픽 때 잘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며 말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에서 한 개씩 금메달을 얻어내,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신의현 선수는 "두 번째 패럴림픽 금메달은 바이애슬론으로 얻어내고 싶다. 지난 평창 동계 패럴림픽 때에는 바이애슬론에서 메달이 없었는데, 이번에 메달을 획득하며 만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딸은 태권도 선수, 제 오래전 꿈 이뤄주는 것 같아요"